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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Dec 07. 2023

기획 사례5: 누구나 알만한 고전 기획

기획

펭귄을 날게 하자, 동물원이 살아났다

아사히야마 동물원


2018년 가족들과 떠난 일본 여행. 많은 것들이 인상적이었지만, 아직까지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는 곳이 있다. 마치 아프리카 한복판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강렬하고 생생했던 일본 뱃부의 동물원 ‘아프리카 사파리’였다. 이곳은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동물원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사파리, 야생 그 자체였다. 일단 시작부터 남다르다. 동물원에서 운영하는 철창버스가 아닌 우리가 타고 온 렌트카를 타고 그대로 야생으로 들어간다.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경험에 눈이 확 뜨인다. 마치 진짜 아프리카 야생으로 들어가는 듯한 설레임과 함께 공포감도 밀려온다. 철창 속에 갖혀있는 동물을 시시하게 쳐다보는 것과는 180도 다른 경험이 만들어 진다. 투어내내 신기함과 긴장감이 공존하며 30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지는지 몰랐다.


그렇게 코스가 다 끝나갈 때쯤 머리 한 켠에 아련히 자리잡고 있던 추억의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동물원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혁신의 대명사. 창조경영의 바이블로 꼽히며 삼성전자마저 벤치마킹했던 곳. 아사히야마 동물원이었다.


일본 훗카이도 아사히카와(旭川)시의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1967년 개장이후 매년 200만명 이상이 방문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 영광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80년대부터 일본 곳곳에 생기기 시작한 테마마크의 인기에 눌려 지속적으로 관람객이 감소한다. 대세는 일단 따르고 보는 것이 진리라고 했던가. 아사히야마 동물원에도 서둘러 놀이시설을 설치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 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사람들의 외면뿐이었다.


동물원의 위기는 갈수록 심각해졌고, 시의회나 지역 주민들의 빗발치는 폐장 요구속에 동물원 원장과 직원들은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절박함은 늘 기회와 맞닿아 있다. 고스게 마사오 원장을 필두로 한 직원들의 필사적인 동물원 살리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른바, 동물원이 살아있다 기획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약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동물원 원장과 직원들의 피, 땀, 눈물이 아이디어로 쌓였고,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과거의 영광을 넘어서 년간 약 300만명의 관람객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현재는 일본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물원 중 하나로 거듭 낫다. 과연 이 동물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지금부터 그 기획의 이면을 3 LIVE로 정리해 본다.


첫째, 동물들이 살아있다.


“동물이 활기도 없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림책과 다를 게 뭐냐?”

아사히야마 동물원 직원들을 자극했던 어느 관람객의 발언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획이 시작된다. 동물원 원장과 사육사들은 동물원 업의 본질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했다.


‘사람들은 무기력한 동물이나 훈련된 동물 모습이 아니라, 동물의 본능적 습성과 행동을 보고 싶어서 동물원에 온다.’


기존 동물원의 [동물 전시]에서 이른바 [행동전시]로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졌고, 생생한 동물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작은 시도들이 이어졌다. 나무 위에서 생활하는 오랑우탄을 위해 높은 기둥을 밧줄로 연결한 공중 방사장을 만들고, 낭떠러지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염소의 야생성을 보여주기 위해 절벽도 만들었다. 동물과 관람객 간 거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투명한 아크릴 원통 형태로 만들어 360도 각도에서 바다표범을 만날 수 있게 했다. 매년 눈이 내리는 계절에는 펭귄 산보가 개최되면서 약 1미터 지척에서 펭귄이 뒤뚱뒤뚱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했다.



여러가지 시도가 이어졌지만, 이 동물원의 시그니처는 2000년에 개장한 펭귄관이다. 이곳에 들어가면 360도 전망의 수중 터널이 있고, 마치 수영하는 펭귄이 머리 위를 날아 다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동물의 본성 그대로에 충실한 기획이었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자리한다.

‘그래. 펭귄은 원래 새였지. 왜 지금까지 아무도 그 생각을 못했을까? 정말 대단한 발상이다’


관람객 입장에서 생각하고, 동물 입장에서 고민하고, 업의 본질을 새롭게 재정의한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살아있는 동물원 기획은 결국 동물원을 살려냈다.


