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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언어로 알게 쉽게 이야기하자, 3E 법칙

상대방에게 설명하는 언어

by 갓기획

얼마 전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었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이른바 ‘웨비나’ 사건이었다.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계속해서 ‘웨비나’, '웨비나’라고 이야기하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웨비나 준비해야 하는데, 웨비나에 활용되는 툴이 여러 개가 있어. 요즘 코로나 때문에 수요가 많아서 웨비나 프로그램을 디벨롭할 필요가 있겠어. 교안도 좀 더 베리에이션 해야 할 것 같아.”


물론 최신 트렌드나 용어에 밝은 사람에게는 문제가 없었겠지만, 나에게 있어 ‘웨비나’라는 단어는 장모님이 나에게 ‘여빘다(살빠졌다)’ 라고 말한 것 이상으로 생경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다가왔다.


*웨비나 = 웹(Web)과 세미나(Seminar)의 합성어로 인터넷을 통해 진행하는 실시간 강의 또는 녹화 강의.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해 유행하고 있음.


결국 친구의 설명이 다 끝난 후에, 내가 그 뜻을 물어서 알게 되었고, 친구는 자신이 말한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하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했다. 모든 대화가 끝나고,


“야 너는 강의한다는 애가 웨비나도 모르냐?”


친구는 마치 대단한 지식을 안다는 양 잘난 척 하기 시작했고, 졸지에 나는 웨비나도 모르는 무식한 강사가 되어 있었다.


친구와 전화를 끊고 나서, 무식했던 나 자신을 탓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꼭 그렇게 전문용어(약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처음부터 온라인 강의라고 하거나, 아니면 ‘웹과 세미나의 합성어로 웨비나라는 교육 방식이 있어’라고 설명하고 이야기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은 남았다.


결국 나의 무식함과 친구의 부족한 커뮤니케이션의 콜라보로 인해, 우리는 몇 분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해야만 했고, 나중에 이를 수습하기 위해 최소 10배의 인지적인 노력을 추가해야만 했다. 아마 나보다,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던 친구의 스트레스가 더 크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과연 그 친구는 왜 그렇게 말을 했던 것일까? 왜 ‘웨비나 웨비나’라고 말했던 것일까? 여기에 더해 ‘툴을’, ‘디벨롭’, ‘베리에이션’ 등으로 알 수 없는 말들을 사용한 것일까? 물론 내가 친구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크게 3가지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첫째, 그냥 습관적으로 쓰는 것이다.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써왔기에, 상대방이 누구든지 간에 내 방식대로 내가 쓰는 단어로 말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을 상대방도 알고 있다는 착각 때문이다. 즉, 지식의 저주가 발동했다. 두 번째, 전문용어나 약어를 사용하는 것이 좀 더 있어 보인다는 생각 때문이다. 암암리에 약어를 쓰고 전문용어를 쓰면 있어 보인다는, 소위 ‘있어빌리티’에서 기반하는 행동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어렵게 설명한다는 것은 자신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반증인지도 모른다. 본질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겉으로 아는 것만 앵무새처럼 따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상대방이 잘 모르는 전문용어나 어려운 말을 남발하는 방식은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에 위배되는 방식이다.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내가 어떻게 전달했느냐가 아니라, 상대방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 드리냐에 있다. 이런 관점에서 불필요한 전문용어의 남발과 어려운 설명 방식은 말을 잘하는 사람의 전달 방식은 아니다. 진짜 말을 잘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입장과 눈높이서 그가 이해할 수 있게 말한다. 관련해서 어느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본다.


하수는 쉬운 것도 어렵게 이야기하고,
중수는 어려운 것을 어렵게 이야기하며,
고수는 어려운 것을 쉽게 이야기한다.


사람의 뇌는 인지적 구두쇠에 비유된다. 구두쇠가 돈을 아끼듯이, 어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들이는 노력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렵고 낯선 말은 독이 될 수 있다. 물론 업계 관계자끼리 이야기할 때나 전문성이 돋보여야 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서 설명은 무조건 쉬운 단어, 명확한 단어, 누구나 아는 단어를 사용해서 상대방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말하는 것이 쉽게 말하는 것일까? 당연하지만 실천하기가 쉽지는 않은 3가지 기술을 이야기해본다. 조금 억지스럽게 가져다 부치기는 했지만, 일명 3E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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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쉬운 단어, 쉬운 표현을 쓴다.


