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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Oct 31. 2019

제52화: 센스는 선빵 날리기 기술이다

꼰대라서 할 말은 좀 할게

‘고객이 시켜서 하면 심부름, 내가 먼저 하면 서비스’


예전 회사 근처 어느 족발집에 붙어있는 플래카드 문구다. 보면서 참 멋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앞뒤가 정확하게 대구를 이루는 문장에 반전미까지 있다. 게다가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심오하기까지 하다. 자발적인 것과 선제적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고객이 시키기 전에 내가 자발적으로 움직여서 먼저 행동하면 고객이나 나에게나 더 의미 있는 행동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 문구다. 맛도 맛이지만 이 식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제대로 보여는 문구라고 생각하며, 사진까지 찍어두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식당에서 누구나 비슷한 마음 한 번쯤 가졌을 것이다. 반찬을 좀 더 달라고 하고 싶은데, 바쁘게 움직이는 종업원들 보면서 미안한 마음에 시키지도 못하고 절절맸던 경험이 있다. 어떻게 보면 참 쓸데없는 마음 같기도 하지만, 인간인 이상 누구나 가지는 선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그 식당의 종업원이 다가온다.


"김치 더 드릴까요? 야채가 부족하네요."


왠지 모를 감동이 몰려온다. 여는 식당에서 받아보지 못한 대접이다. 몇 번을 누르고, 벨을 불러도 본채 만채 내 테이블만 휙휙 비켜가기 일쑤인데 먼저 다가와서 부족한 것을 묻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니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여기서 센스의 의미를 발견해 본다. 흔히 센스는 타고나는 것이라고도 하고, ‘재치 있다’, ‘순발력 있다’, ‘말귀를 잘 알아듣는다’ 등의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센스란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읽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람에 대한 배려이자 그 사람의 마음 앞에 서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센스는 오랜 기간 사람 간의 관계가 쌓이고, 다양한 인간군상을 경험해 보고 나서야 쌓일 수 있는 노하우지만, 좀 더 빠르게 쉽게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름하여 ‘If I were you’ 사고법이다. 쉽게 말해서 ‘내가 저 사람이라면’, ‘저 입장이라면 뭘 원할까’ 하고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물론 살아온 경험과 지식이 다르기 때문에 내 경험 안에서 생각하고 하는 판단이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다 보면 내 센스는 개발될 수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그 몇 번의 시행착오가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내 센스는 꽁꽁 묶여서 평생 ‘센스 있다’ 소리 한번 듣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회사 내에서 ‘센스 있다’ 소리까지는 듣지 못하더라도 ‘센스 있네’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는 몇 가지 멘트를 소개해 본다.  


1.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보통 회의자료나 보고서 등을 작성해야 할 때, 거의 대부분이 시켜서 움직이고 하라고 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먼저, 시키기 전에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특히 뭔가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때 보고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답답함과 조급함을 참지 못한 팀장님이 '그거 어찌 돼가냐?', '언제까지 나오냐?' 등으로 채근하고 쪼아돼야 그제야 가져간다.


물론 일만 하기에도 바쁘고, '보고가 뭐가 중요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사건건 보고해야 하는 상황에 짜증이 날 수 있다.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뭐가 그리 궁금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라는 것이다. 상사는 도통 내가 말하기 전까지는 일의 진척상황을 알 길이 없다. 게다가 상사는 그 일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다.


꼭 공식적인 보고 형태를 띠지는 않더라도, 지나가는 길에, 커피 한잔 하다가 비공식적으로 일에 대한 진척 상황이나 업데이트 사항을 보고하는 것만으로도 일을 책임감 있게 잘한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리고 내 실력이 궤도에 오르고, 상사가 나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 그 회수도 자연스레 줄어들게 되어있다.


이렇게 '미리미리', '선제적으로' 일하고 행동하는 것이 꼭 상사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시켜서 하는 것은 하기 싫게 되어 있지만, 내가 선택해서 하면 그나마 좀 더 낫다. 좀 더 자발적으로 의미있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렇게 하는 방법은 내가 내 일을 주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2. 제가 도와드릴 일 없을까요?


사일을 하다 보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이 정신없고 바쁘게 흘러가지만, 때로는 약간의 여유가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바람도 쐬고 잠깐 쉴 겸, 커피 한잔 하러 나가는 길이다. 이때 옆에 있는 대리님이 1시간 뒤에 있을 회의 준비로 정신이 없다. 회의 자료도 뽑고, 세팅도 해야 하고 멘탈이 나가 있다. 이때 한마디 던져보자.


