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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May 21. 2016

인도를 노래하다.

#5 쉼표 하나

쉼표 하나 (아람볼)


문장의 시작을 알리는 띄어쓰기

문장을 강조할 때 따옴표

문장을 마무리할 때 마침표

문장과 문장을 연결하다 숨 한번 쉬고 가라는 쉼표


사람도 무언가를 시작할 때엔 마음을 다잡고

무언가를 강조할 때는 힘을 넣고

무언가를 마무리할 때는 신경을 곤두 세운다

그런데 쉴 때는 쉬지 않고 어떻게 쉴 것인지에

계획과 정보를 찾는다. 


쉼이란 문장뿐만 아니라, 너와 나와 우리가 제일로 필요로 하는 것이다.






잠자리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건지 방갈로의 저주 때문인지, 자주 잠에서 깼다.

AM 4:33. 악몽 비슷한걸 꿨는지 개운하지가 않다. 일어나 밖에 나와서 담배를 물었다.

아직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는 하늘엔  뿜어낸 담배연기 사이로 쏟아질 만큼의 별들이 흐트러져 있다.


멀리 미명도 트지 않았는데 무언가 움직임이 포착된다. 

배를 밀고 무언가 힘을 합쳐 끙끙대는 모습들. 새벽녘 일찍 일에 나서는 인도 사람들.


이유 없는 미안함이 든다. 

너흰 주어진 현실에 마주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나 혼자 너희들이 가지 못한 여유를 가지고 있나 해서

더 미안한 건, 그 미안한 마음도 잠시였다는 것.

피곤한 듯 다시 잠자리에 들었고 한참을 뒤척이다 결국은 잠에 들지 못하고 가벼운 옷을 여미었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뒤엔 무엇이 있을까


이어폰을 꽂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다. 운동화 끈을 조으고 나서는 길.

더 넓은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더 넓은 모래사장엔 작은 파도가 일렀다 이내 사라진다.


하루의 시작이 빠른 인도인들. 

그 분주함 속에서도 처음 보는 나에게 안녕을 고하는 인도친 구들. 

그 누가 나에게 안녕을 고한지가 얼마인지 또 내가 누군가에게 언제 안녕을 고했는지.

그런 의미에서 나도 한번 안녕을 고해 본다. 

그대여. 어제 밤사이 안녕하셨는가?


삶의 질은 돈이 아니라 마음가짐이 아닐까. 그 마음만큼은 지금의 인도가 대한민국보다는 부하다.

만선하시오


그물을 손질하고 배를 수리하고 출항을 준비하는 인도 사람들. 모든 표정, 행동 하나하나가 정성스럽다.


비다에 비추어지는 태양빛이 강렬하다. 귓가에 흘러나오는 노래도 경쾌하기 그지없다.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건


푸름의 아람볼. 설렘이 넘실거린다.


작은 레스토랑에 앉아 짜이를 마신다. 여기 인도는 커피보다는 짜이가 훨씬 잘 어울린다.

홍차와 밀크의 조합처럼 나도 인도와 잘 어우러지길 바래본다.

찰랑찰랑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어색하지 않게 눈을 감고 옛 생각에 빠져본다.


돌아온 숙소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음을 뒤늦게 짐작한다.

돌고 있던 선풍기가 멈춰있고 충전 중이던 배터리에 불이 꺼져있다. 불편함을 느낀 건 아니었지만

잠시 침대에 기대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도 자의가 아니라면 불가항력적으로라도 정전이 한 번씩은 왔으면 하고.

그대는 무엇을 위해 미친 듯이 일을 하고 악착같이 돈을 버는가. 거울 한번 제대로 보기 힘든 시간들. 

그대는 하늘을 언제 한번 올려다봤는가?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은 적이 언제인가? 꽃의 인사를 언제 받았는가?


