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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Oct 24. 2019

제49화:전쟁에서 결국 사람을 찌르는 것은 '칼'이다.

사이글, 살면서 나는 이런 걸 배웠다.

캐논에서 근무하던 시절, 나는 부산 출장을 좋아했다. 여러 가지가 좋았지만, 부산 지역에서 꽤 유명한 사진 작가이자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후배 승진이와 술 한잔 하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  


어느 날인가 승진이와 소주 한잔을 하는데, 약간 취기가 오른 승진이가 이런 말을 한다.  


“형님. 제가 키가 좀 작잖아요.”


( ‘좀’이 아니라…’많이’ 겠지…)


“그래서 학창 시절에 아버지께 '왜 나를 작게 낳아서!!” 라며 매일 투정을 부렸던 것 같아요. 근데 그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조용히, 그러면서도 강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네가 그렇게 태어난 걸 후회하면 뭘 하냐고, 바꿀 수 없는 것을 탓하면 뭘 하냐고.”


(사실 니가 탓할게 키만은 아닐텐테…얼굴, 성격 탓도 좀 같이 하지 그랬니?)  


“그때는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조차도 원망스럽고 미웠어요. 사실 제 키가 작은 것이 아버지 탓은 아닌데, 한 편으로는 그렇게 투정이라도 해야 제 분이 풀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사진을 시작하고 나서, 또 한 번 아버지 탓을 합니다. 제 키가 사진을 하기에 제법 좋거든요. 더 빠르게, 더 낮게 볼 수 있으며, 높은 곳은 가벼운 몸으로 오히려 더 수월하게 올라가거든요. 게다가 제 외모가 제법 동안이잖아요.


(그…그러냐? 니가 동안이냐?)


“근데 이게 또 제법 사진하기에 적당합니다. 더 친숙하게 위화감 없이 사람들에게 다가서기 좋더라고요.”


여기까지 말한 승진이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마지막 말을 이어간다.  


“지금은 투정 부릴 곳도, 탓 할 수 있는 아버지가 계신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저는 제 작은 키 탓에 좋아하는 사진을 잘할 수 있고, 제가 가진 동안 외모 덕에 앞으로도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매번 장난기만 가득한 녀석이었는데, 제법 생각이 깊다는 생각과 함께 그 동안 키 작다고 놀렸던 내 새치 혀가 민망하게 느껴졌다. 그 동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장난으로라도 놀렸을 텐데, 그 때마다 이런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을 승진이의 삶을 되돌아보니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승진이는 자신의 단점을 점으로 승화시키며 지금은 부산에서 잘나가는 사진 작가이자 강사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키는 매우(?) 작지만 꽤 잘생긴 승진이와는 다르게, 나의 외모는 썩 훌륭하지 못하다. 그래 정확하게 못생겼다. 학창 시절 못생긴 외모가 늘 못 마땅했고, 그때마다 이런 얼굴로 나를 세상에 내놓은 부모님을 원망했다. 그럴 때 마다 엄마는


“아니야. 아들 잘 생겼어”


라고 위로를 건네고는 했지만, 뒤돌아서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걸로 봐서 진정성은 1도 없었던 것 같다. 엄마가 봐도 아들이 못생겼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외모 자신감이 바닥에 붙어있었고, 다른 것들에서도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못 생겼다’는 생각에 괜히 위축되고 소극적이 되갔. 그리고 그때 쯤 신문에서 여러 학교의 재미있는 급훈에 관련된 기사를 봤는데, 그 중에 한 학교의 급훈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 간판이 바뀌면, 와이프 얼굴이 바뀐다’


그 급훈은 LTE 속도로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얼굴은 바꿀 수 없지만, 당시 중학교 2학년인 나에게 대학 입시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대학간판을 바꾸고, 와이프 얼굴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남아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물론 공부는 재미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성적이 오르고, 상위권으로 갈수록 나를 보는 사람들이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름의 후광 효과가 발동하고 있었다. 점점 재미가 붙고 탄력이 붙으면서 성적은 계속해서 올라갔고, 고등학교 2학년때는 전교 1등을 다투는 실력이 되었다.


그때부터 학원에서는 전교1등이라는 별명과 함께 이것저것 물어보려는 여학생들의 관심도 받고, 그토록 원하던(?) 여자친구도 생기면서 어느 정도 외모 콤플렉스를 벗어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 외모가 달라지는 않았지만, 잘하는 다른 것이 있으니까 자연스레 자신감도 따라왔다. 지금도 그 자신감 하나로 버티며 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단점이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있다. 꽃미남 연예인도 자신의 얼굴을 보면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있다고 하니, 단점이라는 것은 분명히 상대적인 것 같다.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다. 그 단점을 단점으로 놔두거나 그것을 원망하고 불평할 것인지, 아니면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내가 가진 다른 점을 극대화 할 노력을 할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선택이다. 하지만 그 태도의 차이에서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단점이 바뀌지는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을 대하는 생각의 차이는 분명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승진이 인생이 그리고 내 인생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내 외모가 맘에 들지 않는다. 지금도 못생긴(?) 아빠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 뻗친다. 미모의 엄마 얼굴을 좀 더 닮았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미련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외모 덕에 다른 걸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간절함이나 동기가 만들어졌고, 지금 생각하니 그 결과가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이런 얼굴을 허락해 주신 아버지께 감사한다.


그리고 가끔식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에  아버지의 얼굴이 박보검 급이어서 내 얼굴도 달라졌다면, '지금의 내 삶은 지금보다 더 나아졌을까?' 라고 말이다. 물론 아니었을 것라는 것이 내 결론이다.  


어쩌다 보니 두 사람의 콤플렉스 담론이자 긴 인생사가 펼쳐졌는데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전쟁에서 결국 사람을 죽이는 건 방패가 아니라 칼이다.'


내가 가진 단점은 방패로 방어하면 충분하고, 대신 내가 가진 단점에 집착하기 보다, 그걸 극복하고 세상에 나를 던질수 있는 강점을 발견하고, 그 칼을 날카롭게 하는데 집중해보자. 단점은 관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문제는 강점, 바로 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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