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제55화: 아프냐? 나도 아프다, 앞후니까 꼰대다

앞후니까 꼰대다

딸아이를 출산할 때의 일이다. 물론 내가 출산한 것은 아니고, 와이프가 출산할 때의 일이다. 2011년 5월 9일 밤, 와이프의 진통이 시작되었고, 그다음 날인 10일에 사랑스러운 딸아이가 태어났다. 장장 12시간의 산고 끝에 소중한 생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물론 그 긴 고통의 시간을 남편인 나도 함께 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잠깐의 졸음을 참지 못해서 무너졌고, 결정적인 말실수까지 하면서 인생의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때는 출산이 임박한 5월 10일 오전 9시쯤, 내 몸은 전날 야근에 연일 누적된 피로로 인해 지칠 때로 지친 상태였다. 그 상태로 와이프 옆에서 꼴딱 밤을 새웠으니, 졸리지 않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정신력의 승리를 기대했지만, 내 정신력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다. 결국 산부 대기실에 있는 간이침대에 누워서 잠이 들었고, 2시간쯤 숙면을 취하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결정적인 말실수를 했다.


“아 여기 침대 되게 불편하네. 보호자에 대한 배려가 없네


잠결에 입에서 튀어나오는 데로 뱉어버렸다.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말실수였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와이프는 그 당시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출산 얘기가 나오거나 산부인과 근처만 지나가도 그때 당시를 곱씹으며 이를 바득바득 간다.


“와이프는 사지가 찢어지는 고통에 허덕이고 있는데, 옆에서 잠이 오니? 게다가 침대가 불편해? 라텍스라도 가져다 놨어야 했니?”


물론 나도 그 고통의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솔직히 내 몸이 아픈 것도 아니었기에 와이프의 상황 속으로 완벽하게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한계는 있었다. 그 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왜 저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100% 이해하기 어렵다. 요즘 세대들이 꼰대를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요즘 세대들이 바로 본 꼰대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윗사람 눈치를 보고,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주말까지 출근을 하고, 집보다 회사를 더 좋아하고, 불합리한 요청에 왜 No라고 하지 않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때 대부분의 요즘 세대들은  ‘나라면 저렇게 안 해.’, ‘저게 뭐냐?’, ‘인간이 할 짓이냐?’라고 생각하며,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꼰대라서 그렇다'며 선을 그어 버린다.


하지만 그런 꼰대에게도 말 못 할 사정은 있다. 요즘 세대들이 알기 힘든 고충과 힘듦이 있다. 요즘 세대들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고 이해할 수 없겠지만, 한 번쯤 들어보고 알아둔다면, 꼰대들이 꼭 그렇게 이해 못할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세 가지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첫째, 꼰대도 피라미드의 정점은 아니다.


꼰대도 조직의 어디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윗사람이라서 모든 것을 누리고 가진 것 같지만 오히려 요즘 세대들보다 더 가지지 못하고, 시간은 더 부족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실제로 더 바쁘고 머리 아픈 경우도 많다. 특히 위에서는 쪼고, 까라고 윽박지르는데 아래에서는 내 얘기를 고스란히 들어주지 않는다. 위에서는 까이고, 아래서는 치고받는다.


어쩔 수 없이 윗선의 의견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우리 팀이 해야 하냐’, ‘나는 그 일까지 못하겠다’라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받아치는 요즘 세대들 앞에 난감할 때가 많다. 위에서는 쪼아대고 아래서는 움직이지 않으니 그 사이에 끼어서 옴짝달싹 하기 어렵다. 제대로 끼어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으니 결국 내가 좀 더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야근도 불사하고 주말 출근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꼰대는 그야말로 앞 뒤(후)로 제대로 끼어있다. 그래서 앞 후다. 그러니 요즘 세대들이 앞훈 꼰대의 마음을 좀 이해하고, 위로해 주면 안 될까 하는 마음을 담아본다.


물론 실제로 욕먹고도 남을 꼰대들도 있다. 사적인 업무를 시키고, 인격적인 모독을 하고, 터무니없는 지시를 하고, 모든 일을 다 떠넘기고, 책임은 미루는 사람도 있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는 꼰대의 범주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내가 말하는 꼰대는 맡은 바 자리에서 할 일은 하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꼰대들을 의미한다.


