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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Aug 21. 2019

제21화: 멀리 봐, 자꾸 흔들리잖아.

꼰대라서 할 말은 좀 할게


재작년 크리스마스 즈음으로 기억된다. 크리스마스에 '딸에게 어떤 선물을 할까?'를 고민하며 출근하는 길에, 라디오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사람의 인생을 산타클로스를 기준으로 해서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사람의 인생을 구분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사람은 태어나서 [산타를 믿었다가], [안 믿었다가], [산타가 되었다가], [더 이상 산타가 되지 않는다]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을 유아기, 청소년기, 성년기, 노년기로 무미건조하게 나누는 것보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레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네 가지 시기 중에, 나는 과연 언제 더 행복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는데, '산타를 믿었던 시기'와 '산타로 활동하던 시기'를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맞다, 그때가 조금 더 행복했었던 것 같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산타가 어떤 선물을 가지고 올까?’, ‘이번 크리스마에스는 딸에게 어떤 선물을 해주고, 그걸 본 딸의 반응은 어떨까?’ 하는 기대감에 살던 시절이 더 행복했던 것 같다.


사람은 어떤 기대가 있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그리고 실제 벌어지는 일보다 이 '기대감'이라는 것으로 인해 더 행복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운동회 당일보다 하루 전날 잠들기 전에, 달리기에서 1등을 하는 상상에 행복해하고, 막상 가보면 별 것 없는 수학여행보다 수학여행을 기다리는 일주일이 더 행복하다. 좋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행복함을 만들기 때문이다.


인생도 이와 비슷하다. ‘나는 망할꺼야’, '내가 잘 될 리가 없어’라는 생각보다 ‘나는 잘 될꺼야’,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 ‘월급이 조금은 오르겠지’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야 좀 더 희망적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 없이는 팍팍한 인생을 버티기 힘들다. 그래서 누구나 기대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반대로 이 기대가 무너지면 좌절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그게 우리네 인생이다. 기대라는 외줄을 타며 희망에 부풀기도 하고, 좌절에 몸서리치기도 한다.


관련해서 빅터 프랭클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지옥이고 차라리 죽고 싶은 사람이다. 인간 이하의 삶에 매번 좌절하고 힘겹다. 하지만, 이런 그들의 삶의 태도가 바뀌는 시즌이 있는데, 바로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날들이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수록 생기가 돌고 삶의 의욕이 커진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풀려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수용자들의 몸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실망감에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에 죽어 나간다. 막연한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상황을 다시 보면 좀 더 멀리 보지 못하고 눈 앞의 기대만을 품었던 사람들이 맞이한 최후였는지도 모른다. 물론 수용소에서의 환경과 인간의 신체적 한계 때문에 멀리 보기는 힘들었겠지만, 결국 수용소에서 나와 일상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좀 더 먼 곳에 기대를 품은 사람들이었다. 눈 앞의 크리스마스가 아닌 종전과 해방이라는 좀 더 먼 미래를 기대하고 하루를 버틴 사람들이었다.


관련해서 사람들의 신분변화에 대해서 50년간 연구를 지속해온 하버드 대학의 밴필드 교수는 ‘Time Perspective’ 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시간 전망'이라는 말인데, 이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시간까지를 고려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을 뜻한다. 남아있는 시간을 어떻게 인지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현재의 마음가짐과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연구를 통해 한 개인의 성공을 이끄는 여러 가지 요소들 중에서 '시간 전망' 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며, 성공한 사람일수록 시간 전망이 길다고 했다. 단기적인 희생이 미래의 성공을 담보한다는 믿음으로, 현재를 버티고 필요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미래에 대한 기대가 지금의 고통을 해소하지 못하고, 미래를 담보하지는 못할 수 있다.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희생하라는 말이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선택이고 가치 판단의 문제다. 하지만 지금의 힘듬이나 고통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 다 지나가는 과정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일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 조금은 만족스러운 회사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면허를 따고 첫 운전 연습을 나갔던 날.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차가 자꾸 흔들렸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화를 내셨다. 이래서 운전 연습은 돈 주고 하나 보다 싶었다. 마음의 소리가 들렸던 것일까? 아버지께서 조금은 따뜻하게, 그러나 강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들. 좀 멀리 봐. 자꾸 흔들리잖아"


지금 막 회사라는 차에 올라탄 요즘세대들의 처지도 이와 비슷하다. 치고 나가고 싶고, 하고 싶은 일 하고 싶고, 액셀도 마음대로 밟고 싶은데 내 마음 같지 않고 불안하고 불만족스럽다. 하루에도 몇 번씩 '더 다녀야 하나?', '이직하고 싶다.', '이거 퇴사 각인데?'를 고민하고 흔들리는 시기다. 그래 맞다. 흔들려야 청춘이다. 하지만 흔들리는 청춘에게 이런 말도 해주고 싶다.


"멀리 봐. 그래야 안 흔들려."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 무엇이건, 나아질 꺼라는 기대만 있다면 버티지 못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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