둘째, 직원들이 살아있다.


강의 중에 기획서 작성 실습을 하다 보면, 교육생들이 아이디어 부분에 가장 많이 적는 내용 중에 하나가 ‘인원 충원’이나 ‘홍보 증대’ 다. 한마디로 돈 쓰자는 말이다. 물론 사람 더 쓰고, 이곳 저곳에 홍보를 하면 기획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돈으로 해결이 안되는 것도 있고, 돈 써서 틀어막는 것이 결코 좋은 기획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좀더 효과적인 기획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돈 쓴 것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사히야마 동물원 기획이 보다 가치 있는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딱히 예산이 들지 않는 소소한 기획부터 예산이 투입되는 혁신적인 기획까지 모두 직원들의 머리에서 시작해서 손 끝에서 완성되었다.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모여 투자 대비 100배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냈다.


“동물들이 저만 바라보고 있으니까 관람객들은 동물의 엉덩이만 쳐다보게 되더라고요. 차라리 제가 동물과 관람객 사이에 서면 어떨까요? 그럼 사람들이 동물 얼굴을 볼 수 있잖아요”

“그럼, 중간에 서서 동물의 특성과 행동에 대해서 해설을 하면 더 좋겠네요”

“기린 먹이통을 관람석 바로 앞에 설치하면 어떨까요?”

“야행성 동물을 볼 수 있는 '밤의 동물원'도 한번 개장해 봐요”

“거대한 터널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펭귄이 나는 것을 보면 어떨까요?


소소한 변화부터 거대한 시도까지 모두 사육사들의 경험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밑바탕이 되었다. 이런 시도의 근간에는 아사히야마 동물원에서 수십 년간 유지되고 있는 자발적인 연구회 ‘학습회’ 가 있기에 가능했다. 이 모임을 통해 직원들은 동물에 대한 관찰과 경험, 관람객 피드백, 실패 사례 등을 공유하며 동물원의 발전과 변화를 도모한다. 소소한 변화부터 혁신까지 모두 사육사들의 경험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완성된 동물원, 이 곳의 미래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셋째, 디테일이 살아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여타 동물원과는 다르게 세 가지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동물들을 가두는 철장, 우리, 인위적인 쇼와 같이 살아있는 동물원 구현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없다. 또한, 동물원 내에 프린터로 인쇄한 안내판이 없다. 모든 안내판을 손 글씨로 일일이 작업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 동물원에 감성과 휴머니즘을 더했다. 마지막으로 동물원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 동물원을 생각하면 자동 재생되는 동물 특유의 냄새 및 배설물 냄새가 없다. 관람객들이 동물과 오랜 시간 함께 해도 표정이 찡그려지지 않고, 동물에게 다가가는데 방해 요소가 없다. 사실, 냄새는 동물 관리, 편의 시설, 쇼 등과 같이 겉으로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면 놓치기 쉬운 소소한 디테일이다. 하지만, 아사히아먀 동물원은 이런 소소한 것 조차 놓치지 않고, 기획으로 연결시켰다. 아사히야마 동물원 기획이 더 단단해 보이는 이유다.


일본 동물원 예찬은 이 정도로 하고, 이제 현실을 돌아볼 차례다. 대한민국의 동물원은 지금 어디까지 와있을까? 2023년 현재의 동물원은 많이 달라져 있겠지만, 5년 전쯤 서울의 모 동물원에서의 기억은 그리 달갑지 않게 남아 있다.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생기 없는 동물. 오물 냄새 진동하는 공간. 관람객들이 무분별하게 투척하는 먹이(?)를 가장한 오물까지 더해진 공간은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평생 올 거 오늘 다왔다라는 심정으로 관람객들이 발길을 돌리는 그런 공간이었다.


업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고, 직원들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을 모아본다면 아사히야마 동물원을 능가하는 동물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대한민국 동물원 곳곳에서도 3 Live 가 이어지길. 세계 곳곳에서 소개되는 관광명소 중 한 곳이 되길. K-ZOO 또한 한류 대열에 가담하길 그 누구보다 기대해 본다.


* 위 내용은 '시선의 발견(임영균)' 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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