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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May 15. 2016

여행을 닮고, 시를 담다.

무진을 노래하다

사파 (베트남)


너를 보려

굽이 굽이 치는 산을 넘고

찰랑 찰랑 넘실거리는 바다를 건너고

참 멀리도 왔다

청량함의 푸름과 초록의 상큼

민낯을 보여주는 듯하더니

어느새 두꺼운 화장을 해버렸네

어디가 눈이고 어디가 입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것 또한 너임을 나는 잘 안다

차근 차근 너를 만져볼 참이다

자그럽고 쑥스러울지라도

아주 처음같이 나를 안아주아

부디, 나에게 너를 보내어 주길 바란다


나는 너를 보려 참 멀리도 왔다




오랜 동남아의 여행이 나에게 많은 미련을 남겼다. 집으로 돌아온지 불과 채 3달도 되지 않은 시간에 다시 홀린 듯 배낭을 짊어 지고선 인도로 날아갔다가 돌아오는 길 베트남을 들르기로 했다. 몇 달간의 인도 여행을 끝으로 8개월 만에 다시 찾은 베트남은 호찌민에서 하노이로 바뀌었고 따뜻한 남부가 아니라 절기상 추운 2월의 겨울이었지만 선선한 가을의 바람이 부는 베트남의 북부였다. 그중에 지난번 베트남 여행서 정말 가보고 싶었던 사파. 마음만으로 정말 설레었다. 세 거의 대부분의 기차를 다 타봤건만 이렇게 안락하고 편안한 기차를 본 적은 없다. 해리포터가 타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인도의 기차를 타다 놀이동산의 청룡열차를 타도 천국 같은 기분이 들었을 것인데 오죽했겠는가. 허나 오랜 배낭여행의 여독과 갑작스레 바뀐 시차 때문였을까 기차를 타자마자 긴장의 끈을, 정신의 줄을 놓아버리고 곯아떨어졌버렸다.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도착을 알린다. 창밖은 아직도 미명조차 트지도 않은 이른 새벽인데 여기가 틀림없는 사파임을 조금은 덥고 습한 기온이 알려준다.


너의 민낯은 청량하고 초록으로 넘실 거렸다

                                                                                                             

꼬불 꼬불 끝도 없는 산길을 오른다. 겹겹의 산들은 구름 이불을 덮고 있고 그 이불들 틈 사이로 초록의 계단식 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길 한켠엔 키 작은 고산족 소녀가 아기를 업고 있다.


구름과 안개를 잔뜩 품고 있는 큰 산들을 지나 도착한 사파. 산 위 구름 아래에 비밀처럼 존재하는 작은 마을 사파.


이른 아침에 도착한 사파에선 이른 체크인이 되지 않았다. 숙소는 예약을 하고 아침식사도 할 겸 이 비밀 속의 작은 마을을 조금 둘러본다.

깊은 산속 비밀스러운 마을

한적하기 그지없는 작은 마을엔 작은 학교처럼 보이는 곳에서 운동회라도 하는지 만국기가 휘날린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지나는 이들의 굉장한 이목을 집중했다. 무엇이 이리고 조용한 마을에서 난리는 치는 건지 집중하여 들었을 때엔 그것이 시끄러움이 아니라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파의 지금은 무적이나 행복해 보였다. 조금은 늦은 아침을 먹고 든든한 마음에 조금은 더 이쁘게 들어오는 산과 구름들.

하지만. 편하지 못한 잠과 높은 지대로 지침이 느껴진다. 체크인과 동시에 많은걸 빨리 돌아보는 것 보다도 휴식이 필요할 시점이다. 트레킹이 사파에서 제일 큰 매력이고 슬로우 슬로우가 정답일 테지.

어딜가나 밝은 빛은 언제나 나에게 비추어지길


해가 중천을 지날 때까지 휴식을 취했다. 하는 것 없이 자고 먹고 쉬고 먹고를 반복한다. 여행이라 쓰고 한량이라 부르리. 또다시 욕구를 채우러  점심식사를 하려 나서는 길. 얼마만에 청아한 하늘을 보는지 산은 또 얼마나 초록인지 청량함을 더해 마음에 잔잔한 물결이 넘실거린다. 눈도 마음도 정화된다. 바람은 차지만 볕은 너무나 따뜻했다.

허기진 욕구는 쌀국수 한 그릇으로 충족을 했고, 초록에 파묻혀 죽을 만큼 한참을 걸어볼 참이었지만 멀리 산 위에 비를 머금은듯한 검은 구름이 문득문득 보인다. 무릎에서도 예신을 보낸다. 혹시나 모를 낭패를 뒤로하고 괜찮은 뷰를 가진 '마운틴 오브 더 클라우드'라는 카페에 앉았다. 어쩌면 카페 이름도 구름의 산일까. 한참을 멍하니 앉아 바라보는 산이다. 산 말고는 바라 볼 곳도 없지만 참 좋다. 사파에 보이던 여행자들은 대부분이 투어족이라 사람이 빠진 사파엔 고요함이 진하게 묻어난다. 지금은 오롯이 나만의 사파다. 저산도 내산. 이산도 내산. 저 하늘도 내 하늘 이 구름도 내 구름. 전부 내 것이다. 고로 지금 나는 부자다.

