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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Sep 25. 2019

제37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질이 시작된다.

꼰대라서 할 말은 좀 할게

최근 방영 중인 TVN 프로그램 중에 ‘일로 만난 사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한 마디로 연예인 직업 체험 프로그램이고, 쉽게 말해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방영되었던 ‘KBS 체험 삶의 현장’의 현대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옛날 감성 돋기도 하고, 단순히 웃음만 파는 예능이 아닌 삶의 애환과 지혜가 녹아 있는 프로그램이 의미 있고 재미있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내가 본 것은 4회였는데, 이날의 작업현장은 야간 KTX 열차 청소 작업장이었다. 빠른 시간 청소를 하고 열차를 보내야 하기에 스피드가 요구되고, 사람들이 여기저기 숨겨놓은 쓰레기를 찾아내는 일이 고되게 보인다. 게다가 주간이 아닌 야간에 하는 일이기에 체력적인 소모도 크게 느껴진다. 서너 시간의 고된 작업이 끝나고, 꿀맛 같은 휴식 시간 1시간이 주어진다. 이때 참가자들 사이에 이런저런 말이 오가는데, 어느 참가자의 말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수 없이 열차를 타고 다녔지만, 누군가 청소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아마 다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어딘가 바쁘게 이동해야 하거나, 여행의 즐거움에 취해 열차를 이용하기만 했지, 누군가가 그 열차를 청소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거기까지 생각할 이유도 책임도 없다. 깨끗한 열차는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하다. 모든 게 그렇게 정상이고, 제자리에 있을 때는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 제자리가 어긋나거나 비어있을 때야 비로소 불편함을 느끼고 그것의 소중함과 의미를 발견하고는 한다.


요즘 지방 출장이 잦아서, 그때마다 자가용 대신 고속버스나 KTX를 타고 이용하는데, 가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있다. 자기가 먹고 버린 쓰레기를 고스란히 의자나 잡지꽂이에 두고 내리는 장면을 볼 때이다.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다는 듯이 너무나 당연하다. KTX 비용 지불했으니까, 고속버스 비용 지불했으니까 그 자리를 내 맘대로 쓰고,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쓰레기를 권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버린 내 쓰레기는 누군가의 일거리가 된다. 지인 중에 어떤 사람은 ‘네가 먹은 쓰레기는 좀 가지고 내려라’라고 핀잔을 줬더니, 오히려 나에게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지. 그래야지 치우는 사람도 할 일이 생기지’라고 말하며 웃어 대는데, 오만정이 떨어진다. 세상 이런 갑질이 또 있을까 생각해 본다.


조현아 씨가 사무장에게 한 행동만 갑질일까? 몽고식품 회장님께서 기사를 폭행한 것만 갑질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 사람들은 그렇게 한 행동이 자신의 위치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거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거라고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한 행동인데, 그걸 사람들이 갑질이라고 하는 것이다. 꼭 사람을 때리고, 내가 가진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만이 갑질은 아니다. 어쩌면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행동이 그 누군가에는 갑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음식점에서의 상황도 비슷하다. 가끔 음식점을 가면, 맛있게 먹던 음식 맛을 뚝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다. 아침 7시쯤 00 천국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내 옆 테이블에 자리 잡은 아저씨가 주문을 한다.


“아줌마, 여기 라면 하나”


처음에는 단골인가 싶었는데, 이어지는 말을 들어보니 아닌가 보디 


“저기! 물은 셀픈가?”


처음 오는 사람인 듯하다. 그런데 당연한 듯 반말이 튀어나간다. 내가 돈 내고 이용하니까, 나는 너보다 위고, 나는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인가?


‘아저씨. 식당이라고 해서 돈 내면 다 먹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먹고살기 힘들고, 자영업자 죽어 나가는 시대에 이 분들이 버티고, 밤낮 안 가리고 일해주기 때문에 당신이 거기서 라면도 먹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반말하지 마세요.’


라고 한 소리 해주고 싶지만, 그냥 조용히 먹고 나온다. 대신 아주머니께 이런 말을 건넨다.


"찌개 예술이네요. 너무 맛있게 먹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물론 꼭 그렇게까지 해야 돼? 오버하는 거 아니야?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돈이 거래되고, 정당한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내가 꼭 감사인사까지 할 필요는 없다. 물론 당연하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다. 대신 어디 가서 누군가의 갑질은 비난하는 행동을 하지는 말기 바란다. 똥 묻은 겨가 벼 묻은 겨 비난하는 일은 진짜 최악이다.


신입사원 시절, 받았던 가르침 중에 ‘회사에서 화장실 청소하시는 분께 가장 잘해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이 있었다. 그때 당시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다. 하지만 오랜 시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위해, 회사를 위해 청소하시는 분들이 있기에 내가 조금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비록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아침에 깨끗하게 비워져 있는 쓰레기통, 쾌적하게 볼일을 볼 수 있는 화장실이 있기까지는 분명 그분들이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윗사람에게 잘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청소 아주머니나 주차 관리 아저씨들에게 더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끔 쓰레기통 옆에 과자를 놔두기도 하고, 여름에는 손 선풍기, 겨울에는 핫 팩도 사다 드리고 했다.


신입사원 시절 내가 배운 교훈, ‘화장실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에게 잘해라’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는 제대로 알 것 같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으니 그 이면에 숨겨진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고, 그 안에는 필히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이 담보되어 있다.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 나아가 그 고마움과 감사함을 되돌려 줄 수 있는 인성은 언젠가 반드시 빛을 발하게 되어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있을 뿐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권리가 되고, 권리라고 생각하는 순간 편해진다. 그리고 그 순간 갑질이 시작된다. 갑질은 꼭 가진 사람들만이 하는 게 아니다. 나도 내가 가진 것을, 내가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때 그것이 누군가에게 갑질이 될 수 있다.


정신없이 출근해서, 정신없이 일에 착수하기 바쁘겠지만 한 번쯤 쓰레기통을 보자. 어제 버린 커피잔, 코 푼 휴지, 구겨 넣은 종이, 간식 쓰레기 등이 그대로 있지 않고 비워져 있다면, 거기에는 분명 누군가의 노력과 고마움이 담겨있다. 그런 것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일 잘하는 사람보다 더 중요하고 요즘 시대 더 필요한 역량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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