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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Sep 29. 2019

제39화: 꼰대도 한때는 요즘것들이었다.

앞후니까 꼰대다

영화 ‘은교’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너희들의 젊음이 너희들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 듯, 늙음도 내가 잘못해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이자, 거의 모든 사람이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영화 은교의 명대사였다. 그만큼 큰 울림이 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대사였다.


나이가 든다는 것, 그리고 그 나이에 맞게 변해간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그 나이 듦에 대해 꼰대라는 이름의 가혹한 벌을 내리고 있다. 요즘 세상 트렌드에 조금 맞지 않는다고 해서, 옛날 생각이라서, 요즘 방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꼰대라는 낙인이 찍힌다.


그 누구도 자신이 빨리 나이가 들어 늙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언제까지 청년일 줄 알았고, 어쩌면 지금도 마음 한편에는 청년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고, 시간의 흐름 속에  가장으로, 부모로, 부서의 책임자로 각자의 자리를 지켜 내기에 바빴다. 자신이 늙어간다는 사실조차 느낄 겨를도 없이,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내 젊음을 헌납하며 지금의 자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꼰대라 부르며 밀어내려 한다.


지난 15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직장에서 헌신했고, 희생했다. 그 긴 시간을 버티며 열혈 신입사원에서 중견사원으로, 그리고 관리자라는 이름으로 성장했다. 그래, 요즘것들의 말로 나는 그렇게 꼰대가 되었다. 젊은 시절 내가 그렇게 욕하고 닮고 싶지 않았던 꼰대라는 이름의 자화상과 마주해야 했다.  


그저 재미있고, 유쾌하고, 편하기만 했던 00 씨는 누군가는 어려워하고, 불편해하고, 어쩔 수없이 잘 보여야 하는 그런 관리자로 변해 있었다. 누군가에게 업무를 지시하고, 관리하고, 평가하고 책임을 져야 했다. 가능성보다 리스크를 먼저 고, '해보자' 보다 '안돼'를 먼저 외치고, 밑에서 올리는 기획안에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꼰대라고 수근 되는 뒷담화를 들으면서 °마상도 많이 입었다. 책으로 공부했던 이상적인 리더상과의 괴리에 자괴감도 느꼈다. 하지만 리더이기에 책임자이기에 직원들의 요구와 조건을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점도 있었다. 그 직원이 보는 것은 리더인 나와 1:1의 관계였지만, 나는 그 직원을 제외한 다른 직원들과의 1:多 상황을 생각해야 했기에 그 한 명만을 위한 결정을 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자리가 올라가면 더 편해질 줄 알았는데, 결정할 것도 많고 책임질 것도 많고 머리가 터져나갈 것 다. 안 좋은 일들도 많이 겪고 부정적인 경험들이 쌓이면서 많은 것들이 조심스러워지고 보수적으로 변하게 다. 변화에 둔감해지고, 예전의 경험 안에서 생각하는 경향도 커진다. 나이에 의한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고, 살아온 경험과 그들을 둘러싼 환경 탓도 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나이 든다는 것의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꼰대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지금의 요즘것들 못지않은 요즘것들이었다. 꼰대 자신도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이고, 요즘것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꼰대도 한때는 요즘것들이었다. 회사의 악습과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도전했고, 꼰대 위의 상 꼰대들의 권위의식에 대들었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 만큼 혈기왕성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거침없던 청년들은 세월이라는 풍파를 맞으며  점점 현실에 안주하기 시작한다. 세월은 그렇게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했던 열혈 청년을 무사안녕과 자리 보존이 우선인 지금의 기성세대로 바꿔 놓았다.


이런 속사정을 알리 없는 요즘것들은 기성세대에 꼰대라는 오명을 씌우고 너무나 쉽게 비난의 목소리를 낸다. 인터넷에 꼰대라는 검색어를 입력해 보면 최상단부터 스크롤이 끝나지 않을 때까지 꼰대어, 꼰대 진단, 꼰대 특징 등이 이어진다. 윗사람이 하는 말, 선배가 하는 말을 무조건 꼰대가 하는 소리, 꼰대말, 꼰대어 등으로 싸잡아서 비난하고는 한다.


