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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Oct 02. 2019

제40화:상사의 '알아서' 공격에 RG로 대응하는 센스

꼰대니까 할 말은 좀 할게

상사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알아서 좀 해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만큼 무책임한 말도 없고, 그 의미 또한 전라도의 ‘거시기’ 만큼이나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도대체 뭘 알아서 하라고 하는지도 모르겠고, 나한테 '알아서' 말하기 전에 상사가 '알아서' 명확하게 말해 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세상에는 생각보다 친절한 상사가 많지 않다. 오늘도 여기저기서 ‘알아서’를 남발한다.


나도 한때 이 ‘알아서’라는 말 때문에 많이 헤맸고, 일을 하는 데 힘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어느 정도는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더불어 상사가 '알아서'라고 말을 하는 이유와 이 말에 담긴 의미만 알아도 조금 더 수월하게, 일을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사는 도대체 왜, 뭘 ‘알아서 해오라’ 고 말하는 것일까? 오늘은 그 ‘알아서’의 의미를 파헤쳐 본다.


1. 알아서의 첫 번째 의미


‘알아서’가 담고 있는 첫 번째 의미는 ‘미리미리’이다. 좀 더 고급진 용어로 ‘선제적으로 대응해라’라는 의미이다. 이때 필요한 사고가 프로세스 사고이다.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가 일하는 사람의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프로세스 사고를 한다는 것에는 세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첫째는 일의 순서를 알고 일한다는 의미이고, 두 번째는 일의 최종 아웃풋을 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하는 일이 주변의 일들과 어떤 관련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일의 전체상을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일이 전체 진행 과정 중에 어디쯤이고, 그 일의 다음 일은 어떤 지를 알고 있다면, A라는 일에서 멈추지 않고 넥스트 스텝까지 대응이 가능하다. 선제적으로 대응해서 상사의 ‘알아서’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관련해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면 꽤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잠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영화 속 주인공의 지독한 상사가 주인공에게 이런 일을 지시한다.


“해리포터의 미출간 본 원고를 구해와라”


그녀의 딸들이 해리포터의 광팬이라 지시한 내용이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설정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영화 속 이야기이다. 그리고 어쨌든 주인공은 그 원고를 구해서 간다. 아니 정확하게는 빈 손으로 간다. 아니나 다를까 상사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내가 구해오라는 원고는 어디 있지?”


주인공이 의기양양하게 답변한다.


“외할머니댁에 가는 기차 안에서 쌍둥이들이 읽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고 더 이상 트집 잡을 상사는 없다. 일의 종착지까지 예상하고 한 스텝 더 나간 일처리를 한 직원에게 뭐라고 할 상사가 있다면 그건 이미 사람이 아니다.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 칭찬 한 바가지도 모자랄 판에 역공을 펼친다면 진짜 자격 미달이다.


다음 행동이나 절차를 예측하고 거기까지 일 처리를 하는 것,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둘러싼 주변부와의 관계 속에서 내가 하는 일의 의미와 그 결과의 영향력까지 예측하면서 한 스텝 더 나가서 일하는 것이 상사가 말하는 ‘알아서’의 첫 번째 의미였다.


2. 알아서의 두 번째 의미


두 번째는 내가 고민할 시간이 부족하니, 알아서 ‘결정 좀 해와라’의 의미이다. 물론 내가 정리해서 가져간 결정 사항에 대해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논리와 이유들로 소위 까이는 경우도 있지만,  상사의 지시 사항에 대해 나의 '생각'과 '결론'을 정리해서 보고하는 것은 회사원이라면 기본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책무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어떤 사안에 대해 정리해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보고자의 '생각'이나 '결론'은 없고 정보나 현황만 잔뜩 늘어놓는 경우가 있다. '결론'은 없고 '결과'만 있는 경우이다. 특히 기획서나 제안서 작업에서 이런 특징이 두드러진다. 정보, 현황, 데이터 등은 있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알맹이가 빠져있다. 이때 상사가 할 수 있는 말은 한마디밖에 없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결론이 뭐야?”

“뭘 어쩌자는 거야?”


뭔가 보고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사안에 대한 내 생각과 대안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대안은 한 가지가 아닌 두 가지로 정리해서 가는 것이 좋다. 최종 선택의 권한은 상사에게 남겨 두는 것이다. 대신 두 가지 대안 중에 ‘내 생각은 이것이다’라고 정리해서 말해줘야 한다. 밥상 차렸으니 '알아서 먹어라'가 아니라, 두 가지 반찬이 있는데 '나는 이게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알려줘야 한다.


