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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문제만 말하는 게 문제야

상대방을 설득하는 언어

by 갓기획

어느 날 저녁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시간을 보내는데, 친구가 와이프에게 말하는 것이 영 신경 쓰인다.


"여보 리모컨 배터리가 다 됐네"

"창틀에 곰팡이 슬었네"

“냉장고 김치가 다 쉬었네”


뭘 할 생각은 안 하고, 와이프에게 모든 일을 다 떠넘기고 있었다.


‘이 놈은 왜 말을 이렇게 할까?’


친구 와이프 삶이 왠지 고단하게 느껴진다.


물론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친구이기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친구의 말하기 방식에는 치명적인 결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문제만 이야기하고 해결책을 이야기하지 않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듣는 사람에게 가장 피로감을 주는 말하기 방식이다.


물론 일상생활에서는 문제 상황만 공유하고, 서로 의지하고 머리를 맞대고 해결할 수 있다. 문제 상황만 공유하는 것이 꼭 나쁘다고 할 수많은 없다. 하지만 그 장면이 회사로 옮겨오면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할 일도 많고 저마다의 이유로 바쁘게 일을 하는데, 갑자기 툭툭 치고 들어오는 동료나 부하직원의 말 한마디에 당혹스럽거나 화가 날 때가 있다.


"브로셔 배송 일정에 문제가 생겼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메르스 때문에 준비한 행사 진행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출장 일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고객사에서 납기 일정을 이틀 당겨 달라는데요”


가끔 이렇게 요청해 오는 동료들의 요청에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물론 문제 상황을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보고해준 직원의 마음은 갸륵하다. 문제 상황조차 보고하지 않고, 자신의 선에서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하다가 일을 키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문제만 ‘던지고’ 그걸 ‘치지’ 않으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화가 날 때가 있다.


문제 상황에 직면하면 즉시 보고하고자 하는 마음을 추스르고, 잠시 고민을 통해 대안을 떠올려 보자. 확실한 대안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능한 해결책 정도는 고민한 후에, 문제와 해결책이라는 쌍을 맞춰서 이야기하는 것은 어떨까?


“고객사에서 납기 일정을 이틀 당겨달라는데요” 보다


“고객사에서 납기 일정을 이틀 당겨달라고 합니다. 공장 일정 확인하고, 고객사에 협조를 구해서 하루 정도 앞당기는 선에서 조치해 보겠습니다.”


라고 말하면, 상대방에게 좀 더 안정감과 신뢰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이때 좀 더 일 잘한다, 말 잘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복수의 대안을 가져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책임감은 내가 가지되, 선택권은 상대방에게 넘겨주는 방법이다.


“이런 문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제가 생각해본 대안은 A, B 또는 C가 적정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 대안이 많은 것은 좋지만, 결정적으로 내 생각이 뭔지는 말해줘야 한다. 아이디어가 많은 것은 득인데, 결론이 없는 것은 독이다. 이때 한 마디 덧붙여 보는 것은 어떨까?


“저는 B가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팀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물론 답정너 상사를 만나면 내가 제기한 대안이 다 까이고, 결국 상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직장인의 운명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이런저런 대안을 제시해 줌으로써 대안들이 상사의 생각을 자극하는 트리거(Trigger) 역할을 해줄 있다. 문제부터 시작하는 것이랑 그 시작점이 다르다. 게다가 상대방에게 이 사람은 책임감 있게 문제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의견을 같이 이야기하는구나’라는 신뢰감까지 줄 수 있다.


*트리거(trigger) : 사전적 의미는 '방아쇠, 뭔가 일을 일으키는 기폭제 역할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


문제가 생기면 대안을 이야기하는 습관을 만들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있는 능력과 생각하는 힘이 생긴다. 책임감도 강해질 있다. 문제를 상대방에게 던지고 의지하는 것보다 자생력이 커지고 성장 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무엇보다 상대방에게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지려는 의지를 보여주며 신뢰감을 얻을 있다.


얼마 전 00 에어를 타고, 제주도로 출장 가는 길이었다. 제주 공항 착륙 전 갑자기 비행기가 70도 각도로 수직 상승하며 다시 솟아올랐다. 다시 생각하기 싫을 정도의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물론 제주 공항의 짖은 안개로 인한 문제였기에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화가 난 사실은 내가 탄 비행기는 그 후로 40여 분간 제주 상공을 맴돌면서 아무 조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고작 기내 방송을 통해 나온 이야기라고는


“지금 기상 악화로 인해 착륙이 어렵습니다.” 뿐이었다.


어떤 대안이나 해결책, 향후 계획에 대한 내용도 없었다. 결국 그 비행기는 전남 무안 공항에 착륙했다가, 다시 제주로 향하면서 최소 4시간의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일부 화가 난 고객들은 애꿎은 승무원들에게 화풀이만 했다. 물론 항공사 입장에서는 최선의 대안을 선택했겠지만, 그전에 승객들에게 충분히 문제 상황을 공유하고, 그에 합당한 대응 방안을 공유했다면 승객들이 느낄 불안감이나 분노는 좀 더 줄어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최소한 '인근 공항에 착륙 예정이다. 제주 공항에는 2시간 정도 후에 도착 예정이다.' 정도로 기내 방송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며, 다시는 그 항공사를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단행한다.


세상은 문제로 가득하다.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능력이 생기고, 그 결과 한 단계 성장하고 발전한다. 그 상황 속에서 상대방을 실망시키고 화나게 하는 이유는 문제 자체가 아니라, 문제를 이야기하는 태도인 경우가 더 많다. 나아가 그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책임감이 보이질 않을 때다. 이제 문제 상황을 말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공식처럼 외워서 이렇게 말해보자.


-지금 이게 문제인데(문제 상황)

-내 생각은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 (해결책)

-네 생각은 어떠냐? (선택권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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