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예전 드라마를 보면 동네 길거리에서 확성기를 틀어 놓고 사장님들이 영업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3가지가 단골 소재인데 첫째는 찹쌀떡, 둘째는 달걀, 셋째는 세탁이었다.
‘찹살떡~메밀묵’은 늦은 밤 간식의 대명사였고, 달걀이 귀하던 시절 ‘달걀이 왔어요~싱싱한 달걀이 왔어요’ 는 엄마들을 버선발로 뛰쳐나가게 만들었다. 세탁기가 귀하던 시절 세탁소 사장님들이 동네를 돌며 “세탁~세탁~” 하고 돌아다니며 세탁물을 수거해 가던 풍경은 꽤나 정겨운 풍경이었다.
이제 다시는 메밀묵, 달걀, 세탁을 외치던 사장님들의 정겨운 외침을 들을 수 없지만, 이런 서비스들이 현대적으로 해석되어 런칭한 서비스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세탁의 추억을 화려하게 부활시킨 서비스가 있었으니, 비대면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 다. 런드리고는 밤 10시 전에 세탁물 수거를 신청하면, 다음날 밤 12시 전까지 집 앞으로 세탁물을 가져다주는 서비스다. 한 마디로 마켓컬리의 세탁물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바쁜 직장인, 1인가구 등을 타겟으로 하는 서비스다.
나는 1인 가구는 아니지만, 사업으로 바쁜 와이프가 내 옷 세탁을 본인, 딸에 이어 3 순위로 배정하면서 원하는 옷을 제때 입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해서 찾게 된 서비스다. 1년간 이용해 본 이 서비스의 특징을 3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액제 가격으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내가 선택한 요금제는 와이셔츠&드라이 62 요금제인데, 와이셔츠 20장과 드라이 크리닝 5벌을 6만 2천원에 이용하고 있다. 가격도 저렴한데, 세탁소에 가서 옷을 맡기고, 또 다시 시간내서 찾으로 가는 수고비까지 감안하다면 그야말로 개이득이 아닐 수 없다.
둘째, 또 하나의 옷장 런들렛을 이용할 수 있다. 런드리고 서비스에 가입하면 런들렛이라는 작은 옷장을 선물로 준다. 마켓컬리의 배송박스와 같은 기능을 하는 옷장으로 세탁을 맡길 옷을 넣어면 기사님이 옷장을 통째로 가져가서 다시 세탁이 된 상태로 가져다 논다. 집안에 굳이 더러운 세탁물을 보관하고 있지 않아도 된다.
셋째, 비대면 앱을 통한 서비스 관리가 철저하다. 수거부터, 세탁, 배송, 기타 특이 사항 등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앱 하나로 관리한다. 내 세탁물이 어떤 상태이고, 어떤 서비스를 이용했는지, 정액제 서비스 비용이 얼마 남았는지 등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말그대로 손가락 하나로 세탁관리가 가능한 세상이 된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세상에 잘 알려진 부분이다. 이 사례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는 지금 부터다. 우선, 이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의식주컴퍼니 조상우 대표님 이야기부터 들어본다. JTBC ‘다수의 수다’ 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했던 이야기다.
“예전에 원룸에서 자취할 때 빨래 건조대가 차지하는 자리가 너무 커서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죠. (중략) 한 번은 미국에 출장을 갔는데, 제 차 유리창이 다 깨져 있고 노트북을 비롯한 모든 귀중품이 없어진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도둑이 제 차에 있는 빨래는 그냥 두고 갔다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생각했죠. 빨래는 아무도 훔쳐가지 않는구나. 집 앞에 빨래를 두고 수거해서 다시 배송해주는 서비스로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생각으로 이어진 거죠. 그게 지금 런드리고의 시작이었습니다.”
[원룸 빨래 거치대 비효율 + 도둑놈도 안 가져가는 빨래]
두 가지 경험이 절묘하게 버물여 지면서 런드리고가 세상에 나왔다.
흔히들 기획이라고 하면 설문조사를 먼저 하거나, 자료 조사를 하거나, 시장을 분석하거나, 환경 분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상우 대표님의 접근은 달랐다. 머리 속에 세운 가설을 믿고, 일단 사업을 시작하고 본 것이다. 물론 사업을 완성해 나가기 위해 추후 철저한 시장조사나 철두철미한 계획을 세웠겠지만, 그 시작만큼은 가벼게 ‘툭’ 하고 시작한 것이다. 일상의 경험을 가설로, 가설을 사업 시작의 발판으로 삼아 빠르게 시행한 것이다.
혹시 런드리고 대표님께서 우리 나라 세탁시장을 분석하고 고객들을 인터뷰하느라 시간을 허비했다면 지금 우리가 이용하는 런드리고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좀 더 공간 집약적인 건조대나 효율적인 세탁기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까?
조사 이전에 나만의 가설이 있어야 좋은 기획을 할 수 있다. 자료를 찾고 분석하기 전에 일상의 경험을 놓치지 않고, 그 경험을 가설로 연결시키는 것이 좋은 기획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찾아가는 서비스 열풍이다. ‘이런 것 까지 집으로 가져다 준다고?’ 놀라움을 자아낼 정도로 생각치 못했던 상품과 서비스가 집으로 찾아오고 있다.
세차 = 세차장이라는 공식을 깨고 세차트럭이 집 앞으로 와서 내 차를 깨끗하게 닦아주고, 넥센 타이어는 타이어교체 = 정비소 라는 공식을 깨고, 집 앞에서 타이어를 교체한는 진풍경을 연출해 냈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간 현대자동차는 ‘캐스퍼’ 를 온라인으로 판매해서 차를 집 앞까지 가져다 주는 서비스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이제 더 이상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가거나 약을 타기 위해 약국을 가지 않아도 된다. ‘닥터나우’ 라는 앱을 이용하면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고 약도 배달을 통해 집으로 배송이 된다. 레스토랑이 집으로 찾아오고, 안경을 맞추러 안경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그동안 직접 가서 사거나 행동을 해야 하는 서비스를 경험하면서 시간, 이동, 공간 등으로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었을까? 누구나 오프라인 공간에서 불편과 불만을 느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지점에 잠깐 시선을 멈추고 고민해 본다면 거기서 또 하나의 생각치도 못했던 찾아가는 서비스가 탄생할 것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기회가 만들어 질 것이다. 다만, 고민하기 전에 일단 빠르게 시작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기회라는 점 또한 잊지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