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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Sep 27. 2019

제38화: 요즘세대들의 워라밸, 잃어버린 의미를 찾아서

꼰대라서 할 말은 좀 할게

요즘 예능 대세이자 외식산업의 대가 백종원 씨가 처음 시작한 음식점은 ‘백종원의 원조 쌈밥집’이었다. 지금은 거리 곳곳에 백종원 씨의 이름이 걸려있고 수 백개의 매장을 경영하고 있지만, 그 출발은 단출한 ‘원조 쌈밥집’ 하나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원조 쌈밥집이 잘 돼서 지금의 백종원 씨가 있는 것이다.


백종원이라는 브랜드를 떼고 봐도 이 식당은 다른 쌈밥집과는 다른 몇 가지 특별함이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소스에 찍어서 구워 먹는 삼겹살’이다. 비록 지금은 어느 식당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기에, ‘그게 뭐 대단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백종원 씨가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비결이 숨어있다.


설탕과 소스 애호가인 백종원 씨는 ‘대패 삼겹살’의 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기를 찍어 먹을 수 있는 간장 소스를 개발했다고 한다. 여느 소스와 마찬가지로 고기를 구운 후에 찍어 먹는 소스였다. 맛도 있었고, 손님들의 반응도 괜찮았다. 그런데 몇 번 찍어 먹던 손님들이 이내 다시 쌈장으로 손길을 돌리고, 간장 소스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왜일까?


문제는 간장 소스 위에 둥둥 뜨는 돼지기름이었다. 미관상 보기도 좀 그렇고, 왠지 돼지기름을 먹는다는 기분에 손길을 외면했던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종원 씨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냈다. 소스에 먼저 냉동삼겹살을 찍은 후, 고기를 굽는 방식이었다. 기존의 방식과 순서를 바꾼 것이다.