물론 내가 봐도 밥맛 떨어지고, 구토를 유발하는 꼰대어들도 있지만 몇 가지 말에는 그렇게 말하는 짠한 이유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대놓고 비판하지 말고, 젊은 감성으로 아량을 가지고 이렇게 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나 때는 말이야


나는 헌신했다. 그래서 너희도 헌신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헌신한 것은 인정해줘'에 가까운 절규이다. 돌아갈 수 없는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자 회한이 담겨있는 말이다. 내가 그렇게 힘든 시절을 겪고 이겨냈듯이 '너도 할 수 있다'는 응원의 메시지도 담겨있다. 그러니 '라떼는 말이야'에는 시원한 아. 아로 받아주자.


팀장: 라떼는 말이야, 밤도 새우고 그랬지.

사원: 아. 아, 그러셨구나.


내가 왕년에는


누구나 추억이 있다. 리즈 시절이 있다. 지금은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니 잠깐은 그 얘기를 들어주자. 여기에 동정심 한 스푼 얹어서 격하게 공감해주자.


팀장: 내가 왕년에는 이런 것도 하고 그랬지.

사원: 아 진짜 멋지셨네요.


요즘것들은 예의가 없어


본인들도 그랬다. 철이 없었고 예의 없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하는 얘기다. 나는 예의 없다는 소리 듣고 살았지만, 너희는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하자.


주연 배우는 단역 배우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할 수 있지만, 단역 배우는 주연 배우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부러운 선망의 대상일뿐, 주연배우가 느끼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끼지는 못한다.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할 뿐이다. 하지만 주연 배우는 단역 배우의 입장과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자신이 거쳐왔던 길이기도 하고, 누구보다 그 힘듬과 애로사항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저런 조언과 충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꼰대가 하는 말이라고 해서, 비꼬거나 부정적인 의미로만 생각하지 말고, 꼰대어에도 긍정의 의미를 담아보자. 자신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조금이나 줄여 보기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자. 선배라서, 팀장이라서, 책임자라서 할 말 해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한 번쯤은 들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내가 먼저 노력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모꼰(모태 꼰대), 독곤(독한 꼰대), 심꼰(심오한 꼰대) 등은 답이 없다. 하지만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수 있다. 마치 악인을 대하거나 벌레를 보듯이, ‘꼰대 xx.’ ‘망할 꼰대’라고 단정 짓기 전에 그들이 보낸 세월과 경험에 대해 최소한의 존중은 담아보자. 그게 어렵다면 젊은 시절을 회사에 다 바치고 나이가 든 그들에 대한 동정심이라도 담아보자.


꼰대°종특이 아니라, 시대가 빚어낸 산물일 뿐이다. 꼰대도 한때는 요즘것들이었다. 지금의 요즘것들보다 많이 배우지 못했고,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그것에 대해 꼰대라는 딱지를 붙이기 전에 그들이 바친 젊음과 노력에 존경과 감사의 의미를 먼저 담아 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어렵다면 이 말만큼은 기억해 주기 바란다.


‘꼰대가 한때 요즘 것들이었다는 말을 뒤집으면 요즘것들도 언젠가는 꼰대가 된다는 말이다. 고로 지금 내가 욕하는 대상은 미래의 내 모습일 수도 있다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을 입어 보기 전까지 그 사람의 입장을 100% 이해하기는 힘들다. 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리더가 되기까지 리더가 가지는 책임감의 무게를 알기는 어렵다. 마음으로는 어렵겠지만 머리로라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보자. 머리로 시작하면 마음까지 전이될 수 있다.



°마상 : 마음의 상처

°종특 : 종족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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