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스쳐 지나간 말이었지만, 직장 세계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기에 아직까지 마음속에 남아있는 말이다.
직장생활은 끊임없이 이어진 문의 연속이다. 문 하나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문이 있고, 이제 좀 끝나나 싶은 순간 문은 또다시 이어진다. 여기서 '문'이라는 단어 는 결국 ‘일’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다. 회사는 일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곳이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일은 이어지고 또이어진다.
회사에는 여러 종류의 일이 있지만, 크게 3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 해야만 하는 일
- 하고 싶은 일
- 이것까지 해야 되나 싶은 일
월급 받고, 욕먹지 않기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일'은 말그대로 해야만 한다. 소위 기본은 해야 버틸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은 어느 정도 실력을 쌓고 인정을 받아야 할 수 있다. 그 마저도 회사 상황에 따라 퇴사할 때까지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 그나마 회사 생활을 버티는데 큰 힘이 된다.
문제는 '이것까지 해야 하나? 내가 해야 되는 일 맞아? '라는 생각이 꽂히는 일이다. 하기도 싫고,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일들이다. 업무 범위를 벗어나거나 난도가 높은 일이 주어지는 경우다. 문에 비유하면, 열기도 싫고, 열리지도 않을 것 같은 문이다.
이때 어떤 사람은 문 앞에 망설이다 문고리조차 잡지 않고 돌아선다.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어떤 사람은 살짝 발만 들여놨다가 다시 뺀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일단 끝까지 가보는 사람이 있다.
“그래 한번 해보자. 뭔가 도움이 되겠지”
잘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경우에 따라 성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 성과는 없더라도 경험은 쌓이고, 그경험은 실력으로 이어진다. 최소한 ‘해봤다’라는 자기 위안 정도는 챙길 수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 경험은 언젠가 반드시 다른 일과 연결되거나 더 큰 일을 하는데 자산으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지금 당장은 쓸모없고 가치 없어 보이는 일들이 언젠가는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나 또한 내 앞에 놓인 문들을 과감히 열고 들어갔을 때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때는 몰랐다. 입에 욕을 달고 살았고, 회사를 원망하며 억지로 했던 기억밖에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니 알게 되었다. 그때 열었던 수많은 문들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때의 경험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지금이다.
그 중 두 가지 일화를 소개해 본다.
어느 날 갑자기, 인사팀 팀장님이 회사 행사를 맡아서 사회를 보라는 특명(?)을 내리셨다.
“네가 말도 재미있게 하고 하니까, 이번 연말 행사 사회 좀 봐라”
순간 웃음으로 넘기려고 했지만,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강압적인 분위기 앞에 꼬리 제대로 내렸다. 일단 한다고 말하고 돌아섰다.
‘이런 망할, 회사가 미쳤나. 내가 왜?’
생각할수록 어이상실, 욕 밖에 안 나왔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불평불만을 달고 살다가, 어차피 내가 할 일이라면 ‘그냥 해보자’는 생각에 닿았다. '기왕에 할 꺼면 쪽팔리지 않게 잘하자'는 나름의 의지도 싹텄다. 멘트도 준비하고 시뮬레이션도 하면서 사회를 준비했다. 노력한 만큼 행사는 잘 끝났고, 반응도 좋았다. 그다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회사 모든 행사의 사회는 내 차지(?)였다. 종무식, 런치 데이, 심지어 연말 부부동반 모임 행사까지… 진짜 망할(?) 놈의 회사가 따로 없었다.
그때는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바뻐 죽겠는데, 사회 연습까지 해야 되나 싶었다.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는 것도 큰 스트레스였다. 그렇게 회사에서 보낸 시간이 10년이다.
하지만,그렇게 모인 시간과 경험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자산이 되었다.지금 내가 강단에 서고 사람들에게 강의를 하는 데, 그 어떤 경험보다 큰 도움이 된다. 사람들 앞에 서는데 두려움이 없어졌고, 어떻게 말하고 진행해야 사람들이 집중하는지 그런 것들을 몸에 익힐 수 있었다.
또 어느 날인가는 영업팀 상무님이 부르시더니, 영업팀 회식 후기를 사내 게시판에 재미있게 올려보라고 하셨다. 영업팀도 아닌데, 괜히 따라가서 술 한잔 얻어먹고 이게 웬 독박인가 싶었다. 자동 반사적으로 이런 말이 튀어나갔다.
“글을 쓰라고요? 제가요?”
'회사가 진짜 돌았나? 뭐야 이건? 별 걸 다 시키네.. 사표 써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직장인 그누가 임원의 말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없이 게시판에 글을 썼다. 기왕에 쓰는 거 잘 쓰고 싶었다. 운 좋게 이 역시 반응이 좋았다. 그렇게 인트라넷에 수 십 개의 글이 쌓였고,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첫 책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6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이자 글로 밥벌이하는 삶도 살고 있다.
나는 지금의 내 삶에 만족한다. 10여 년 전 '못합니다', '안 합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내 앞에 주어진 문을 열었기 때문에 주어진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과감히 문을 열었고, 잘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기에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아닐까 자문해본다.
된다고 생각하면 방법을 찾게 되고 안된다고 생각하면 핑계를 찾게 된다.
2021년에도 많은 문이 막아설 것이다. 미래가 보장되는 문, 성공으로 가는 문도 있겠지만, 더러운 문, 도저히 열릴 것 같지 않은 문, 하찮아 보이는 문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선택적 판단을 하겠지만, 일단 나에게 주어진 문이라면 그게 뭐든지 과감히 열고 들어가서 발 한번 제대로 담가보려고 한다.
시간을 써야 하고, 때론 희생이 필요하겠지만, 반드시 그에 따른 반대급부는 있게 마련이다. 작용과 반작용, 그게 세상의 진리라는 걸, 이제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