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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Nov 14. 2019

제56화:계산대앞에서 '쏘세요' 대신 '쏠게요' 어때?

꼰대라서 할 말은 좀 할게

파트장으로 승진했을 때의 일이다. 여기저기서 축하 인사를 전해온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근데 자꾸 한마디 꼬리표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과장님. 축하드립니다. 한턱 쏘셔야겠어요”

“야 니가 무슨 파트장이야. 축하해. 한턱 쏴라”

“형, 파트장 됐네. 거하게 한잔 사라”


축하해주는 일은 고맙지만, 한턱 쏴야 된다는 생각에 머릿속에 계산기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얄팍하고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생활인이기에 현실 걱정이 앞선다. 파트장이 돼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것 같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그냥 빈말일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적지 아니 부담스럽다. 그때였다. 한 후배가 다가온다.


“형. 고생 많았네. 축하해. 내가 맛있는 거 한번 쏠게”


내 지갑을 지켜주는 후배가 고맙다. 쏜다고 해서 고맙기보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불편함과 부담스러움을 알아주는 것이 더 고마웠는지도 모른다.


비슷한 상황은 선후배가 밥을 먹거나 커피를 사는 장면에서도 연출된다. 요즘은 더치페이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윗사람이니까, 선배니까, 팀장님이니까 계산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문화도 남아 있다. 물론 후배들은 내가 먹은 밥값은 '내가 내야 지'하는 마음으로 식사 자리에 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선배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그래도 선배니까 내가 사야겠지? 더치 하자고 하면 치사하다고 그러겠지? 더치커피 사준다고 하면서 더치페이 하자고 시그널이라도 보내야 하나?’


하는 마음이 앞서기도 한다.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선배라는 자리가 가지는 당연한 마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후배는 주문만 할 뿐 아무 말이 없다. 가타부타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그냥 기다리는 눈치다. 아무 말 없이 주문을 하고 뒤로 빠진다. 게다가 그 커피숍에서 가장 비싼 시그니처 메뉴를 주문한다. 오늘도 커피값 10,000원이 결제된다. 지난주에도 내가 샀고, 지지난 주에도 내가 샀는데, 후배의 머릿속에는 선배인 내가 커피머신 정도로  각인되어 있나 보다.    


여기서 핵심은 '누가 사고 안사고'의 문제가 아니다. 선배가 사는 것을 '당연시' 한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좀 더 많이 버는 사람이 더 쓰고, 더 사고, 베푸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도 그에 맞은 지출 계획이 있다. 무늬만 다를 뿐 나와 같은 월급쟁이일 뿐이다. 어디서 돈이 솟아나지 않는 이상 후배를 위해 쏘는  밥값이나 커피값이 아쉬운 사람이다. 그래서 아마 이런 기대감을 가질 수도 있다.


‘내가 선배니까 2-3번, 아니 5번은 사지만, 후배도 나에게 한 번은 샀으면 좋겠다.’


사람인 이상 누구나 가지는 인지상정이자 인간관계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사이에는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 기브 앤 테이크에 대한 기대가 성립히특히,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인 회사에서 기브 앤 테이크 정신은 거의 종교에 가까운 진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선배로서, 팀장으로서, 후배들에게 팀원들에게 밥을 사고, 커피를 사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후배로서 선배에게 밥을 사는 것을 기본이자 예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 내가 들은 이야기 중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한민국 대표 꼰대를 자처한 이상 가만히 듣고 있을 수 없었다. 관련해서 최근에 친한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 선배는 1인 기업을 하다가 최근에 사업이 번창해서 대리급 직원 한 명을 채용했다고 한다. 세상 사람 좋은 형이다. 어느 모임에서든지 먼저 지갑을 꺼내고 먼저 베풀 줄 아는 형이다. 그래서 그 직원하고 밥을 먹어도 항상 밥을 산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그럼 그 직원은 밥값 굳어서 좋겠다. 그 돈 나한테도 좀 쓰시지?”


