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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Aug 19. 2019

제20화 : 꼰밍아웃하고, 할 말은 좀 하고 살자

앞후니깐 꼰대다

나는 지독한 곱슬머리다. 비 오는 날이면 외출하기가 싫어질 정도다. 비 오는 날의 푸석거림과 곱슬거림의 짜증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고통은 곱슬머리들만이 안다. 곱슬머리 유전자를 원망하고, 조상 대대로 저주를 퍼붓고 곱슬머리이기를 부정하며 수십 년을 살았다. 사람들 입에서 '너 곱슬이야?'라는 말이 나오는 게 두려웠다. 사람들이 알아차릴까 전전긍긍했다. 매번 드라이에 공을 들이고, 최상급 왁스와 스프레이로 무장했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고 겉멋에 무관심 해지면서, 이런 관심과 걱정도 조금씩 무뎌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나에게 물어온다.

“너 곱슬머리야?”

 무심함 반, 농담 반을 섞어서 받아친다.

“네. 좀 심한 곱슬이에요. 컬 이쁘죠?”

처음이 힘들었지, 이제 나에게 곱슬머리는 더 이상 핸디캡이 아니다. 인정하고 드러내는 순간 부끄럽지 않은 일이 되었다. 곱슬머리 앞에 당당한 내가 되었다.

30대 초반부터 가발에 의지하기 시작한 선배가 있다. '가발이 돌아가지 않을까', '어색함이 티 나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장난기가 발동한다. 사람들 앞에서 좀 짓궂게 그 선배를 ‘발이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가발이 화제가 되고, 착해 빠진 선배는 ‘될 대로 돼라'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자신의 머리 이야기를 편하게 하기 시작한다. 언제가부터는 가발 전문가로 빙의하여 가발 예찬론을 늘어 놓기도 한다. 그 선배는 더 이상 가발 때문에 전전긍긍하지 않게 되었다. 웃음으로, 자연스러움으로 넘겨버리는 일이 되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다. 단지 나에 대해 떠드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다들 자신의 일로 머릿속이 터져나갈 것 같은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까?',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사치에 불과하다. 내가 밤잠 설치며 고민하고, 이불 킥 백만 번 날릴 것 같은 그 부끄러움과 수치심은 남에게는 그저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라떼를 마실까’ 하는 고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말한다. 꼰대는 나쁜 것, 꼰대 방지, 꼰대 탈출, 꼰대가 되지 않는 법등을 역설한다.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꼰대' 라는 말에 사회적 오명이 씌여지는 순간, 사람들은 꼰대가 되기를 거부한다. 꼰대라는 타이틀은 앞서 말한 곱슬머리나, 가발처럼 핸디캡이 된다.

세상이 한쪽의 손을 들어주니, 이 시대 꼰대들에게는 자신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마치 원죄가 씌어졌고, 점점 자신들의 목소리를 잃어간다. 한쪽의 목소리가 일방적으로 사회를 지배하니, 그 반대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그래서일까? 이 시대 꼰대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고, 그렇다고 숨어서 울 수도 없다. 애꿎은 술잔만 비워낸다.


물론 요즘세대들의 생각과 행동이 다 잘못된 거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부족한 부분이 있고 생각이 짧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늬들만 잘 난 게 아니라 꼰대 얘기도 들을 필요가 있다는 거다.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라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차라리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꼰대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꼰대가 되기는 싫은데’ 보다 차라리 지금부터는 이렇게 말하고 할 말은 하고 살자는 것이다.


“내가 좀 꼰대라서 말이야.”
"내가 꼰대질 좀 하려고…”
“나는 꼰대니까..”

내 안의 꼰대 본성을 숨기고 감출 바에, 차라리 터트리고 드러내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악질 꼰대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요즘것들의 도를 넘어선 행동에 분이 터져 죽어나가기 전에 그냥 편하게 인정하고, 할 말은 하자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꼰대라는 꼬리표도 핸디캡이라면 핸디캡이겠지만, 그걸 드러내는 순간 더 이상 창피한 일도, 숨길 일도, 피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꼰대 소리 들을까 봐 할 말 못 하는 세상보다, 꼰대라고 인정하고 할 말은 하는 세상이 되길 기대해 본다. 홍석천씨가 커밍아웃을 하고 대한민국 대표 게이로서 할 말은 하는 세상이 된 것 처럼, 꼰대들도 꼰대 커밍아웃하고 소신있게 자신의 위치에서 할 말은 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핸디캡은 꺼내고 인정하는 순간 더 이상 핸디캡이 아니다. 이제 할 말은 좀 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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