“본 사안에 대해서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 봤습니다. A의 경우 이런 장점과 단점이 있고, B의 경우 이런 장점과 단점이 있는데, 저는 A로 추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사안이 선택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대안을 2가지로 고민하고 내 결정까지 피력하는 것으로 일처리를 잘했다는 것에 대한 인정은 받을 수 있다.


밥 먹으러 갈 때 일방적으로 오늘은 ‘청국장’이라고 외치는 상사나, 중국집에 가서 물어보지도 않고 탕수육을 시키는 사람보다 ‘유린기 먹을래? 탕수육 먹을래?’라고 물어보는 상사가 조금은 낫지 않는가? 물론 상사와 먹는 밥이라면, 다금바리를 먹어도 주금 바리에 가까운 맛이겠지만, 어쨌든 선택권을 남겨두는 상사가 좀 더 낫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생각하자. 보고를 할 때, 내 생각과 결론이 담긴 대안을 두 가지로 제시하고, 상사에게 선택권을 넘겨주는 미덕을 발휘해 보자.

 

3. 알아서의 세 번째 의미


세 번째 ‘알아서’는 시키지 않아도의 의미이다. 사실 마지막 '알아서'가 가장 어렵다. 도대체 시키지 않은 일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지금 하는 일도 많은데 ‘뭘 또 해야 하지?’라는 고민에 봉착할 수 있다. 물론 잘 안다. 하지만 인정받고 싶고,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를 원한다면 때로는 시키지 않은 일을 찾아서 하는 것도 필요하다.  


여기서 시키지도 않은 일은 커피를 타거나, 회의실을 청소하거나 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을 좀 더 잘할 수 없을까?’, ‘지금의 제도나 방식을 개선할 수는 없을까?’, ‘다른 새로운 일이나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하는 것을 말한다. 관련해서 백종원 씨 사례를 꺼내본다. 정확하게 백종원 씨가 개발하고 특허까지 받은 '기다란 쌈채반'에 관한 이야기이다.


보통 고깃집이나 쌈밥집에 가면 스탱그릇이나 바구니 같은 그릇에 쌈이 나온다. 이때 쌈을 담는 순서가 중요한데, 쌈을 담는 작업자가 바뀌거나 손님이 몰려서 바쁘면 그 순서의 어려움 때문에 작업을 하는 사람이 힘들다고 한다. 게다가 쌈을 작은 공간에 쌓아두면 먹는 사람들이 손으로 뒤적거리게 되고, 이때 신선도에 문제가 생겨서 사람들이 쌈을 남기게 된다고 한다. 이때 백종원 씨는 바구니나 스탱그릇 대신 기다란 쌈채반을 생각해 낸다. 담는 사람도 쌓는 순서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 편하고, 먹는 사람도 들척거림 없이 먹을 수 있기에 편하다. 물론 테이블 공간 차지의 문제는 피할 수 없지만, 기존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방식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세 번째 알아서의 의미이다.


여기에 한 가지만 더 추가하면 상사의 모든 ‘알아서’를 극복할 수 있다. 사전에 위험요소나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재를 파악하여 보고하고 대처하는 능력이다. 관련해서 고전 사례 하나 소개해 본다. 태조 왕건의 제2왕후였던 장화왕후에 대한 이야기인데,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핵심만 이야기한다.


전쟁 중에 어딘가로 이동하던 청년 왕건이 빨래터의 처녀에게 물 한 바가지를 청했더니, 그 처녀가 물 한 바가지를 건네면서 그 위에 버드나무 잎을 띄워서 주었다고 한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청년 왕건이 그 이유를 묻자, 이어지는 처녀의 답변이 기가 막히다.


“급하게 드시다 체하실까 봐 그리하였나이다”


더 이상의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은 대처였다고 생각한다. 사전에 문제 요소나 위험요소를 알아서 처리하고 대처한 처녀의 능력 덕에 그 처녀는 태조 왕건의 왕후가 될 수 있지는 않았을까?  


물론 알아서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세상에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는 초코파이 하나면 충분하고 싶어 진다. 알아서 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지식과 경험이 쌓여야 하고, 팀이나 회사에서 일이 돌아가는 흐름을 알아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은 하나도 안 하는 것 같은데, 나한테만  '알아서 해오라'고 지시하는 상사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알아서’의 의미를 알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능력이 아니다. 일을 잘하고 싶고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알아서' 하면 상사의 '알아서 좀 해라'라는 말도 듣지 않고, 일도 잘할 수 있으니 한 번쯤 시도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 상사가 '알아서 해와' 라고 말하면 어떻게 해야될지 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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