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함이 이룩한 시대

램프 신입 부원 송다은 씀

by 글마루 램프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아무리 민주주의 정치 체제가 들어섰다고는 하나 광복 후 안정을 찾을 시간도 없이 혼란의 전쟁까지 거친 국민 전반의 대통령에 대한 인식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의 국왕들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오늘날은 정치 의사 표현에 그 어떠한 제재도 없는 엄청난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루었으나 불과 60여 년 전만 해도 권력에 대한 반발이란 존재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너무 오랫동안 정권을 잡고 있었고 긴 정권만큼이나 많은 부정부패를 저질렀기에 1960년 대통령, 부통령 선거에서 불리한 입장이었다. 결국 자유당은 경찰과 공무원을 동원해 조직적인 부정 선거를 벌였다. 복종과 충성에 한없이 길들여진 국민들이 알을 깨지 못하는 새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던 그들의 악랄함을 여실히 보여 주는 선거였다.

그리고 오늘 4월 11일로부터 정확히 58년 전, 알을 깨려던 소년은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모든 혁명의 배후에는 당연함을 당연함이라 여기지 않는 무모함이 있다.

정부가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이 김주열 열사에게는 결코 당연하지 않았고, 그는 ‘권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이라는 데미안의 알이 국민들을 가두고 있었음을 인지했다. 그랬기에 그는 기꺼이 마산 시내의 시위대 속으로 몸을 던졌고 경찰의 발포에도 손에 쥔 돌 몇 개만으로 무모하리 만치 굳건히 버텨낸 것이다. 결국 그는 죽음을 맞이했다. 이 참혹한 결과를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미가 죽음일지라도, 설령 그를 알고 있었을지라도 그에게 있어 항거는 불가피했다. 민주주의를 ‘탄생’ 시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사진.jpg 4.19 혁명 사진 / 나무위키에서 발췌

알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끊임없이 시위가 이어졌고 그의 주검이 발견된 지 8일 후 1960년 4월 19일, 서울 시내 대학생들이 일제히 거리로 나와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선거를 규탄했다. 대통령 관저 대인 경무대 바로 앞까지 접근한 이 대규모의 시위는 훗날 ‘4·19 혁명’이라 불린다. 당국이 혁명가들을 공산주의 세력이라 매도하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탱크를 앞세워 무력진압을 자행해 천여 개의 목숨을 앗아갔어도 그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교수들마저도 거리로 나오며 완강한 투쟁이 이어졌을 뿐이다. 결국 이승만이 4월 26일, 국민들이 원한다면 물러나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대통령직을 내려놓음으로 잔혹했던 자유당 정권이 무너졌다.


김주열 열사를 비롯한 우리 국민 모두는 그들이 갇혀있던 세계를 깨뜨리며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그들의 희생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아시아 최초의 민주 혁명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자양분이 되었다. 희생자들 중 가장 어린 나이의 학생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꽃봉오리의 피의 결실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률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 대한민국 헌법 -

우리는 비로소 그 무모함이 이룩한 자유의 시대를 살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언젠간 우리 모두가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