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은 것은 득(得)인데, 정리가 되지 않으면 독(毒)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고민이 많았다는 것이고, 쓸 내용이 많다는 것은 기획의 내용이 탄탄하다는 뜻입니다. 생각이 많고 쓸 말이 많은 것은 분명 득입니다.
하지만, 많은 정보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상대방에게 전달된다면 그것은 독입니다. 전형적인 하수의 기술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파티준비물 조사해서 보고해줘’ 라는 상사의 요청에 하수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낱개로 보여줍니다.
상대방은 수 많은 정보를 기억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정보 앞에 짜증이 날 수 있습니다. 득이 아닌 독으로 느껴집니다. 그럼, 고수는 이걸 어떻게 정리해서 보여줄까요? 주저리 주저리 낱개로 나열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습니다. 큰 틀로 정보를 구조화해서 덩어리를 보여줍니다.
세세한 내용을 설명하기 전에 [과자], [음료], [과일], [소품]으로 큰 틀을 제시하고, 이 틀을 상대방 머리 속에 자리잡게 한 후 세부 정보들을 설명하면 이해하기도 쉽고, 기억하기도 편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상대방의 이해를 돕고 기억에도 유리한 이유는 우리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과 관련 있습니다. 우리 뇌는 정리되지 않은 단편적인 정보들은 그냥 흘려보내는 경향이 있는 반면, 큰 틀로 구조화되어 입력된 정보는 구조를 저장하고 기억하려는 습성이 발동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표현법을 구조화 표현이라고 합니다. ‘득’이 ‘독’이 되는 것을 방지하는 가장 강력한 해독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 장표는 모 기업의 보고서 컨설팅을 진행할 때 썼던 제안서의 일부입니다. 만약 제가 적용하고자 하는 솔루션을 아래 내용처럼 낱개로 주저리주저리 기술했다면 고객사에서 오케이를 했을까요? 오케이 대신 아마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너무 복잡하네요. 좀 정리해서 제안해 주실 수 있나요?”
그래서 저는 9가지 내용을 주저리주저리 기술하는 방식이 아니라, 구조화 표현을 써서 크게 3가지 방안으로 정리했습니다. 표현도 ‘3 shot 처방’이라는 단어를 써서 그럴 듯하게 포장했습니다. 고객사에서 이런 피드백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3 SHOT, 멋진 표현이네요. 좋은 솔루션이 될 것 같습니다.”
구조화 표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장표간 구조화를 할 때입니다. 여러 가지 과제나 특징을 한 장 한 장의 장표에 담아내기 전에 먼저 큰 틀로 내용을 정리해서 제시하고 상세 내용을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전문용어로 크게 던지고, 세부적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내로우 다운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1) 한마디로 이야기하고
2) 큰 그림(구조)를 보여주고
3) 세부적으로 이야기한다.
먼저, ‘한마디로 뭐다’ 라고 핵심이나 콘셉트를 보여주는 장표를 제시합니다. 다음으로 여러가지 특징이나 과제를 큰 틀로 정리해서 ‘N가지 이야기 할꺼야’ 라는 구조화된 장표를 제시합니다. 마지막으로, 세부적인 특징들을 보여주는 장표를 하나 둘씩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우선, 공기청정기의 특징을 한마디로 ‘본질에 충실한 공기청정기’ 라는 콘셉트 장표로 보여주고, 주요 특징을 3S로 정리해서 제시한 후에, 상세 설명을 이어가는 방식입니다.
기획서는 상사의 입장에서 쓰는 것이 좋습니다. 상사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생각보다 바쁘고 머릿속이 꽉 차 있는 사람입니다. 내 기획서를 꼼꼼하게 읽고 싶은 마음도 여력도 없습니다. 딱 봤을 때 한 눈에 내용 파악이 되길 원합니다. 이때 낱개가 아닌 덩어리로 보여주는 구조화해서 제시하면, 설득까지 가는 길은 좀 더 수월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