특히 외래어의 남발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다. 한 예로 ‘구해줘 홈즈'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습관적으로 ‘이건 옵션이에요. 옵션’에서 옵션의 의미는 ‘무료로 포함된 사항’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에 처음 참가한 사람은 옵션을 ‘선택사항’으로 이해했다. 같은 단어를 놓고 서로 다른 해석이 이루어졌고, 결국 프로그램이 끝날 때쯤 오해가 풀릴 수 있었다.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면 상대방의 이해도를 떨어뜨리고, 자칫하면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서로 다른 일처리를 하게 할 수 있다.


이때, 초등학교 2학년의 눈높이를 겨냥하는 방법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내용도 초등학교 2학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보다 쉽고 명쾌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관련해서 어느 대학시험에서 ‘양자역학의 원리를 초등학교 2학년생에게 설명해라’라는 시험 문제가 출제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참 현명한 교수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게 핵심을 알아야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원리를 잘 이용한 시험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용어에 대한 정의 또는 합의를 하고 이야기한다.


전문 용어나 어려운 단어를 섞어서 써야 한다면 최소한 그 용어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예지력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이야기하는데, 예지력이 뛰어난 A라는 사람이 말이야. (정의)

-웨비나는 웹과 세미나의 합성어로, 온라인을 통한 대면 교육 방식을 의미하는데, 내가 이번에 웨비나를 진행하게 되었어.(정의)

-회사에서 말하는 논리적 사고는 사실의 증명이 아닌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이야기 구조를 만드는 방법을 뜻해.(합의)


어려운 단어, 전문용어, 외래어 등에 대한 정확한 합의를 하고 그다음 말을 시작해야 상대방에게 다음 말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말이야?’, ‘나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나?’, ‘왜 잘난 척이지?’라는 생각에 내 설명이 가로막힐 수 있다.


셋째, 예시를 들어준다.


가끔 내가 참 무지하나 무식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는데, 병원이나 은행에 가거나, 보험회사 직원과 이야기하거나, 부동산 관련 상담을 받을 때이다. 온갖 전문 용어로 무장해서 압박해 오는 그들 앞에 나는 선한 양도 모자라 무식한 양으로 전락하고는 한다. 솔직히 부담스럽고, 불편하고, 무슨 이야기인지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던 중 지인 중에 어떤 부동산 전문가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반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콜옵션’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


“지금 수박 가격이 10,000원이라고 합시다. 당신은 6개월 뒤 수박 값이 어떻게 변하든지 간에 그때도 수박을 10,000원에 사고 싶어 해요. 그럼 그 농부에게 가서 그때도 수박을 10,000원에 살 수 있는 권리를 1,000원에 사는 겁니다. 수박을 10,000원에 살 수 있는 권리, 그게 바로 콜옵션이라는 거예요.”


수박을 예로 설명한 방법 덕분에, 부동산 계약서도 하나 못쓰는 나는 아직까지 콜옵션이라는 개념만큼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훌륭한 커뮤니케이터는 상대방의 언어를 사용한다.
-마샬 맥루한-


친구와의 통화를 끝내고 JTBC 드라마 ‘보좌관’ 삼매경에 빠진다. 그중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전후 상황 설명은 뒤로하고, 국회위원 역의 신민아가 어느 싱글맘 카페를 찾아가 그들을 설득시켜 이끌어 내는 장면이다. 사회적인 체면과 입장을 고려했을 때, 고급지고 세련된 언어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신민아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단어들은 반전이었다.


"여러분 지금 이 상황이 개짜증 나시죠? 그러니깐 여러분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 저 같은 사람들을 개 이용하시라고요."


단어 하나에 ‘개’ 자 하나 붙였을 뿐인데, 그전까지 딱딱하기만 하던 싱글맘들이 표정이 달라진다. 점점 신민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젊은 여성들이 유행어처럼 쓰는 쉬운 단어를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방식이 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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