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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May 19. 2016

인도를 노래하다.

#4 사람들

사람 (아람볼로 가는 기차 안)


분명 나의 자리지만

모르는 사람이 옆에 앉고

모르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모르는 사람과 식사를 나누고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모르는 사람과 웃음을 나눈다

어쩌면

우리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오래된 사이처럼 익숙할 때가 있다




현재 시간 AM 3:04

더운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추워서 잠에서 깼다. 아는지 모르는지 이어폰에서는 계속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분명 여긴 여름인데, 며칠 사이에 겨울에서 여름으로 순간이동을 한지라 몸이 적응을 못하는 건지.

추운 건 딱 질색인데 염치를 불구하고 두터운 양말과 더 두터운 거위털 침낭에 가냘픈 이 내 몸을 합체시켰다.

인도인 체형에 맞춰진 침대라 조금은 좁고 짧아 불편했지만 이내 다시 잠에 빠져들었고 중간중간 삐져나온 발에 누군가들의 머리와 부딪친듯했다. 알면서도 다리를 접을 수가 없었다. 가면 갈수록 기력이 떨어지는 게.. 한 살만 더 젋었더라면.. 허나 오늘만큼은 그 피곤함이 참 좋았다.

그리고 4시간 즈음 지난 후에 찜질을 마치고 침낭과 나는 다시 분리되었다. 온몸엔 거위라도 뜯어먹은 듯 거위털로 한껏 멋을 더 했다.

인형의 웃음을 사탕 하나로 사다

일어났을 때 언제 있었는지 할 예쁜 아이가 옆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너무 귀엽다.

귀여운 아이에게 소중한 나의 일용한 양식 딸기맛 카라멜을 하나 건네니. 웃음꽃이 만개한다. 네가 좋아하니 나도 좋다. 너무 좋아도 그렇지 내 침대를 차지하면 이 아저씨는 어떡하니.


전혀 다른 풍경 속에 아침은 담배 한 개비와 따뜻한 짜이 한잔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기차는 정을 싣고 달린다

아래칸에서 가방을 같이 묶어 달라던 인도 아저씨들 가방들에서 무언가 주섬 주섬 꺼내며 어디서 왔고, 인도가 어떻냐며, 어디로 가는지 꼬치꼬치 물어본다. 안 되는 영어로 차근차근 말하는데 마침 그분들 가방에서 꺼낸 식사인지 간식인지 모를 음식을 건낸다. 사양했지만 부담 갖지 말라는 듯 두 손 가득히 담아주신다. 많은 걸 가져서 주는 게 아닌 마음이고 정 이였다. 같이 웃으며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내릴 땐 마중도 나와주셨다. 손 한번 크게 흔들어주고 짧은 만남이 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서로의 안녕을 고했다. 그 누가 인도가 최악이라 했던가. 내가 가본 나라 중에 최고로 정이 넘치는 곳이 인도다.


기차는 떠 났고. 나는 고아. 빼르넴역에 내렸다.

고아 지방의 북부. 아람볼이라는 작은 해변 마을. 역에서 16km 정도인데 택시비가 너무 비싸다. 쉐어를 해도 마찬가지다. 담합 때문에 싸질 않다.

현지인에게 버스정류장을 물어보고 버스를 기다린다. 택시기사들은 한번 더 낚아보려 재협상을 원했다. 한번 상한 마음은 돌아서질 않는다. 20여분 정도 기다렸을 무렵 저기 멀리서 흙먼지를 날리면서 100년은 된듯한 고물 버스가 달려온다. 35루피. 10배는 싸다. 외국인이라는 핸디캡인지 아님 배낭이 너무 커서 우대를 해준 건지. 기사 아저씨 옆자리로 배정을 받았다. 엔진 위에다. 내 몸이 불탄다.

그래도 아늑했다.

기사 아저씨 옆에서 같이 운전하는듯한 느낌이다. 근데 브레이크가 잘 안 먹고 핸들도 잘 안 돌아가더라.. 

당신들의 친절함에 인도가 더 가까워 온다

근데 너. 정말 터프하더라. 내 심장이 멎을 정도로 상남자였어.

반전 매력으로 친절하게 여기가 아람볼이라 육성으로 방송도 해주고 좋은 여행하라는 너의 말도 감동이였다. 너도 안전 운전해.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던데 좀 멋있더라. 건강해라.


