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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Dec 14. 2019

제68화: 똥인지 된장인지는 먹어봐야 아는 거야

꼰대라서 할 말은 좀 할게

어느 날, 카센터로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여보세요? 거기 서비스 센터요? 지금 갑자기 제 차 계기판에 사람이 똥 싸는 표시등이 켜졌는데요. 이거 무슨 일인가요? 왜 그런 거죠?”


“네? 지금 똥 싸는 표시등이라고 하셨어요? 20년 동안 카센터를 했는데, 똥 싸는 표시등은 본 적이 없는데요? 이상하네요. 일단 사진 보내줘 보세요.”


“이 사람이 지금.. 장난하세요? 이거는 외부 기온이 영하 4도라는 뜻이잖아요!!!”


인터넷 유머 게시판에서 본 글을 재구성한 내용이다. 말 그대로 장난 똥 때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 유머가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은 전화를 한 사람의 말에서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장난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진짜 저 그림을 똥 싸는 그림으로 해석한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유머이고, ‘저렇게까지 모를 수가 있나?’ 하고 웃어넘길 일수도 있지만, 나는 여기서 다른 의미를 발견해 본다. 어쩌면 전화를 한 사람은 똥과 관련된 부정적인 경험이 있거나 어딘가에서 비슷한 이미지를 본 기억이 있어서 그렇게 해석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다급하게 카센터에 전화를 한 것이다. 자신의 경험 안에서 생각하고 해석하고 행동한 것뿐이다.


최근에 나도 비슷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어느 날 ‘경기북부 보훈지청’이라는 곳에서 강의 의뢰가 왔다. 오후 3시부터 2시간 특강이었다. 그날 오후 12시에 수원에서 강의가 끝나기에 시간상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여유 있게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서서히 출발을 했다. 그런데 아뿔싸, 경기북부는 내가 생각하는 경기북부가 아니었다.



그때까지 내 의식 속에는 ‘경기북부’가 내가 사는 동네인 경기도 용인의 조금  위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 용인을 중심으로 북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경기도는 서울 아래쪽만이 아니었다. 내가 가야 하는 경기북부는 의정부에서도 한참을 더 올라간 동두천이었다. 급하게 택시를 탔고 강의 시작 5분 전에 헐레벌떡 도착해서 간신히 강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철저하게 내 경험 안에서 판단한 결과 벌어진 참극이었다. 길바닥에서 날린 택시비는 내가 감당해야 할 덤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경험 안에서 생각한다. 때로 그게 편하고 빠를 때가 있다. 일상적인 삶이나 간단한 의사결정에까지 고민하다가는 우리 뇌가 마비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경험은 우리 뇌를 지극히 효율화된 방식으로 작동하게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신념으로 강화되고, 어떤 상황이나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우리는 시공간적인 한계로 인해서 세상에서 일들의 일부만을 경험한다. 그래서 개인이 경험한 것이 전부라고 생각할 때 종종 오류가 생기고는 한다. 위에 두 가지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때로는 이런 경험에 집착할 경우, 심각한 피해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경험 안에서 생각하고, 경험에 갇힐 경우 잃게 되는 것들이 있다. 흔한 비유인 ‘장님 코끼리 만지는 상황’에 빗대어 3가지로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과거에 집착하고, 현재를 부정하게 된다.


코끼리 다리를 만진 사람에게 있어, 이미 코끼리는 둥근 원기둥 모양이다. 이것을 내가 알고 있는 진실로 믿게 되고, 실제 내 눈앞에 코끼리가 나타나도 그것이 코끼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하나의 경험이 모든 상황에 통용되지는 않는다. A라는 상황에서 유효했던 경험이 B에서는 무효가 될 수 있다. 특히 이런 현상은 실무자에서 리더가 되는 경우 많이 나타난다. 실무자 때는 소위 회사의 에이스였는데, 리더가 돼서는 C급 플레이어로 전락한다. 과거 실무자 때의 경험을 진리로 믿고, 같은 방식으로 팀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둘째,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막는다.


