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단순한 놀이에 불과한가

차장 정해원 씀

by 글마루 램프

“ 방화 저지른 30대 김 군, 평소 폭력적인 인터넷 게임을 즐겨하는 것으로 밝혀져...”

뉴스에서 우리가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기사에선 게임의 단점과 위험성을 부정적으로 써 놓았다. 청소년 범죄의 원인을 게임에서 찾는 전문가들의 천편일률적 분석은 그들의 전문성에 대해 의문이 가게 만들 정도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게임의 부정적인 부분만 보고 다수의 사람들이 게임이 해롭다고 동의하는 것이다. 왜 우리나라에선 유독 부정적 인식이 심하고, 이런 인식이 만연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런 인식은 게임의 낮은 지위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낮은 지위란 대중들이 인식하는 상상적 지위를 말한다. 게임의 위치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사례를 찾기 어렵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3년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는 게임을 4대 악으로 지정했고, 작년 4월에는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자체 등급분류 게임 모니터링단 채용자격요건을 경력단절 여성과 장애인으로 한정시켰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등급분류라는 중요한 일을 왜 여성과 장애인에게만 할당하는가? 정책의 시행자들은 게임의 등급분류를, 주로 단순노동인 공공근로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중요한 일은 경력이나 관련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게임이란 단어를 영화 또는 영상물로 바꾸어 본다면 이 의문이 어느 정도 공감이 갈 것이다.



모뉴먼트 벨리 사진/ 모늅먼트 벨리(구글 플레이스토어)

게임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전혀 단순하지 않다. 현재 미디어아트의 시대적 전개에 있어서 게임이 중요한 위치에 있다. 세계적인 찬사를 받은 도트 그래픽의 혁명 모뉴멘트 밸리, 코리 아칸젤의 슈퍼마리오 클라우드나 멘디 & 키스오버다이크의 핑크 오브 스텔스는 미디어 아트임과 동시에 하나의 게임이다. 인디게임인 레플리카의 스토리는 웬만한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욱 극적이다. 심지어 어떠한 미디어보다 효과적으로 개발자의 의도를 전달하기 효과적이다. 또한, 게이머의 결정에 따라 엔딩이 여러 갈래로 나뉜다. 게이머는 친구를 나라를 버린 배신자로 만들거나, 여러 방법을 통해 부당한 사건을 해명해 누명을 벗겨주기도 한다.


그럼 이러한 게임의 예술성에도 불구하고, 왜 게임의 대한 인식은 거의 바뀌지 않는가? 생각건대 이유는 평론의 부재이다. 처음 충무로에서 영화와 연극단이 생기기 시작한 1970년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농땡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많은 사람들이 영화와 연극을 접하고 평론을 통한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부정적 인식이 현재는 거의 사라졌다. 게임은 본격적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예술이기 때문에 아직은 평론이 활발하지 않다. 해외에 비해 더욱 그렇다. 게임을 분석하는 이론이 발전하고, 평론이 게임에도 활발히 진행된다면 대중들의 게임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지고, 게임의 예술성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게임의 세계적인 지위는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다음 아시안 게임에서는 게임을 정식 종목으로 선정하는 여부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하루빨리 거두고 우리나라도 시대의 흐름을 맞춰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은 Lamp 차장 정해원 학생이 작성한 1월 에세이 소재 '게임'에 관한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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