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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대로, 들은 대로, 경험한 대로.... 만 말하자

상대방에게 설명하는 언어

by 갓기획

어느 날 늦은 시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시간을 보아하니, 술 먹다가 전화를 한 듯싶다. 종종 있는 일이다. 거나하게 취한 친구가 갑자기 같이 있는 지인이 책을 내고 싶다고 하면서 나를 바꿔준다. 이것 또한 종종 있는 일이다.


“작가님. 정말 대단한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에, 유명 강사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은 거의 무릎을 꿇고 전화를 하는 듯했다. 덕분에 나는 잠시나마 세상 유명 작가가 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 얘기를 들은 그 사람은 친구의 과장된 정보로 인해 헛된 기대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글 쓰고 강의하는 건 맞는데, 아직 그렇게 까지는 아닙니다.”


짧게 인사 정도만 나누고, 다음에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다. 다시 친구가 전화를 바꿔 든다.


"고맙다 친구야. 그리고 미안하다. 술 먹고 늦게 이런 전화 해서..."


친구 사이에 크게 미안할 일은 아니지만, 친구가 나에게 미안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기는 하다.


"술 먹고 전화하는 것도 좋고. 책 쓰고 싶다는 사람 소개해주는 것도 좋은데. 제발 나를 부풀려서 이야기하지만 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면 안 되냐?"


친구는 매번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있는 사실에 곱하기 10은 해서 부풀린다. 마치 나를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포장하여 자신의 배경으로 삼는다. 물론 나를 좋게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친구의 순수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가끔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진짜 ‘나’가 아닌 과대 포장된 ‘나’로 비칠 때의 부담감은 실로 고통에 가깝다.


그밖에도 친구는 어디서 들은 이야기나 알고 있는 사실을 이야기할 때, 소위 뻥튀기를 해서 이야기한다. 사실에 의견을 더하고, 감정을 섞으면서 이야기가 부풀려진다. 결국 정확하게 전달되어야 할 정보에 거품이 얹혀 정보가 왜곡된다. 아메리카노에 거품이 더해져 라떼가 되고, 종종 카라멜 프라푸치노가 되기도 한다. 가끔은 신뢰가 안 가고, 친구의 말 중에 반 이상은 걷어내야 사실처럼 들릴 때도 있다.


이는 비단 내 친구의 문제만은 아니다. 가끔 주변에 말하는 사람을 보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고 과장하거나 왜곡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경험을 극적으로 만들어서 주변의 관심을 사거나, 상대적으로 자존감이 낮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한다. 내 주변에는 크게 3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1. 풍선껌형

뭔가 이야기를 할 때, 부풀려서 이야기한다.


말에 흥미를 더하고,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 극상의 표현이나 단정적인 표현을 자주 섞어 쓴다.


"진짜, 대박, 진심, 예외 없이, 틀림없이"


자신의 말하고자 하는 바에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말을 부풀리기도 한다.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 뭐도 하고 뭐도 했으니까, 그땐 진짜 대단했지. 10억은 돈도 아니었지. 이번 건도 예외 없이 내가… "


과연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부터 거품일까?


이렇게 과대 포장해서 말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그 말이 내 인식을 지배하면서 마치 사실처럼 믿게 되는 현상도 벌어진다. 소위 거짓 기억이 만들어진다. 가끔 우리 뇌는 어리 섞어서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과장이 과장을 낳는 악순환이 펼쳐진다.


2. 유리형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말을 왜곡한다.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은근히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옮기면서, 은근히 자신의 요구를 끼워 넣어서 말을 바꾼다. 때로는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나 자신의 잘못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 사실을 숨기고, 정보를 생략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반대로 말하는 것의 달인이다. 작은 일은 큰 일처럼 이야기하고, 큰 일은 작은 일처럼 이야기한다. 없는 일은 만들어서 이야기하고, 있는 일을 감쪽같이 지워버린다.


하지만 언젠가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 있고, 그것을 막아보고자 또다시 왜곡된 말이 튀어나간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스스로 느끼는 불안감의 크기만 키워간다. 처음부터 사실대로 정확하게 말했다면, 있지도 않을 일을 만든다.


3. 공수표형

하지도 못할 일을 말로만 한다.


이런 사람들이 잘 날리는 말이 있다.


"내가 잘되면 뭐 사줄게."


물론 '내가 잘되면'이라는 조건을 달지만, 결국 그 말을 실행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물론 상대방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이야 잘 알지만, 때론 그 공수표가 헛된 기대를 품게 하고 서운함만 안겨줄 때가 많다. 차라리 '내가 잘되면 뭐 사줄게'라고 if형으로 말하지 말고 '내가 잘돼서 이거 사준다'라고 완료형으로 말하는 건 어떨까?


친구와 전화를 끊고 잠자리에 드는데,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 본 이순신 장군의 명언이 생각났다.


본 것을 본 대로 보고하라.
들은 것을 들은 대로 보고하라.
본 것과 들은 것을 구별해서 보고하라.
보지 않은 것과 듣지 않은 것은
일언반구도 보고하지 말라.

- 이순신 –


주변에 아전인수격으로 정보를 과장하고, 축소하고, 왜곡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저런 말을 했을까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임진왜란 당시 전쟁 상황의 급박함이 고스란히 전해지기도 하고, 진정성이라는 화두는 시대를 막론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인생도 한 판의 ‘전쟁’과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저마다의 목표를 향해 각자만의 크고 작은 ‘전투’을 벌인다. 때론 나 자신과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기도 하고, 내 앞에 놓인 도전에 응전하며 치열하게 살아간다. 가끔 승리를 위해 나를 포장하거나,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못할 때도 있다. 이때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또는 나를 과시하시 위해 말을 부풀리거나 왜곡해서 말할 수도 있다. 잠깐의 ‘전투’에서 승리를 만끽한다. 하지만 ‘전투’에서는 이겼을지 몰라도 인생이라는 ‘전쟁’에서까지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결국 마지막에 진실은 모습을 드러내고, 그 진실 앞에 당당할 수 없다면 수많은 전투를 이긴 들 궁극적으로 전쟁에서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부지런한 친구는 그렇게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도, 다음 날 낚시를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시 전화가 왔다.


“야, 이번에 나 진짜 대물 잡았잖아. 5 짜는 될 거야.”

“와. 그러냐? 사진 있으면 보내봐"

"아니 사진은 못 찍었지. 정신없어서…”

“그러냐? 나도 지난번에 10짜 잡았는데, 사진을 못 찍었다”


라고 말하면서 한마디 더 했다.


“친구야, 가끔 네 말은 진짜 재미있기는 한데, 듣고 나면 들은 게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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