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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라는 마일리지를 쌓아서, 설득에 성공해 보자

상대방을 설득하는 언어

by 갓기획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 과학적인 근거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밀가루가 당기는 날이다. 친구와 함께 칼국수 집으로 향한다. 친구 동네에서 꽤 유명한 칼국수 집이라고 한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쯤이었는데, 식사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손님들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열심히 칼국수를 먹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8시 30분, 영업 종료시간까지 30분 정도 남았다. 이 집은 이때부터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 사장님이 단호하게 손님들을 끊어 낸다.


"손님 죄송합니다. 오늘 영업 끝났습니다"

유유히 돌아가는 손님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친구가 나지막이 말해온다.

“뭘 그렇게 안타깝게 보냐. 나만 아니면 되지. 뭐 있냐. 얼른 먹어. 여기 다 먹고 죽도 해준다. 죽이 죽여주지”

라며 말도 안 되는 아재 개그를 날려온다. ‘죽’ 빵을 날려 버리고 싶다.


‘나만 아니면 되라니’

그때였다. 어느 아주머니 두 분이 유난히 시끄럽게 쿵쿵거리며 칼국수집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이미 시간은 8시 45분이었다. 역시 녹음된 듯한 기계음이 송출된다.

"손님 죄송합니다. 오늘 영업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 아주머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보통 이렇게 말하면 부리나케 돌아서는 것이 일반적인데, 포기하지 않을 기세다. 한 아주머니가 이렇게 시동을 건다.

"아 그래요? 그럼 죄송한데, 화장실만 잠깐 쓰고 나갈게요."

그리고 유유히 화장실로 들어간다. 이어서 다른 아주머니가 말을 한다. 이 아주머니가 진짜 고수다.

아주머니: 잠깐 앉아있다 가도 되죠?

사장님: 네 그렇게 하세요.

아주머니: 서둘러 와서 그런지 목이 마르네요. 물 한잔 마셔도 되죠?

사장님: 아 그러시죠. 두 잔 마셔도 돼요.

아주머니: 물 맛 좋네요. 사실 칼국수 먹으려고 수원에서 왔는데...

사장님: 멀리서 오셨네요...^^;

아주머니: 빨리 먹고 갈 테니, 두 그릇만 해주세요...

사장님: 정말 빨리 먹고 가셔야 해요.

제갈공명도 울고 갈 기지를 발휘한 아주머니 두 분은 기어이 칼국수 2 그릇을 득했고, 어렵게 얻어낸 음식인 만큼 누구보다 맛있게 드시고 사라졌다. 아주머니들이 떠나고 나서 친구가 속에 담아뒀던 한마디를 꺼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결국 칼국수를 드시네. 저렇게까지 해서 먹고 싶을까?”


다시 한번 죽빵을 날리고 싶다.


“야. 저건 무식한 게 아니라, 진짜 똑똑한 거야. 결국 원하는 거 얻었잖아. 그것도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설득한 거 안 보이냐? 저게 바로 '풋인도어 테크닉 (foot in door technique)이라고 하는 거야”

풋인도어 테크닉 (foot in door technique) 심리학에서 말하는 '문안에 들여놓기' 기술이다. 방문 판매 영업사원이 주인의 허락을 얻어 문안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물건을 파는 성공할 있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기법이다. 문안에 발을 들여놓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문안에 발을 들여놓는 번의예스 얻어내면, 주인은 이어지는 방문 판매 사원의 제안에예스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풋인도어 테크닉 (foot in door technique) 은 작은 예스를 반복하게 함으로써, 최종 결과를 yes로 도출해 내는 방법으로 Small yes effect 또는 yes taking 전략이라고도 한다. 이런 기법은 특히 세일즈에서 많이 활용되는데, 마트의 시식 코너나 홈쇼핑에서 활용하는 무료체험 전략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렇다면 이 전략이 왜 효과가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크게 3가지 측면으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일관성 효과이다. 사람들은 한 번 어떤 입장을 취하면 그 입장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한 번 부탁을 들어주면 계속 그 방향성을 유지하고 싶어 지게 되고, 다음 부탁을 들어줄 확률도 올라가는 것이다. ‘인지 부조화’를 경험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지속적으로 예스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의미 점화 효과이다. 점화 효과(Priming effect)는 시간적으로 먼저 제시된 자극이 나중에 제시된 자극의 처리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나타낸다. 이때 선 유입된 정보나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하게 되면, 이후에 이어지는 유사한 개념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상대방에게 작은 예스를 경험하게 하여 긍정이라는 의미를 점화한 후, 그 이후의 행동에도 긍정적인 감정을 유도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매몰 비용 효과이다. 첫 번째 부탁을 들어주면 시간이든 비용이든 개입을 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때 앞에 투자한 내 비용이 아까워서 뒤에 이어지는 제안까지 계속해서 수락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아주머니들이 이 전략을 알고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도 모르게 몸에 배어 있던 설득 전략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들은 이론 속에만 존재하는 이 전략을 현실 세계 속에서 제대로 활용하는 분들이었다.

[칼국수 집에서 보여준 아주머니 들의 Foot in door technique]

화장실 써도 되나요? Yes
잠깐 앉아도 되나요? Yes
물 한잔 마셔도 되나요? yes
칼국수 두 그릇 되나요? yes

비록 친구의 눈에는 칼국수를 먹고 가기 위한 무식함으로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 그 아주머니들은 칼국수를 먹다가 손에서 젓가락을 놓게 하고, 뒤통수를 '빡' 때리는 것 같은 교훈을 주고 가신 분들이었다. 배가 고프셨는지 면발 한 가닥,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가셨지만 그분들이 남기고 간 여운은 진하게 남아 있었다.

친구와 식사를 마친 후, 야간진료를 하는 한의원을 찾았다. 며칠 전 교통사고 후유증이 쉽게 낫지를 않는다. 친절한 한의사님이 따뜻하게 맞아 주신다.


오늘 참 많이 덥죠? -> 네. 덥네요.

그동안 허리가 아프셔서 힘드셨죠? -> 네.

여기가 아프셨을 거예요. 맞죠? -> 네. 딱 거기예요.

제가 침도 놔드리고, 추나도 해드릴게요. -> 네

아 그리고 집에 가서 근육이완제 꼭 드셔야 해요. 제가 챙겨드릴게요. -> 네 감사합니다.

결국 나는 여러 가지 치료를 받고, 사지 않아도 될 근육 이완 한약까지 사서 나왔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선생님의 설득 방식에도 Foot in door technique 가 숨어있었다.

보통은 설득의 순간 마음이 급해진다. 빨리 내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급하게 설득을 시도한다. 이때 잠시 급한 마음을 접어두고, 서서히 상대방의 마음을 공략해 보자. 상대방에게 작은 예스를 지속적으로 얻어내고, 이것을 지속적으로 쌓아서 큰 예스를 불러오는 것이다. 상대방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고, 내 말에 서서히 젖어들게 되어 결국 내가 원하는 최종 예스를 수락할 것이다.


혹시 지금 어떤 여성에게 데이트를 신청할 일이 있다면, 처음부터 ‘드라이브나 가실래요?’라고 성급하게 드리대지 말자. 처음은 작은 예스로 시작해 보자.


“오늘 날씨 좋네요”

“이런 날 교외로 바람 쐬러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저랑 같이 드라이브 가실래요?”

물론 다른 방법과 병행하면 더 좋겠지만, 무턱대고 들이대는 전략보다 상대방의 OK를 얻어내기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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