관점을 바꾸고 생각을 달리하니 전혀 새로운 방법이 탄생했다. 대단한 발견이고 기획이다. 남들이 A만 할 때, B를 시도하는 창의력과 사소한 것이라도 지속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점이 돋보인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왜 꼭 이렇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과 노력이 지금의 백종원 씨를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기발한 해결책은 백종원 씨가 꿈에서 발견한 것이라고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평소의 고민이 꿈에서 ‘탁’하고 해결된 것이다. 일과 삶을 분리하지 않고 매사 내가 하는 일에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가 꿈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워라밸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즘 회사생활을 이야기할 때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언젠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워라밸’이라는 단어는 내 삶과 회사 생활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었고, 회사 선택의 최우선 순위이자 추구 가치가 되었다. 거의 종교적인 신념에 가깝다. 6시 이전의 나와 6시 이후의 나를 철저히 분리시키며, 그 균형점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대한민국 곳곳에서 워라밸 광풍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워라밸의 개념이 조금씩 변질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일과 삶의 조화가 아닌 일과 삶의 분리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시간을 기준으로 퇴근 시간인 6시 전까지는 철저히 나를 희생하는 시간이고, 그 이후에 온전한 내가 된다는 뜻으로 변질되어 균형과 조화의 의미 대신 분리라는 개념이 자리 잡아가는 것 같다. 내 삶의 중심에서 일을 밀어내고, 그럴수록 그 반대 선상에 있는 삶의 의미에 더 집착하고 의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 ‘일이란 단지 내 삶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실제로 모 취업전문 기관의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일이 가지는 의미는 어디까지나 내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경제적인 수단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답변한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일에서 어떤 의미를 찾거나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재미있어’, ‘일이 보람돼’,라고 말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회사나 일은 언제나 재미없고 지겨운 곳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일도 삶의 일부이고 하루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을 제외하고 삶을 논할 수 있을까? 일이 싫다고는 하지만, 그 일을 하기 때문에 삶을 누릴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는 우리에게 일이 고통이고, 회사가 지옥이라면 과연 그게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퇴근 시간 후에 일을 시키는 상사는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퇴근 후 심심치 않게 카톡을 보내거나, 주말 출근을 강요하는 상사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옳지 못하다. 일한 만큼 즐겨라, 일과 휴식의 균형, 저녁이 있는 삶은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절대 신봉하는 가치이자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워라밸’이라는 가치에 매몰되어 꼭 일과 삶을 완벽하게 분리하고, 일 할 때는 일만 하고 삶에서는 일이라는 것이 끼어들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몸은 일터에서 완벽하게 분리될 수 있지만, 우리의 머리나 생각까지 꼭 분리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코끼리 생각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한다고 코끼리가 떠오르지 않는 것도 아니고, 레몬만 생각해도 침이 고이는 게 우리 뇌의 특징인데, 아무리 안 하려고 해도 가끔씩 일 생각이 거나, 일과 관련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하거나 유튜브를 보다가도  일과 관련된 생각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때 그 순간은 일 하는 시간이 아니니까, 회사에 가서 다시 생각해야지 하고 내 뇌를 꺼둘 필요는 없다. 잠깐 일하는 모드로 돌아가서 메모를 하거나 아니면 짧게 일하고 나서 다시 휴식모드로 돌아가도 된다. 이렇게 짧은 시간 일한 효과는 책상에 앉아 2-3시간 고민하는 것보다 효과적일 때가 많다. 그리고 이렇게 일한 보상으로 회사에 가서는 아무도 모르게 나만의 2-3시간을 여유 있게 보내는 편이 낫다. 실제 내가 일을 했던 방식이기도 하고, 그 누구보다 많은 일을 했지만 야근을 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관련해서 3B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다. 대놓고 일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Bath,Bus,Bed 에서 나도 모르게 창의적인 생각이 가장 많이 떠오른다는 법칙인데, 그 만큼 우리 뇌는 쉬지않고 사고하고 내 의지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워라밸을 핑계로 이런 생각이 튀어오르는 순간을  억지로 막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일이 빠르고 일을 잘하는 사람은 평소 24시간 두뇌를 풀가동 하며 일 생각을 머릿속에서 놓지 않는다. 일을 함에 있어 굳이 시간적인 경계를 두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에 책상에서만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생각을 할 수 있는 곳은 그 어느 곳이든 일터가 되고, 책상이 된다. 일은 엉덩이나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갇힐 필요는 없다. 안동 찜닭이 뜬다고 해서 다 안동 찜닭집을 차리고, 떡볶이 집이 유행한다고 해서 골목 여기저기에 떡볶이집이 생겨나고, 마라탕이 유행한다고 해서 많은 가게들이 마라 관련 메뉴로 갈아타는데, 그런 행보의 결과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잘되는 집 몇 곳만 남기고, 곧 그 자리에는 또 다른 유행을 따라 다른 음식점들이 생겨난다.


같은 맥락으로 워라밸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회사가 너무 힘드니까, 일이 너무 고되니까, 상사가 나를 고통스럽게 하니까 워라밸이라는 단어 뒤로 나를 숨기고 그 단어에 기대고 의지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의존도가 더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회사와 일은 더 하기 싫고 쳐다도 보기 싫은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최선이라지만, 그럴 수 없다면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고 즐기려고 노력하자. 내 일에 애정을 쏟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을 대신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일이 점점 싫어지고 힘들어진다. 물론 회사에서 하는 일이 100% 나를 위한 일도 아니고, 내가 일한 만큼 정확하게 보상받는 곳은 아니다. 백종원 씨의 경우처럼 내 가게도 아니고 내 일도 아닌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초석이 되어 나중에 내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분명 쓰임이 있게 되어 있다. 회사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 인간관계 노하우가 분명 언젠가 빛을 발할 그날이 온다.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에 대한 차이가 일에 대한 태도의 차이를 만들고, 워라밸의 개념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워라밸의 개념은 좀 다르다. 일도 재미있고, 삶도 재미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워라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해 본다.


일할 때는 노는 것처럼 즐기고,
놀 때도 일 생각 놓지 마라.


이것이 내가 다시 쓰는 워라밸에 대한 새로운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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