라고 지나가는 농담을 했더니, 갑자기 그 형이 다큐로 받아 버린다.


“근데.. 점점 사주기 싫어. 기브 앤 테이크 까지는 아니더라도, 너무 당연하게만 생각하니까 그건 아니다 싶더라. 요즘은 웬만하면 약속 있다고 하고 나가서 따로 먹어”


‘이 착한 형한테도 이런 면이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쩌면 사람 마음이 다 비슷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도 더 명심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 옛날 나에게 솔로몬의 지혜 이상으로 선배와 후배 간에 존재하는 기브 앤 테이크 정신에 대해 이야기 해준 삼촌의 지혜가 떠올랐다. 비록 그 톤 앤 매너가 고급지지는 않지만, 그 말에 담긴 의미 만큼은 어떤 명언보다 훌룡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가끔 후배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할 때, 끼워넣기로 인용하는 말이다. 대놓고 말하기에는 조금 치사하게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카. 취업 축하하고. 딴 얘기는 못해주는데, 네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선배나 상사에게 밥을 두 번 으더 먹으면 한 번은 꼭 니가 사라. 뭐든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어. 받은 만큼 돌려주고, 그 감사함을 잊지 않는 사람이 돼라. 그럼 성공할 수 있어”


삼촌이 장장 한 시간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줬지만, 다른 것은 하나도 기억 나지 않고, 오직 이 한마디는 지금까지도 가슴에 남아 새기고 실천하는 가치관이자 행동 방식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동기나 다른 동료들보다 선배들에게 쓴 돈은 조금 더 많았지만, 관계적인 측면에서 기타 내가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나에게 플러스 요인이었지, 결코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갑이 조금 가벼워지는 대신 예의와 신뢰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캐논에서 모셨던 팀장님께서 그룹장으로 승진을 하셨다. 전화를 드려서 축하 인사를 드렸다.


“축하드립니다. 그룹장님. 축하의 의미로 제가 한잔 사겠습니다.”


좋아 죽는다. 축하 인사 마다할 사람은 세상에 없다. 백 번을 들어도 좋은 게 축하 인사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이신다.


"너는 참 다른 사람이랑 생각하는 게 다르다. 고맙다."


선배에게 점심을 두 번 얻어먹었으면, 한 번은 반드시 사자! 윗사람이라서, 승진했다고 해서, 축하받을 일이 있다고 해서 꼭 그 사람이 쏘라는 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계산대 앞에서 '쏘세요'라고 외치기 전에, '쏠게요'라고 말하는 센스도 가져보자.



※한턱 쓰다, 한턱내다가 올바른 표기이나, 어감상 한턱 쏘다로 씁니다.



한마디 톡톡

*어깨를 '톡톡'치며 위로하고 싶은 메시지 'talk, tlak'


1. 내 친구쯤 되는 꼰대들에게

리더는 입은 무겁고 지갑은 가벼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때에 따라, 경우에 따라 한턱 쏘는 경우도 있고, 기분을 내는 경우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때로는 무조건 '내가 사야지', '내가 살게'가 직원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요즘 세대들에게는 그 방식조차 옛날 방식이고 꼰대 사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때론 요즘 세대들이 익숙하고 편한 방식인 더치페이 방식도 존중해주고 받아들이는 것도 좋다. 쏘는 것이 반드시, 꼭, 미덕은 아닌 시대다.


2. 요즘 세대들에게  

이런저런 고민 없이 내가 먹은 만큼 내가 계산하는 더치페이가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일 수도 있다. 나도 그 방식을 지지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에 남아있는 선후배 문화, 정문화 등에 의해 선배가 사는 경우도 있다. 이때 이것을 잊지 않고 기억했다가 선배를 챙기는 순간도 만들어 보자. 나도 선배에게 밥 한 끼, 커피 한잔 살 수 있는 생각으로 이렇게 말해보자.  


‘팀장님. 오늘은 제가 밥 살게요’


이 말 한마디로 상사의 배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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