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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위에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를 띄어보자

상대방에게 설명하는 언어

by 갓기획

어느 날 친구의 강의를 참관한 적이 있다. 정확하게는 강의 모니터링 알바였다. 친구의 강의 내용이 어떤 지,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 지 확인하는 역할이었다. 2시간짜리 특강이었는데, 전달할 내용도 많고 처음 강의하는 주제라서 그런지 신경이 많이 쓰이나 보다.


친구의 걱정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강의 시작 얼마 후, 몇몇 학생들이 졸기 시작하더니 1,2열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이 점차 졸음 대열에 합류한다. 솔직히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나도 역할을 망각한 채 졸음이 쏟아지는 데 , 학생들은 오죽하겠나 싶다. 학생들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무리 강의 내용이 좋아도 친구 혼자서 떠드는 데는 한계가 있는 듯했다. 게다가 강사들에게는 마의 계곡으로 불리는 오후 1시부터 진행된 강의다 보니, 학생들에게는 충분히 자장가로 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힘들었던 2시간이 끝나고, 다소 의기소침해진 친구가 내게 와서 묻는다.


“야 내 강의 재미없냐? 왜 이렇게 다들 조냐?”


사실 '나도 졸았다'는 말을 하려다가, 모니터링 알바 비용이 날아갈 것 같은 불안한 마음에 그 말만큼은 넣어두기로 한다.


“강의 내용은 좋네.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야 “

“ ‘~은’이라고? 그다음 말은 뭐냐? 편하게 이야기해봐.”

“강의 내용은 좋은데, 전달 방식이 좀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친구가 수긍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2시간 특강이다 보니까 참여형으로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게임을 할 수도 없고, 전달할 내용은 많고,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 이해해. 나라도 그랬을 것 같아. 근데 말 한마디만 바꿨으면 좀 나을 뻔했는데, 네가 그걸 안 하더라.”

“그래? 그게 뭔데?”


친구의 강의 내용을 들어보면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이런 사례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유명인 누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말이 전부 '다. 다. 다'로 끝나고 있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방적인 전달로 여겨져서,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차라리 이렇게 말했으면 어땠을까?


“혹시 이런 사례 들어보신 적 있나요?”

“여러분들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시겠어요?”

“이런 유명인이 있는데, 이때 어떻게 말했을까요?”


내용상 변화는 없다. 다만 형식을 조금 바꿨을 뿐이다. 말하는 중간중간에 '.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 띄우고 말하는 방식이다. 이 사소한 차이는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말하는 중간에?를 띄우면, 듣는 사람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면서 뇌가 깨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뇌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지루할 겨를이 없어진다. 크게 3가지 측면에서 효과가 있다고 본다.


첫째, 변화를 준다.

말을 함에 있어 말의 톤, 억양, 크기 등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보다 효과적인 것은 '?'를 띄우는 방식이다. 마침표만 입력되던 상대방의 뇌에 물음표를 던지게 되면, 상대방의 뇌는 그것을 어떤 변화로 받아들인다. 뭔가 의미 있는 내용을 이야기 하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집중하게 된다.


둘째,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 뇌는 게으르다. 인지적 구두쇠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최소한의 에너지를 활용해서 상대방의 말을 듣고자 한다. 이때 상대방의 뇌에 물음표를 던져보자. 게으른 상대방의 뇌는 물음표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하며 활동을 게시한다. 게다가 질문에 대한 정답이 공개되는 순간, 뭔가 의미 있는 것을 확인했다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면서, 만족도가 올라가게 된다.


셋째,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방적으로 듣는 것보다,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을 통해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말하기의 주체는 상대방이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참여하고 있다는 인식을 받게 된다. 제삼자가 아니라 그 대화의 참여 주체가 되면서, Your Story(저세상 딴 얘기)가 아니라 My story(관심 있는 나의 이야기)로 변하게 된다. 이때부터 대화의 진정한 의미가 살아난다.


l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의견을 묻는 질문)

l A랑 B가 있는데, 뭐가 더 좋다고 생각하냐? (선택을 유도하는 질문)

l 너도 그런 적 있지 않냐? (동의를 구하는 질문)

l 너 A라는 거 알고 있지 않냐? 너도 들어본 적 있지? (확인하는 질문)

l 내가 도대체 왜 그렇게 했을까? (궁금증 유발 질문)


등으로 내 말 위에? 를 띄우고 말해보자. 좀 더 의미 있고, 효과적으로 말할 수 있고, 상대방과의 대화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며칠 후, 같은 내용으로 친구의 2번째 강의가 진행되는 날이었다. 내가 다시 모니터 요원으로 참여했다. 자기소개로 친구의 강의가 시작된다.

“여러분. 여기 제가 4개의 보기를 적어 놨는데, 이 중에서 저를 설명하는 것으로 틀린 것은 무엇일까요?”


곳곳에서 학생들이 수군 되기 시작되더니 답변하기 시작한다.


“3번이요. 강사님 별명이 장동건은 아닐 거 같아요”


친구가 너무 말도 안 되는 보기를 집어넣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기는 했지만,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내 친구의 모습이 늘 존경스럽다. 아는 걸 안다고 말하기 전에, 아는 걸 행동으로 옮기는 친구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평가표에 10점 만점에 3점을 준다. 그래도 아직 갈 길이 먼 녀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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