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갓기획 Oct 21. 2019

제48화:커피 나왔습니다에 더이상 붙일 존대말은 없다.

사이글, 살면서 나는 이런 것을 배웠다.

내 주 사무실은 커피숍이다. 동네 근처에 몇 군데 커피숍을 지정해 두고, 나름의 순환 근무를 한다. 각각의 커피숍마다 한 두 가지 특장점을 달리 하고 있어서, 그날그날 땡기는 데로 선택을 해서 출근을 한다. 어느 커피숍은 커피가 맛있고, 어디는 분위기가 좋고, 또 어디는 일하는 직원이 친절하다. 오늘은 왠지 친절이 그리워 친절한 직원이 근무하는 커피숍을 선택해서 출근을 했다.


이 커피숍은 1,2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는 보통 2층에 자리를 잡는다. 1층은 카운터랑 커피 기계가 있어서 조금 시끄러울 때가 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2층이 자리가 꽉 차 있다. 할 수 없이 1층에 자리를 마련한다. 자연스레 오고 가는 손님들과 직원의 대화가 들려온다. 기분 좋은 백색소음이다. 역시나 그 직원은 너무 친절하고, 손님들을 기분 좋게 해 준다. 직원 아닌 사장님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 저게 맞나?’ 싶을 정도의 언어가 귓가에 들려온다.


“4천 원 받았습니다. 커피 바로 나오십니다.”

“자리는 2층에도 있으세요


이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이상한데 정확하게 뭐가 이상한지는 모르겠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역시나 잘못된 표현이라고 한다. 전문 용어로 이런 표현을 ‘사물 존대’라고 일컫는다. 우리말의 존댓말은 그 민족의 특성(?)상 사람에게만 높이라고 만들어졌는데, 언제가부터 이상하게 변형되어 '커피'를 높이고 '자리'를 높이는 말들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표현은 지극히 잘못된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만연하게 사용되고 있고, 특히 서비스 직종의 언어 표현에서 자주 보인다고 한다.


“손님 그거 만원이십니다”

“사이즈가 없으세요”

“신발은 저쪽에 있으세요.”


이런 표현은 종종 회사 내에서도 발견된다.


“사장님 말씀이 계셔서, 오늘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부장님, 참고 자료는 저쪽에 있으세요”


도대체 언제부터, 왜 이런 표현들이 사용되기 시작한 걸까? 나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생각해 본다. 참고로 중요도에 따라 첫 번째 이유부터, 두 번째, 세 번째 순서로 좀 더 그럴듯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의식 없이 쓰는 말이다. 

말 그대로 무의식적으로 쓴다. 이런 표현이 맞나, 틀리나에 대한 의식 없이 그냥 쓰는 말이다. 선배가 쓰니까, 회사에서 쓰니까 그냥 쓰기 시작한 말들이 왠지 더 존대스러운 표현 같아서 퍼져 나갔다. 게다가 사회적인 검증 시스템이 없다. 한글문화연대나 국립국어원 같은 기관에서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 영향력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다. 무엇보다 이런 기관들의 노력을 알고, 고쳐 쓰려는 우리 모두의 의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두 번째로, 괜한 피해의식에서 쓴다.

속된 말로 알아서 기는 거다. 문법대로 하다 보면 욕먹는 것이 우리말이라는 표현도 있다. 내가 쓰는 말이 분명히 맞는데, 반대쪽에서 시비를 걸어오는 게 싫어서 처음부터 아예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커피 나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맞지만, '야! 왜 반말이야!! 손님이 우습게 보여? 다시 말해봐! 커피 나오셨습니다 라고 해야지'라고 말하는 쓸데없는 인간들을 상대하기 싫은 마음에 어쩔 수 없이 '손님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라고 말한다. 쓸데없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느니, 차라리 그 사람이 듣고 싶다고 하는 이상한 말을 쓰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대접받기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이다.

두 번째 이유와 정확히 반대선상에 있는 이유이자, 두 번째 이유를 창조한 근원이기도 하다. 서비스직, 판매직 등을 대할 때 우리는 어느 정도는  대접받고자 하는 심리가 생긴다. 알게 모르게 갑으로 빙의하게 된다. 그래서 어쩌면 ‘커피 나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커피 나오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기분 좋고, ‘여기 자리 있습니다’ 보다 ‘여기 자리 있으십니다’가 더 대접받는다고 느끼는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까지는 사람인 이상 괜찮다고 생각한다. 존중받고, 대접받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늘 몇몇 이상한 사람 때문에 생긴다.


'손님, 찾으시는 사이즈가 없습니다'라는 말에 '왜 반말해, 손님이 우습게 보여? 점장 나오라고 해!' 등으로 괜한 시비를 걸고, 생트집을 잡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 어디에도 '사이즈'에 붙일 존댓말은 없는데, 있지도 않는 존댓말을 요구하며 '사이즈가 없으십니다'로 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소위 ‘업소용 존댓말’을 가르치는 학원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가르치는 주된 내용은 무조건 말 뒤에 ‘세요’, ‘십니다’를 붙이는 것이라고 한다.


"커피 나오셨습니다."

"이쪽이 아메리카노세요."

"19.000원이십니다."


물론 '말투 하나 잘 못쓰는 게 뭐 어쨌다고', '좀 쓰면 어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맞는 얘기다. 이런 말투를 써서 내가 좀 편해지고, 상대방도 기분 좋아지면 그만이다. 하지만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과 그걸 맞춰주는 마음이 악의 순환고리를 이루며 커가면서,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답처럼 돼버리는 것이 문제다. 이런 말들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쓰임이 많아지면서 정답처럼 인식되는  데 문제가 있다.


좀 더 나아가서, 어쩌면 이런 말들로 인해 '사람들이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도 든다. 말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이 커지는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사물 존대 표현으로 인해 몇몇 사람들이 점점 더 꼰대스러워지고, 대접을 강요하고, 판매/서비스 직을 넘어서 나보다 아랫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더 강해지면 어쩌나라는 우려가 든다.


내가 親꼰대적인 글을 쓰지만, 상황이나 지위 등의 소위 포지션 파워를 가지고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대접을 강요하는 꼰대상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꼰대란 어른답게 행동하고, 어른으로서 해야 할 말을 정당하게 하는 꼰대이다. 그런 의미에서 ‘십니다’, ‘세요’라는 사물 존대어는 세상에서 없어져야 하고, 이런 말의 사용을 바라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부디 이 글을 읽는 후배들, 판매직, 서비스직 여러분들도 정확하게 알고, 당당하게 바른말을 사용하기를 부탁드리며, 마지막으로 이 시대 슈퍼 꼰대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이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그 사람을 제대로 대접해준 적이 있는가? 아니면, 단 한 번이라도 서비스직, 판매직, 아랫사람을 대할 때 존중하고 대접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는가?'


만약 당신의 대답이 '아니요'라면, 앞으로 그런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해주기 바라고, 만약 그것이 싫다면 그냥 '나오신 커피' 말고, '나온 커피'나 아무 말 없이 마셔줬으면 좋겠다. ‘커피 나왔습니다’, 여기에 더 이상 붙일 존댓말은 없으니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47화:'할많하않' 하지 말고, 제대로 피드백 해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