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글
가끔 친구가 말하는 것을 볼 때면 뭔가 장황하고 길게 말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본인이 이야기하고도 정리가 안된 걸 너무도 잘 아는 녀석이다. 꼭 말 끝에 이런 말을 덧붙인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리고 또다시 길고 긴 말이 이어진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문장의 향연 앞에 듣는 사람을 초점을 잃고,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림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물론 들은 내용이 기억에 남을 리 만무하다. 가급적 간결하게 단문으로 핵심만 말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지만, 이와 함께 활용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말의 시작에 MSG를 치고 시작하는 방법인데, 일명 말을 하기 전에 시동을 걸고 시작하는 것이다.
핵심을 강조하거나 결론을 말하고자 할 때
-중요한 건, 핵심은
예를 들어 설명하거나 근거를 들 때
-예를 들면, 예컨대
반전이나 전환을 시도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기타 사용 가능한 말로 다음으로, 요컨대,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것은 등이 있다. 어떤 말을 하기 전에, 내가 할 말에 대한 신호를 보내는 말로, 일명 연결어라고 한다. 이런 연결어의 활용 효과를 3가지로 정리해 봤다.
첫째, 문장을 짧게 하는 효과가 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말의 의미를 분절시키는 효과가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면 자연스레 말은 길어진다. 정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때 이 긴 흐름을 끝낼 수 있는 말들이 바로 이런 연결어다. 남발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만, 잘만 활용하면 이야기가 탄탄하고, 말하는 사람도 편하고 듣는 사람도 이해가 빠르다.
둘째, 상대방에게 들을 준비를 시킨다.
연결어를 활용하면, 앞에 이야기한 것과의 경계가 명확해진다. ‘지금까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는 다른 이야기할 거야’라는 전환의 의미가 있다. 상대방에게 들을 준비를 시키게 하면서, 왠지 모를 기대감까지 상승시킨다. ‘재미있는 것은’이라고 말하는 순간,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어?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려나 보나”라는 기대감이 생기면서 들을 준비가 된다. ‘중요한 것은’이라고 말하는 순간 상대방은 ‘중요한 내용을 말하려나 보네. 잘 들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셋째, 정리해서 말하는 느낌이 있다.
연결어를 사용하는 순간 상대방의 머릿속에는 내가 말할 내용에 대한 방(Room)이 생기고, 내가 말하는 내용들이 그 방에 정리되는 효과가 있다. 한마디로 상대방의 머릿속에 딱 깃발을 꽂아 놓고, 거기에 화살을 쏘는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이라고 말하면, 상대방의 머릿속에 ‘중요 방’이 생기고, ‘예를 들면’이라고 말하면 ‘예시 방'이 생기고’, '요컨대'라고 말하면 ‘요약 방’ 이 생기면서, 내가 말한 내용을 차곡차곡 그 방에 쌓아가게 된다. 뭔가 더 정리되면서 이야기가 전달된다.
연결어는 일상 대화에서 감초처럼 쓰면 말의 흐름을 정리하고 논리적으로 말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특히 긴 호흡으로 말해야 하는 스피치나 발표, 강의 시에는 그 활용도가 좀 더 높다. 개인적으로 강의를 참 잘한다고 생각하는 아주대 김경일 교수님의 강연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단어이다.
"중요한건요.."
"지금부터 친구 사례를 이야기해 드릴껀데요"
"역설적인 것이 뭐냐면.."
글은 문장으로 되어 있고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도, 앞의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다시 되돌아가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말은 즉흥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번 지나가면 끝이다. 다시 말해 달라고 요청하기가 쉽지도 않다. 이때, 연결어를 사용해서 말의 흐름을 정리하고 상대방의 이해도를 높여보자. 시동을 걸어야 자동차가 움직일 수 있듯이, 내 말에도 시동을 걸어야 상대방의 머리와 마음이 좀 더 쉽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