이미 코끼리를 만진 경험을 한 사람은, 코끼리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경험에 갇히게 되고 새로운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시각이 좁아지고,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용능력이 떨어진다. 반대로 코끼리를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사람은 코끼리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 백지상태다. 하지만 코끼리를 일부라도 만져본 사람은 코끼리에 대한 편견이 생긴다. 자신이 경험한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종종 이렇게 말한다.


‘그거 내가 다 해봐서 아는데..’

‘내가 잘 아는 건데’


셋째, 선입견이나 편견이 생길 수 있다.


누군가는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고, 다른 누군가는 코끼리의 코를 만지고, 누군가는 코끼리의 엉덩이를 만졌다. 각기 다른 경험이 형성되었다. 이때 저마다의 경험을 근거로 코끼리에 대해 떠들기 시작한다. 한치의 양보가 없다. 내 경험이 만들어낸 편향된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보면 결국 나는 옳고, 상대방은 틀리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경험이 만들어낸 산물이 '다르다'가 아닌 '틀리다'를 산출해 낸다.


이런 경험의 한계와 차이로 인해 사람들 간의 갈등이 벌어진다. 특히 회사는 여러 사람이 모인 곳이기에 그만큼 개개인의 다양한 경험이 모여 있고, 잦은 충돌이 발생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많은 경험을 한 기성세대와 새로운 경험으로 무장한 요즘 세대의 갈등은 그 정도가 심각하다. 서로의 경험을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의 경험 안에서 판단하고 행동하기에 서로의 경험을 부정한다. 요즘 세대들은 ‘꼰대’라는 이름으로 기성세대를 부정하고, 기성세대들은 ‘요즘 것들’이라는 이름으로 몰아세운다.  


많은 경험을 한 기성세대와 새로운 경험을 한 요즘 세대


일반적으로 조직 내 선배, 상사, 팀장이 되고 경험이 쌓일수록 그 경험 안에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쌓아온 경험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 경험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는 말자. 나이가 들고 연차가 올라가면 경험이나 전문성은 쌓이지만, 잃게 되는 것도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용 능력, 젊은 세대의 트렌드,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이런 것들을 보완해 주기 위해 팀이 존재한다. 이때 팀원들이 의견이 맞을 수도 있는데, 옛날 생각이나 내 경험에만 비춰서 ‘무조건 안된다’, ‘옳지 않다’를 남발하지 말자. 요즘 세대들이 살아온 세상은 전혀 다르고 그 안에서 쌓인 경험도 전혀 다르다. 시간도 흐르고, 상황도 변했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를 해석하고 판단하는데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위에 이야기처럼 진짜 똥 싸는 그림으로 보는 것이 꼭 잘못된 것일까? -4도를 똥 싸는 그림으로 보는 것이 내 기준으로는 틀리지만, 상대방의 기준으로는 맞을 수도 있다. 내가 가진 경험으로만 보면 틀릴 수 있지만, 상대방의 기준으로 보면 맞는 것도 있다.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뿐이다.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리다고만 생각하면, 그 순간  직원들의 마음은 정말 - 4도 이하로 얼어붙을지도 모른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옛날 생각이라고 해서 무조건 맞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경험 속에서 나오는 노하우도 있고,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응축된 통찰력도 있다. 그런 선배들과 상사들의 경험을 요즘 시대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재단하지는 말자. 선배들이 쏟아부은 시간과 열정, 그 노력이 만든 산물을 똥으로 생각하지 말자. -4로 얼어붙은 선배의 마음은 더 단단히 얼어붙어 영영 녹지 않을 수도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경험 안에서 꼰대로, 요즘 것들로 몰아세우지는 말자. 꼰대는 나이나 세대적인 특징과는 관련이 없다. 자신의 경험 안에 갇혀 있고, 그 경험 안에서 판단하고, 그 경험밖에 있는 것을 부정하면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다. 할 말은 하되, 서로의 경험과 의견을 들어주는 것.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수용하려는 태도, 선입견과 편향성을 극복하기 노력하고, 제3의 의견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에서 서로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4도도 맞을 수 있고, 똥 그림도 맞을 수 있다. 다른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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