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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딩굴딩굴 Nov 17. 2020

야근 없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자본주의 직장인 성공 매뉴얼

"왜 야근을 왜 하게 되는가?" 


내가 생각하는 야근을 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저비용 고성과" 를 강요하는 기업 문화이다. IMF 이후 각 기업들은 앞다투어 비용 절감 및 생산성 향상을 화두로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전략 산업 육성이나 자본 재투자를 통한 연구개발, 새로운 아이템 발견을 통한 기업 생존력 강화, 사업 확장의 선순환보다는 노동자를 옥죄어 인건비를 줄이는 아주 쉬운 방식을 택했다. 아예 이제는 이 방식을 상시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마다 기업 환경이 어렵다는 말과 함께 ...

쉽게 말하면 10명이 하던 일을 이제는 5명만 가지고 해내도록 인원을 줄인 것이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아빠들에게 칼퇴근을 해서 가족과 같이 저녁식사를 하는 미션을 주었더니, 그 미션의 대가는 다음날 새벽같이 나와서 전날의 밀린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딜 가나 일은 덜 하고 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 만 하고는 살 수 없다. 머리 아픈 회의가 끝나면 커피도 한잔 마시고, 잠깐 쉬기도 하고, 화장실도 다녀와야 한다. 참 씁쓸한 현실이긴 하지만 정도를 벗어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업무 시간에 대놓고 조기축구회 명단을 작성하는 사람도 봤고, 업무와 무관한 웹 서핑으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첫째 항목에서 5명이 일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정확히 얘기하면 "일하는 사람은 3명, 하는 둥 마는 둥 1명, 나머지 1명은 노는 사람이다" 라고 비유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이 대목에서 궁금해진다. 그럼 1명의 노는 사람은 왜 생긴 걸까? 이 사람도 처음부터 놀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신입사원 시절 그룹 연수를 받으며 기억한 포부 - "내 분야에서는 최고가 되겠노라" 를 기억한다. 무언가 회사에 불만이 있어서 태업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어떤 이유인지 모르게 업무에서 배제되어 할 일이 없어서 노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열심히 하고도 공정한 평가(보상)를 받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회사(또는 관리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10명이 하던 일을 5명이 해내야 하고 그나마 그중 2명은 하는 둥 마는 둥 하니 남은 3명이 야근을 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셋째,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잘못된 "문화" 이다.

쉬는 시간을 줄여가며 업무 시간에 집중해서 주어진 미션을 다 끝내고, 정시에 퇴근을 하는 직원의 모습을 회사(관리자)는 어떻게 볼까? 남들은 야근하는 데 혼자만 정시 퇴근하는 파렴치한 직원으로 낙인 될 것이다. 게다가 나이까지 어리면 앞에 "철딱서니 없는" 이란 수식어가 추가될 것이다. 이런 직원은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정시 퇴근하는 것을 보니 일을 좀 더 줘야겠네" 하면서 업무량이 늘어나지 않으면 다행일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런 잘못된 문화를 당연 시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업무 시간에 집중하면 다 끝낼 수 있는 일도, (조금 과장을 보태면) 저녁 먹고 들어와서부터 시작하는 아주 잘못된 문화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윗사람" 의 눈치가 보여서 어차피 일찍 퇴근할 수 없는 데 굳이 뭐 하러 업무시간 중에 집중해서 일을 할 필요가 있나?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들과 멀어지고, 집에서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하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든다. 이런 와중에 아이들은 "아빠 없이" 커가고, 사춘기가 지난다. 나중에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면 "어색"해 한다. 이러니 아빠와 자녀가 서로가 서로를 피한다. 아빠는 생활비, 학원비 벌어오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대로 굳어진다. 악습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대안을 생각해 본다. 사실 위에서 얘기한 "야근을 하게 되는 세 가지 이유" 에 대한 대안은 개개인이 노력해서는 바꿀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적어도 우리나라처럼 오너에게 절대적인 권력이 집중된 기업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데 그 어떤 사람이 나서서 야근 없는 회사를 만들어 보자고 앞장설 수 있을까?

