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논이라는 카메라 회사에 다니던 직장인 시절. 가끔, 내 손에는 대포 카메라, 꼬맹이 손에는 조그만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수족관이나 박물관에 가고는 했다. 꼬맹이는 이런 저런 시덥 잖은 것을 찍어 대고, 나는 그런 꼬맹이의 사랑스런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수족관이나 박물관 등에는 꼬맹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많이 오곤 했는데, 그 아이들도 사진 찍는 걸 꽤나 즐겨하고 있었다. 다만 카메라가 아닌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유심히 보고 있는데, 그 핸드폰에서 방정맞은 알림음이 터져 나왔다.
“깨톡,깨톡,깨톡”
엄마 단톡방에 봇물이 터진 듯 싶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아이를 향해 이렇게 소리친다.
“이제 그만 엄마 핸드폰 내놔. 엄마 써야 해"
신나게 사진을 찍던 아이 손의 핸드폰이 사라지고, 아이는 동공지진 백 만번, 금새 울음이라도 터질 것만 같다. 조용히 고개를 들어 우리 꼬맹이를 부러운 듯 응시한다. 그 때 였다. 그 아이의 슬픈 표정을 보면서 불현듯 한가지 생각이 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간다.
“애들도 사진 찍는 거 좋아하고,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왜 애들이 자유롭게 사진 찍을 수 있는 도구나 기회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이런 생각은 곧 기획으로 이어졌다.
‘아이들 손에 핸드폰 카메라가 아닌 진짜 카메라를 쥐어주자. 음악, 미술, 체육 활동 뿐만이 아니라 사진은 아이들의 표현욕구를 충족할 가장 강력한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출발한 기획의 프로젝트명을 ‘포토앤키즈’라고 하고 어린이 전용 키즈 카메라와 어린이들을 위한 사진 교실로 구체화해서 빠르게 실행에 옮겼다.
제조회사가 아닌 판매회사라는 한계로 직접 카메라를 제조할 수는 없었지만, 타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랩핑을 진행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본사에서도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디지털 카메라에 랩핑을 한 키즈카메라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런 키즈 카메라를 이용하여 키즈 카페에서 캐논 어린이 사진 프로그램을 런칭했다. 체험 프로그램의 한계로 엄마들의 갈증이 있었는데, 새로운 프로그램에 엄마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입소문을 탄 어린이 사진 프로그램은 유치원, 비전센터, 어린이집, 그랜드 하야트호텔, 워커힐 호텔, 백화점까지 확대되었다. 프로그램 문의가 쇄도하며 일정 잡기가 힘들 정도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DSLR 카메라에 밀려 처치 곤란 재고로 창고에 쌓여 있던 디지털 카메라(Feats.똑딱이 카메라) 처리에도 기여할 수 있었다.
물론 포토 앤 키즈 사업이 캐논 전체 매출에 차지하는 비중은 미비했다. 하지만, 성인에서 어린이로 제품 판매의 타겟을 넓히고,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데 기여했다. 다 떠나서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 새로운 놀이 문화를 전파했다는 데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무엇보다 기획자로서 2년간 고군 분투하며 이런 저런 실패도 맛보고, 성취 경험도 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의 장이 되어 주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내가 한 일이나 업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도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포토앤키즈 사업을 기획하고 시작한 일이 나에게 그랬다. 많은 반대와 실패도 있었지만, 그만큼 성과도 컸고 기획자로서 성장하는데 발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기획을 내가 캐논에서 남긴 위대한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그 유산의 발견, 그 힘든 고행길에 동행해준 후배들에게 이 글을 빌러 감사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