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글
어느 날, 육아에 지친 와이프가 이렇게 말했다.
“여보 나 육아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
이 말에, 내가 아는 남자들의 99%는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왜 힘들어? 뭐가 힘들어?”
물론 힘든 걸 도와주고 싶고, 같이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에 튀어나간 말이다. 하지만 마음이 앞섰다. 이 말은 와이프가 원한 정답이 아니다. 왜냐하면 와이프가 힘들다고 말한 속내(의도)는 뭔가를 해결해 달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힘든 거 좀 알아달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힘들다고 하는 아내의 말에 ‘왜 힘들어?’ 라고 되묻는 것은 ‘그건 니 일이잖아, 난 니가 왜 힘든지 모르니까. 그 이유부터 설명해줘’ 라고 말하는 것이랑 똑같다. 그런 남편의 대답에 와이프의 입에서는 당연히 험한 말이 튀어나갈 수 밖에 없다.
“너는 내가 왜 힘든 지도 모르지? 육아는 니일이 아니지?”
물론 이유를 묻는 습관은 좋은 습관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순서가 틀렸다. ‘왜?’ 가 입에서 튀어 나가기 전에 입.틀.막을 해야했다. 다른 말을 먼저 꺼내야 했다.
“많이 힘들지? 내가 많이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왜’ 는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원인을 파악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 필요한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문제 해결이 아니다. 문제에 공감하는 것이 우선이다. 단지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어차피 답도 없는 일, 상대방은 그냥 하소연 한 것 뿐이다. 그럴 때는 그냥 충분히 들어주자. 여기에 공감 한 스푼 얹어 말해 주자.
“그랬구나. 힘들었구나. 나라도 그랬을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