둘째, 풍요 속의 빈곤, 친구와 가족들로부터 외롭다.


나이 40이 넘어가면 술 한잔 하고 싶을 때 편하게 전화해서 술 먹을 수 있는 친구가 많지 않다. 다들 바쁘고 약속이 있고, 가족이 있다. 점점 술 먹자고 전화하기 조차 미안해진다. 요즘 세대들은 카톡 하나에 술자리로 튀어나가고, 그게 아니다 싶으면 혼술도 즐길 수 있지만 꼰대들에게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때로는 가족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예전에는 아빠밖에 모르고, 아빠만 기다리던 딸도 점점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좋고, 공부할 시간도 모자라기에 아빠와 함께할 시간과 마음이 줄어든다. 가끔 아빠를 돈 벌어오는 기계쯤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라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갈수록 친구도, 가족도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 외롭다. 더 일에 매달리고 회사에서 맺은 인간관계에 집착하는 작은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왜 우리 부장님은 밥 먹을 사람이 없나?', '가족도 없냐?'라고 묻기 전에 가끔은 밥도 먹어주고, 술도 먹어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자. 불편하고 싫겠지만, 내가 잠깐 그에게 내준 시간이 큰 위로가 될 수도 있다.


셋째, 체력적으로, 실력으로, 정신적으로 한계를 느낀다.


변화의 속도는 상상외로 빠르다. 환경변화, 기술의 발달, 트렌드의 속도를 따라 잡기가 버거운 순간이 온다. 기술은 어찌나 빠르게 변하고 자동화되는지 어플 하나 설치하고 이용하는데도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힘들다. 체력적으로도 점점 지쳐간다. 밤새고, 술 먹고 그다음 날 아침에 끄떡없던 젊은 시절은 온 데 간데없다. 한두 군데씩 몸이 고장 나기 시작하고 만성 피로와 스트레스와 친구가 된다.


정신적으로는 최악이다. 예전에는 회사가 그렇게 싫었는데, 요즘은 나를 고용하고 써주는 회사가 고맙기 그지없다. 그런데 그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 도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경영악화, 조직개편, 구조조정이라는 말 앞에 밤잠 설치며 불안한 세대가 된다. 회사가 맘에 안 들면 언제든 이직할 수 있는 요즘 세대들과는 다르게 받아줄 때가 없을 것 같은 현실에 막막하고 불안하다.


그러니 위에서 시키는 일을 물불 안 가리고 받아오고, 왜 저렇게까지 회사를 위해 일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하고 무시하기 전에 한 번은 그들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보자. 겉으로는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는 상사의 모습이지만, 물 밑에서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발을 구르며 가라앉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최근 인터넷에서 어떤 여성 장교의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육군 참모총장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소신 있으면서도 통찰력 있는 발언을 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해 '여군'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조직원들이 진심으로 축하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여군이 빠지는 자리를 대신할 '남군'에게 어떤 혜택을 줄 것인가, 그래서 여군이 미안하지 않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다”


이에 대해 육군 참모 총장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굉장히 일부분이고,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라며 여군 중령의 말을 지지했다. 제 아무리 육군 참모총장이라고 할 지라도 여자가 아니고, 임신을 해보거나, 눈치 보며 육아 휴직을 쓴 경험이 없기에 정확하게 여군의 사정이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요즘세대들은 리더가 되기전에는 리더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는 것조차 불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 요즘 세대들이 가진 경험과 사고의 폭으로 선배들이나 상사를 재단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물론 요즘 세대가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럽다는 것 잘 안다. 하지만 요즘 세대들이 아픈 만큼 꼰대도 아프다. 앞후니까 꼰대다. 꼰대라서 싫고 꼰대라서 피하고 싶지만,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요즘 세대들의 쿨하고 배려있는 마음을 기대해 본다.


* 이번 글의 제목은 그 옛날 유명 드라마 '다모'에서 이서진 씨가 하지원 씨에게 했던 명대사 '아프냐, 나도 아프다'를 응용해봤습니다. '아프다'를 '앞후다'로 썼고, 뒤()로 끼인 세대이기에 말 못 할 고충과 외로움이 있는 세대로 표현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54화:홍삼 스틱과 양파즙, 센스는 한긋차이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