따라서 기업의 전략이나 문화 또한 오너의 마인드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오너가 바뀌지 않으면 야근 없는 사회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미리 내 버리는 것 같아 아쉽다. 어쨌거나 회사이건 개인이건 "야근 없는 사회"를 위한 내가 생각해 본 방안은 이렇다.


첫째, 적어도 일이 년 정도 회사에 다니고 말 것이 아니라면, 나중에 관리자가 됐을 때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주니어 시절에야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겠으나, 아무런 준비 없이 지내다가 관리자가 덜컥 돼버리면 시대는 변하고 있는데 기존에 일해왔던 방식을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 늘 그래왔듯이 야근을 할 거란 말이다.

무엇보다도 관리자는 개개인의 역량과 자질을 철저히 꿰뚫어 합리적이고도 적합한 목표를 부여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회사에서 노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다. 회사에 노는 사람이 없어야 일의 배분이 원활해지고, 야근이 줄어든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포용할 수 있고, 또 이끌어 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또한 필요해 보인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또는 후배 직원의) 아이디어나 노고를 본인의 실적으로 가로챈 건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따라서 업무 전문성 뿐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뒤지지 않도록 트렌드에도 민첩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 끊임없이 공부하고 토론할 수 있는 지적 깊이야말로 이 시대 관리자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둘째, 회사에서의 일 외에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가져야 한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취미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정시에 퇴근해서 집에 가봐야 가족들이 불편해하고, 또 회사에 있는 것 말고는 딱히 특별히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어서 그냥 회사에 남아서 야근을 한다는 게 얼마나 처량해 보이는지 알아야 한다. 특별히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은 없지만 주말에 집에 있는 것보다 회사에 나오는 게 편하니 출근하겠다는 그분들은 이제 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회사는 이런 목적 없는 근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


셋째, 회사는 개인에게 적합한 목표와 적절한 업무의 양을 부여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업무 성과에 대해서 팩트를 전제로 피 평가자가 동의할 수 있는 평가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일한 것에 대한 보상, 동기 부여와도 직결되는 일이다. 참 어려운 일이지만 객관적인 업무 성과를 근거로 평가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성과와 관계없이 신입 사원이니 안 좋은 평가를 주고, 반대로 진급 대상자라고 해서 좋은 평가를 주는 사례를 나는 많이 봐 왔다.


넷째, 관리자의 임기는 보장되어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는 또 하나가 있다. 많은 기업들은 보통 매년 말을 인사 시즌으로 정하고 가문의 영광이라고도 불리는 관리자, 임원 승진 발표를 한다. 임원 승진 발표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인 반면에 동시에 임원 계약 만료 통보는 아주 조용히 전해진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듯이 아주 어려운 확률로 임원의 자리에 오른 만큼,  어찌어찌 임원이 되어도 그 다음 해부터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고과 평가를 받기 전까지는 모든 게 실적을 위해서 초점이 맞추어진다. 장기적인 전략이나 비전은 없다. 오로지 아웃풋이다. 아웃풋이 없는 프로젝트는 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다. 당장 내년에 잘릴지 모르는 데 2년, 3년 넘게 오랜 시간 노력과 투자가 필요한 일을 어떤 관리자가 하려고 할까? 부하직원들은 1년 동안,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1월부터 그 해의 실적을 집계하는 10월 또는 11월 까지는 아웃풋을 내기 위해 야근을 해야 한다.


대한민국...

급격한 산업화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 반도체, 스마트폰, TV, ..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일등 제품들)

이제는 이런 일등 제품들이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노동자들이 흘린 피와 땀(이라 쓰고 야근이라 읽는다)을 기억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앞으로는 야근 없는 정상적인 사회를 위한 (무엇보다 중요한) 오너의 결단 또한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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