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설득하는 언어
어느 날 친구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앉아있다. 지난 주말에 와이프에게 명품백 하나를 사줬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왜 사줬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자신도 모르게 허락을 했다고 한다.
“야 얼마 짜리길래 그렇게 넋이 나가 있냐?”
“몰라. 말해서 뭐해. 거의 한 달 월급이다.”
“너 뭐 약점 잡혔냐? 비자금이라도 걸린 거냐?”
“아니야. 이상하게 그날따라 묘하게 와이프가 말하는 데 끌린 것 같아. 일단 아침에 내가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나를 공략해 왔어. 무방비 상태에서 당한 거지.”
“도대체 뭐라고 했길래 그렇게 한방에 훅간거냐?”
“일단 이렇게 운을 떼더라고.”
여보. 요즘 나만 빼고, 주변의 친구들은 명품백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어. 결혼식, 돌잔치 등 친구들 모임에 나가면 나만 없더라. 근데 이상하게 친구들은 그걸 남편의 능력이랑 연결시키더라고. 남편이 무능하데나 뭐래나.
“일단, 여기서 맛이 확 가더라고. 자존심에 제대로 스크래치 난거지. 그때 이미 넘어간 거 같아.”
“그다음에는 뭐라고 했는데?”
이게 다 명품백 하나 없어서 그래. 큰 백 까지는 필요 없고, 작은 백으로 하나 살게. 봐 둔 거 있어.
“그리고 다음엔?”
아는 언니가 이번에 외국으로 출장 가는데, 면세로 사면 비싸지 않게 살 수 있어. 30% 정도 할인받아서, 200만 원정도 밖에 안되.
“이게 끝은 아니지?"
일단, 대외적으로 여보의 명예와 가치도 올라가고. 내부적으로도, 우리 가족 서열 순위를 생각해봐. 내가 행복해야, 당신 딸도 행복하고, 우리 집 강아지도 행복하고, 그럼 여보도 행복한 거잖아.
친구의 이야기가 끝나고, 친구의 아내가 참 현명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도의 설득 전략과 말하기 기술을 구사할 줄 아는 설득의 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네가 당할만했네. 너는 참 똑똑한 여자랑 사는 거다. 앞으로 잘해라 니 와이프 한데”
친구는 아직 무슨 말인지 모르고 어리둥절해 하지만, 친구 와이프가 했던 말에는 고도의 설득 전략이 숨어 있었다. 정확히 스토리텔링 방식을 적용하고 있었다. 친구 와이프가 대충 말한 것 같아도, 그 말속에는
Why - What - How – So What
문제 – 해결책 – 구체적인 방법 – 기대효과
로 연결되는 설득 논리를 갖추고, 친구를 설득하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의 표현대로,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자신도 모르게 허락을 한 것이다. 일단 답답해하는 친구에게 스토리 텔링의 기본부터 설명해 주기로 한다.
“우선 스토리 텔링의 장점부터 이야기해줄게.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이야기를 듣고 자랐잖아. 게다가 지금도 각종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 이야기를 접하고 있어. 즉, 우리가 굉장히 익숙한 방식이라는 거야. 그래서 쉽고 빠른 이해 가능하지. 게다가 재미가 있으니까 흥미 및 몰입도 증가하고 기억효과까지 증대되는 효과가 있어."
친구가 맞장구를 쳐온다.
“맞네. 옛날에 할머니가 해주는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었고, 지금도 그 얘기가 기억나잖아. 오래전에 본 드라마도 지금까지 그 스토리가 기억나고”
“그렇지? 근데 사실 그게 크게 어려운 것은 아니야.”
“작가들이나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물론 기술이 필요하지. 근데 기본 구조는 똑같아. 소설에서는 플롯이라고 하기도 하고,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스토리 라인이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 공통점은 가지고 있어.”
“일단 네가 최근에 본 영화 하나만 말해볼래?”
“음 ..:나 스파이더맨?
“그래? 그 히어로물이네? 내가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이런 스토리 아니었냐?
기: 주인공이 살던 평화롭던 마을에 악당이 나타나서 마을에 문제가 생기고
승: 악당을 상대할 히어로가 나타나고
전: 여러 가지 난관과 과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결: 다시 마을에 평화가 찾아온다
“어 맞아.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데 결국 그 흐름이네.”
“그래? 물론 요즘 영화의 포맷이 하도 다양해서 한 가지 형식이 맞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부분 큰 틀에서는 이런 흐름으로 이어져. 그럼 이걸 설득적인 말하기 방식에 적용해 보면 어떻게 될까?”
기 : 너 이런 문제 있지?
승 : 이런 해결책이 있어.
전: 구체적으로는 이런 방법으로 진행할 거야.
결 : 그럼 너한테 이런 효과나 변화가 있을걸.
스토리 텔링 방식은 상대방이 네 말을 들어야 하는 문제에서 시작해서, 해결책이나 솔루션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한 후에, 기대효과로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한 마디로, 명분에서 시작해서 실리로 끝내는 말하기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 들은 친구가 한참을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꺼낸다.
“그러네. 네가 지난번에 쇼호스트의 설득 방식에 대해서 설명해 준 적 있잖아. 결국 그들의 방식도 확장하면, 스토리텔링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거네?"
“그렇지, 결국 세일즈도 고객을 설득하는 행위니까, 세일즈에도 통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럼 PT는? 나 다음 주에 정부 지원 사업 PT(발표) 있는 거 알지?
“결국 그것도 심사위원을 설득하는 거잖아. 그때도 이 방식을 적용하면 도움이 될거야."
“그러니까, 내 사업 아이템의 고객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서 시작해서 솔루션, 구체적인 사업 수행방법, 기대 효과의 흐름으로 정리하면 되는 거네?”
“이해가 빠르네. 물론 기획서나 제안서 작성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큰 흐름을 그렇게 가져가면 막 쓰는 거 보다는 나을 거야. 기획은 나열이 아니라 배열이니까.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써봐, 좋은 결과 있을 거야."
친구는 그렇게 밤을 새워 내가 말한 방식으로 PT 자료를 수정했다. 결과적으로 예산 1억원의 정부지원사업을 수주하여 지금은 모기업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스토리텔링이 가져온 힘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