달리고 달리고 달려서 도착한 곳.

많은 외국인들이 눈에 보인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오토바이도 많다.

어디가 어딘지  모를 땐 걷는 게 최고다. 나는 모를 땐 직진이라는 본능을 장착해 놨다.


내 몸무게와 얼마 차이 나지 않는 배낭의 무게와 배낭의 무게를  훨씬 넘어가는 온도. 모든 걸 태워버릴 듯한 태양. 슬슬 맛이 가기 시작한다.


환각일까. 환시. 환청이 들린다.


새들이 갈매기처럼 보이고.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들 사이로 파도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흙먼지 사이로 바다 냄새도 맡은 거 같고, 그렇게 또 한동안 걷다 보니 저기 멀리 바다와 하늘의 경계선이 없는 뻥 뚫린 푸름이 보인다. 분명 바다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구나. 내 고향도 바다를 끼고 있지만,

외국만 나오면 왜 이렇게 바다가 반가운지 모르겠다.


뭄바이 다음. 고아의 북부 작은 해변 마을. 아람볼. 처음부터 이렇게 마음에 쏙 들면 어쩌나. 여행이 길 텐데..

공사가 중단된 공터는 한동안 나의 전용 테라스 였다

숙소도 비치가 훤히 보이는 조금은 덜 더러운 곳에 둥지를 틀었다. 오늘은 더 할 것도 없다. 이 정도면 충분히 오감만족이다. 방갈로라는 게 조금 신경이 쓰이지만, 나는 방갈로 징크스가 있다. 부디 인도에선 방갈로의 저주가 없길..

짐도 풀고. 테라스라기보다 공사가 중단된 약간의 공터에서 아람볼의 해변을 내려다본다.

한참을 해변의 모든 것을 보다 점심도 놓칠뻔했다. 난 한 끼만 안 먹어도 예민해지는 지랄 같은 성격인데

사람을 홀린다. 아람볼.


음식들도 아람볼을 품고 있나 입에도 잘 맞다. 동남아 여행 땐 음식이 맞지 않아서 한동안 고생을 많이 했었는데 감사하다. 그중에 최고였던 것은  5일 만에 wifi 구경을 했다. 입구 몇몇에 인터넷이 가능하다고 적혀있었는데 너무 반가운 나머지 아게  WIFI AVAILABLE 이걸 보고 패스워드가 AVAILABLE 줄 알고 적었더니.

아저씨의 표정이.. 세상에 저런 멍청이가 다 있나 하는 그런 웃픈 경험도 했다. 아무리 반가워도 뭐든 적당히라는 게 있는 법.

내가 정했다 밥말리 거리라고

아람볼의 작은 거리. 조금은 태국의 빠이를 닮아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빠이는 정이 별로 안 갔었는데, 아람볼은 정이 간다는 것

가장 사소하면서 가장 큰 것.

언제부턴가 바다가 좋아졌다

다시 돌아와 공터 테라스에 앉아 조용히 멍을 때린다. 모든 게 평화롭고 천천히 흐른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사람 없는 2층에 앉아 음료와 5일간 못했던 한국의 정보를 얻는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가는구나. 내가 없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것들이 너무 많았는데.

내 자리는 비워졌으나 금세 메워졌고 또 아람볼에 오면서 없어진 자리에 내가 메워 놓고 있다. 둥글게 둥글게.

세상 사는 거 어딜 가나 다 같다는 우리 어머니 말씀.

수평선 넘어 해가 놀을 따라 거닐다

아람볼의 일몰은 바다가 해를 칡즙의 달걀을 쪽 하고 빨아 마시듯. 금세 먹어버렸다.

모든 붉음이 검음으로 바뀌었고 들어가는 길목에서 짜이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은 하루가 꽤 길게 느껴졌다. 실속 있게 꽉꽉 채워서 말이다.



친절을 베푼다는 건

내가 돋보이기 위함일까

네가 잘되길 바라는 것일까

세상엔 이유 없는 베풂은 없다지만

나는 이유 있는 베풂이 있는

내 머리로는 알 수 없는 나라에서

많은걸 친절히 받고 배우고 있다

나, 너 그리고 우리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

베풂을 알고 나눔을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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