“대리님. 제가 좀 도와 드릴게요”


‘도와드릴까요?’와 ‘도와드릴게요’에서도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만들어지는데, 기왕 도와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라면 후자가 낫다. 아예 처음부터 결정짓고 시작하는 방법이다. 이때 대리님이 '아냐 됐어' 하면 완전 땡큐고, '그래 고마워. 이것 좀 출력해줘'라고 뭔가를 시키면, 하면 그만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아주 정신이 없어서 뭔가 미리 챙기지 못할 때 주변에서 먼저 찾아와 '도와준다', '이거 해줄게', '그거 해놨어요'라고 말했던 직원들이 가장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센스 있는 직원들로 기억이 된다.


3. 식사하셨어요?


센스는 점심시간에도 발휘할 수 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11시 이전에 '같이 밥 먹을 사람'과 '오늘 먹을 메뉴'에 대한 세팅이 끝난다. 이때 팀장님은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어제 새로 오픈한 돈카스 집에서 점심 먹을 생각밖에 없다. 팀장님이 밥을 먹는지 안 먹는지 궁금하지 않다. 12시가 되면 칼같이 약속된 사람과 약속된 장소로 튀어나간다. 많은 직원들이 하나 같이 이렇게 행동하니 리더는 밥 먹을 사람이 없다. 나도 많이 겪었고, 내 위에 팀장님도 종종 자리에서 빵과 우유로 점심을 떼우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


많은 리더들이 하는 하소연 중에 하나가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잠깐 자료 좀 본다고 12시를 조금 넘겨, 12시 5분이 돼서 주위를 둘러보면 무인도에 고립되어 있다. 모두들 밥 먹고 나가서 없다. 고요하고 적막하다. 왠지 모를 외로움이 몰려온다. 이때 팀장님에게 다가가서,

 

“팀장님 식사하셨어요? 안 드셨으면 저랑 같이 드실래요?”


라고 말해 보자. 물론 먹기 싫고, 불편하고, 그 한 시간이 괴로울 수 있다. 하지만, 많이도 아니고 자주도 아닌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먼저 밥 먹자고 말을 꺼네보자. 팀장님과의 관계도 좋아지고, 일적인 면에서도 좀 더 지지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어느 티비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팀장님과 나는 '일로 만난 사이'라 하지만, 그 사이에는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사람은 감정에 지배된다. 나보고 밥 먹자고 하는 직원을 싫다고 하는 팀장님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한 마디만 덧 붙이면 더 센스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팀장님, 오늘은 제가 한번 살게요.”


그래. 솔직히 팀장도 사람이고, 생활인이다. 용돈 받아 쓰고 있는 경우도 있고, 내 밥값과 술값 챙기기도 빠듯하다.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이때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는 후배의 한마디는 고맙고 또 고맙다. 그 한마디에 센스 있는 후배가 될 수 있다.


요즘 이래 저래 강의가 많고, 지방 출장도 잦다. 솔직히 지방 강의는 이동 시간도 많이 걸리고,  불편함이 따르지만, 여행 가는 기분도 느끼고 때론 힐링이 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중 내 고향 대전으로 가는 출장이 가장 기분이 좋다. 고향은 정말 포근하고 옛 생각에 왠지 모르게 행복해지는 곳이다. 거기서 먹던 음식, 보낸 시간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이때 기차역 근처 어느 식당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가락국수 집이다. 대전에서는 우동과 비슷한 가락국수라는 음식이 있다. 지금은 칼국수로 더 유명한 도시이지만, 예전에는 대전하면 가락국수가 유명세를 떨쳤던 시절이 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대전, 어느 가락국수 집 앞의 문구가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놓으면 왠지 미소 짓게 한다.


‘옛날에 먹던 맛 그대로, 1분 안에 나옵니다.’


마치 주인장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고 말하며, 고객을 유혹하고 있는 듯했다. 혹시 오며 가며 고향의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맛이 변했을 까?’라는 일말의 의심을 저격하고 있었고, 먹고는 싶은데 기차 시간 때문에 ‘오래 걸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고객들의 마음을 올킬하며, 그곳으로 끓어들이고 있었다. 물론 나도 후루룩 한 그릇 하고 기차에 올라탔다.


센스, 어렵지 않다. 그 사람 마음속에 한 번만 푹 들어갔다가 나오면 된다. 말하기 전에, 행동하기 전에 ‘If I Were you’ 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만으로 '센스 있다' 소리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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