그대 인생에 단 하루정도라도 쉬어가는 작은 쉼표 하나 찍고, 오롯이 자기를 위한 투자를 해보라

당신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단 하나다. 당신이 이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해보라. 모든 축은 당신으로부터 움직일 것이다.


나도 정전인 양 꼼짝 않고 천정을 바라보며 누워있는데 조용히 선풍기가 돌아간다. 그렇게 아주 잠시 잠이 들었다.


아침엔 참 선선했는데. 뜨거워지는 건 순간이다. 그러곤 아주 천천히 식어간다.


사람도 사랑도 말이다. 남녀가 만나서 찰나의 순간처럼 뜨거워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처음과 같이 설레고 떨리는 마음이야 무뎌진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도 사랑한다는 마음 하나와 서로에게 최소한의 배려와 존중을 더한다면 그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더 뜨거워지기 전에 여행객들이 잘 다니지 않는 아람볼 해변의 다른 길을 선택해 산책을 해본다.

인도인들은 그림에서 만큼은 탁월하다

좁고 작은 반대편 길로 나서니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였구나 싶었다. 또 다른 아람볼이 있다. 너무 아름답다. 내가 있는 조용한 숙소보다 더 조용하고 조용하다 못해 스산하기도 했는데 이 길은 해가 뉘이면 조금은 위험할 것 같다. 술과 약에 찌든 인도 아이들이 많다. 


조금은 더운감이 있어서 윗도리를 벗어 허리에 차고 거니는데, 가냘픈 나의 몸에 약간의 문신과 얍샵하게 생긴 일본인을 닮아 그런지. 매우 강력하게 헤이 저펜니즈. 마리화나. 니뽄 마리화나. 내가 약쟁이처럼도 생겼나 보다 아놔.. 가벼웁게 마리화나도 물리치고 산책도 음미하면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거닐다 돌아왔다.


별 볼 일 없이 늘 가던 작은 카페에 앉는다. 별 볼 일 없이 인도음식을 시켜먹고. 또 별생각 없이 멍하니 바다만 바라본다. 무언가를 하려 하기보단  그냥 이런 조용한 한적한 별일 없는 시간이 좋을 때가 있다.

사실 별일 없는 게 아니다. 정전도 밥먹듯이 하기에  바다 보고 산책을 하는 게 최선이고 최고의 행위다.

어제보다 사람이 많아진 느낌이다. 사람 소리 보단 파도소리가 훨씬 크지만 말이다.



수고했어 오늘도

해 질 녘 

사람들이 많다 늘었다고는 해도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말 거는 사람 하나 없으니.

이 모든 해변이 나만의 것이고 오롯이 혼자 노을을 즐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지 아니한가.


샤워를 하고 갈아입을 옷들을 보니 빨랫감이 많아졌음을 알았다. 언제 이렇게 많아졌지.

아람볼 전체 세탁방들이 빨랫감 하나하나당 가격을 붙인다. 왜 이런 시스템이지. 무게로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이런 식이면 하루 종일 굶어야 하는 유혈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굉장히 친절해 보이는 아주머니와 협상 테이블에 앉아 각자의 나라말로 협상을 시작한다.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결과적으로 무게로 하기로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최소한 한 끼는 먹을 수 있는 협상이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 라이브 카페에서 음악이 흘러나와. 불현듯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익숙한 음악이었으므로. 그렇게 음식 맛보단 분위기로 저녁을 했고, 집에 가서 맥주 한 병을 하고 자려고 가격을 물어보니.. 카페에서 파는 술보다. 비싸다. 약간은 황당스러웠지만 당황하지 않고 집 밑에 늘 가던 카페에서 시원하게 조용하게 맥주 한 병으로 나에게 선물을 준다




선물이란 건

값비싸고 귀한 것만이 아니다

늘 곁에 있고

값을 메길 수 없는 고귀한 것들이 지천으로 깔려있다

주위를 둘러보라

그리고 오롯이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쉬어보라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그것이 내나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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