꿈을 만드는 마법엔 검은구름과 희뿌연 안개가 필수적이다

해 질 녘까지 바라본 산 어깨에서 스멀스멀 안개가 내려온다. 희뿌연 마을. 그 자체로 몽환적이다. 꿈같은 사파. 대부분의 사람들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야 비로소 건강해지려 쉰다. 자고로 건강함은 건강할 때 돌아봐야 한다. 나는 이런 꿈만 같은 곳에 와서 참 건강을 얻어간다. 몸도 마음도. 사파는 건강이다. 이곳은 건강을 무료로 나눠주는 곳.


안개속으로 갇혀 버리다

밤사이 조금 내린 비로 사파는 안개 속에 갇혀 버렸다. 해는 어디에 숨었는지 산 뒤에 숨었나 구름 위에 안개 속에 숨었나. 맑은 하늘을 기대했건만 오늘은 아닌가 보다, 그래. 안개가 조금 끼면 어떠한가. 그대로의 맛과 멋이 있는 거겠지. 가볍지만은 않은 옷을 여미고 안개 속을 헤쳐간다. 희뿌연 사파. 내가 어디로 가는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길 따라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또 다른 동화 같은 마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해발이 3천 미터가 넘지만. 결코 무겁지 않은 발걸음이다.

cat cat villige. 깟깟 마을. 무슨 대단한 마을인지 초입부터 돈을 요구하는 마을이다. 뭐 대단한 마을이요? 그저 웃는구나. 내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있으셨다.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고. 사람 구경을 돈으로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너무 일반적이고 일상적이다

그저 관광상품이 없는 아주 아주 평범한 길로만 걸어간다. 굽이 굽이 치는 길. 뛰어다니는 닭. 개. 돼지. 어릴 적 외갓집 가는 길이다.

아주 특별하게. 특별하듯 조성은 해놓았다지만. 지극히 평범하기 그지없다. 너무나 평범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움직였다 멈춰다를 반복하다 이내 사라졌다

저기 멀리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솟은 산 위로 구름과 안개가 덮여 있다. 머리맡으로 케이블카가 움직였다가 한참을 멈췄다. 반복을 한다. 그리곤 이내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3 모작의 베트남 농사는 겨울이라 공허히 허수아비만 자릴 지킬뿐이다. 그 누구도 다가와 말을 걸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적당한 고독을 가진 그는 멍하니 무엇을 바라보 무엇을 생각하며 그 자리를 지키고 지켰을까..

무엇인가의 삶의 무게와 쓸쓸함이 묻어 난다

돌아가는 길. 마주쳤던 고산족 여성 2명을 뒤돌아 바라본다. 진정 그대들이 바라는 삶인가. 만족하며 살아가는 삶인가. 아무렇지도. 너무나 평범한 뒷모습에. 무엇인가의 삶의 무게와 쓸쓸함이 묻어나는 건. 내 마음이 투영되었을지도 모른다. 점점 짙어지는 안개 속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숨이 찬다. 허기친다.

길의 끝에 매일같이 가던 식당으로 들어섰다. 담배와 차를 마시며 웃는 인상 험악하지만 맑은 미소의 주인장. 진하게 우려낸 차를 대접한다. 그리고 오늘의 안부를 묻는다. Good. 허기짐을 친절함으로 충분히 달래 가게를 나서려는데. 과일을 내어 온다. 어설프게 썰어온 바나나와 수박.

바나나만큼 쫀득한 유대감이 있 수박의 과즙만큼 정이 넘친다. 고마워. 별거 아니지만 별거에 과분하게 받는 하루다.

점점 무거워지는 안개들. 한 템포 쉬어갈 때. 장판에 불을 지피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한다. 지금은 사파 천국. 안개처럼. 침대 속에서 퍼진다.

저녁이 다되어서야 묵직한 커튼을 친다. 어둡다. 어둠이 내려서라기보다 안개가 사파를 덮쳐버렸다. 그 속에 이슬비도 함께 했다. 함께라 든든하겠어. 정말이지 한 치 앞을 헤아리기가 힘들다. 바닥만 바라보고 걷는다. 멀리서 오토바이들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스쳐간다.

안개와 이슬에 비치는 전조등은 뭉글뭉글 빛을 발하지 못해 희미하게 사라졌 가게들의 네온사인들도 마찬가지의 입장이다.

둥글둥글하고 뭉글뭉글하다

희미 희미하게 색깔만 뭉글뭉글할 뿐. 안개를 헤쳐 따뜻해 보이는 가게로 들어간다. 벽난로 근처에 자리를 한다. 나무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죽어간다. 나무야 넌 태생이 희생이구나. 무슨 마음인지는 모르겠으나 타들어가는 장작을 보니. 사파랑 너무나 닮아 있는 것 같구나.  어린소녀가 더 어린아이를 업고 있는 것이나, 늙은 고산족 할머니의 깊은 주름 같은. 모르겠다. 맥주 2병에 감성팔이를 하다니. 오랜만이구만. 취하고 싶은 밤. 참 고맙네. 여행이. 베트남이. 사파가. 나한테도 이런 착한. 선한 생각을 다 하게 하고. 고맙습니다. 모두. 전부.

다신 볼 수 없었던 민낯이지만 이또한 매력이겠다


그렇게 일주일간 머문 사파에선 맑았던 민낯은 다신 볼 수가 없었다. 안개가 내려앉아 나의 마음도 가라앉혔고 많은 생각과 생각이 안개처럼 펴 저 나가 스스로 많은 어리석음을 만들어 냈다. 사파는 생각이 적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생각이 너무 많아 어리석은 것이라 오늘도 사파는 쉬어가라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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