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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Jul 13. 2019

제3화 : 차라리 그냥 꼰대로 살자

앞후니까 꼰대다



오늘은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있는 날이다. 왁스랑 스프레이를 과다량 투하해서 머리에 힘도 주고, 예쁜 옷도 꺼내 입어 최대한 젊고 부드러워 보이게 치장한다. 아침 허기를 달래 줄 핸드 드립 커피를 들고 기분 좋게 집을 나선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좁은 공간의 엘리베이터 안에 퍼지는 향긋한 커피 향과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며, 오늘 프레젠테이션은 왠지 성공적일 것 같다는 좋은 기분에 휩싸일 무렵..

8층에서 띵동. 문이 열리고,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 목청껏 울고 있는 여섯 살 남짓 꼬마 남자아이와 어떻게 든 녀석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시키려는 워킹맘이 나만의 공간으로 들어온다.

워킹맘이 나에게 sos 신호를 보내며, 말을 꺼내온다. 얼굴은 아이를 응시하고 있지만 나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든다.

“너 자꾸 울면 이 무서운 아저씨한테 혼내주라고 할 거야. 얼른 뚝 그쳐.!”


‘누구? 나? 이렇게 젊고 부드러운 나?'


라는 의문이 풀리기도 전에 워킹맘이 다시 한번 다급한 짓을 보내온다.

'혼내주라는 건가, 무서운 표정 한번 지어달라는 얘기인가.'

애를 키우는 같은 처지의 부모로서 도움을 요하는 워킹맘의 간절함을 외면하지 못하고, 한 마디 날려본다. 강력하면서도 최대한 부드럽게.

'이 놈~~~'

소음은 곧 사라졌고, 아이는 억울하지만 참는다는 표정으로 어린이집으로 가는 무거운 발길을 재촉한다. 워킹맘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한 행동은 분명 칭찬받을 일을 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왠지 모르게 찝찝한 기분과 함께 이런 생각이 밀려온다.

'내 표정 한 번으로 울음을 뚝 그친 꼬마 아이의 눈에 나는 꼰대로 보였을 수도 있겠구나. 그 아이가 꼰대라는 단어를 알리는 없겠지만 아마 속으로 '이 아저씨 꼰대네'라고 생각했겠지?'

15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프리랜서로 전업을 시작한 지 언 3개월. 좋았던 것도 나빴던 것도 회사에 대한 거의 모든 기억이 다 사그라들고 있는 요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그  꼬마와 내가 날린 이놈이라는 한마디는 빠르게 시계를 과거로 돌려 파트장으로 여러 명의 파트원들과 함께 일하던 시절로 시간을 돌려놨다.

그 시간 속에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꼰대로 대하는 파트원들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늘 파트의 성과를 책임지기 위해 일하는 파트장이었고 그 누구보다 파트원들의 성장을 응원하고, 최대한 배려했지만 나는 그냥 꼰대였다. 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 눈에 나는 그냥 꼰대였고, 여전히 꼰대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푸념과 함께 짧은 시간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나는 그렇게 꼰대로 살았고 직장생활을 마감했지만, 대한민국 직장에서 상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듣기 싫은 소리 한마디 했다는 이유 하나로 꼰대로 치부되는 현실은 바뀔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꼰대가 꼭 그렇게 부정적인 의미만으로 치부되어야 하는 걸까? 싫은 소리 한마디 했다고, 핀잔 한번 줬다고, 옛날 얘기 한번 했다고 꼰대로 치부받는 세상이 과연 정당할까? 꼰대의 부정적인 외연이 지나치게 확대된 것은 아닐까? 꼰대의 좋은 의미는 하나도 없는 것일까?


라는 생각들로 복잡해질 무렵. 내 차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다. 어두운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와 밝은 아침햇살이 비추는 도로로 나아가고 있었다. 마치 꼰대의 의미가 새롭게 조명받는 세상으로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속에서 외마디 외침이 들려온다.

“그래, 그냥 꼰대로 살자!”

대한민국에 꼰대의 긍정적인 의미가 만들어지고, 대한민국이 '나 꼰대야'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날이 올 때까지 내가 쓰는 글이 위로와 희망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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