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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May 22. 2016

인도를 노래하다.

#6 물들다

조금씩 조금씩 (아람볼)


당신보다 4시간 늦은 노을을 보며

당신 생각에 잠기어 봅니다

그 언젠가 

떠오르던 뜨거운 태양처럼

불같이 서로를 태울 때가 있었지요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해가 익듯이

우리도 서로 조금씩 조금씩

물이 들었고

기우는 태양처럼 뜨거움을 뒤로 하고

조금씩 조금씩 미근해 졌고

그 뜨거움이 생각날 때면 찾아와 

그 언젠가 

떠오르던 때를 추억했지요

서로가 차갑게 지고 있음을 앎에도





이른 아침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을 나서는데 기다리기라도 한 듯 아람볼의 아침 해가 고개를 내밀어

밤사이 안녕하셨는가 하고 인사를 나누는 것만 같다.

굿모닝


어제와 별다를게 없는 한적한 아람볼의 아침 해변.


밤새 시끄러운 음악이 산 밑에 있는 조용한 나의 숙소까지 메아리치더니

모래 곳곳에 즐겼던 흔적들이 흥건하다.


숙소에서 보이던 해변 끝에는 뭐가 있을까. 매일같이 궁금했었는데. 별반 다를게 없는 해변이다. 

그게 전부였다.


우리네는 누구나 알 수 없는 그 끝을 갈망하다 결국엔 그것을 알고 난 후엔 기대에 못 미치거나 보지 말 걸이라는 실망감과 허무함에 후회하곤 한다.

과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 했고, 속아도 속은 줄 모르면 그걸로 된 거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또 한번. 아람볼이 가르침을 준다. 무겁지만은 않은 발걸음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뜨겁다


인도의 아침은 짜이와 담배 한대로 시작하는 게 정석이지. 참 감칠 나게 맛있다.


여기 아람볼 만 그러한지 모르겠으나. 하루 한시가 멀다 하고 정전이 되었다, 살아났다를 반복한다. 간지럽게.

한가로이 바다나 보다가 지루해질때즘. 숙소로 돌아와서 창을 열고 문도 열고 또 누워 한가로이 바다나 본다.

지루해질 때쯤 노트북으로 영화도 보고 게을리할 수 없는 운동도 하고 샤워도 하고 다시 눕는다.

신선놀음도 이렇게까진 않을 거다. 한량 짓의 끝판왕. 오늘은 뭐랄까 크게 뭐가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게 없다.

그냥 문 열고 시원하니 누워만 있고 싶다.


참. 어제 맡겨놓은 빨래 찾으러 가야 하는구나.


허수아비처럼 매일을 그자리에 있던 너


매일같이 이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던 늙은 소. 

무엇 때문에 매일을 그렇게 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은 건지

누군가를 기다리니? 오지도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는 거니

매일같이

이해는 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설명할 순 있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그렇게 너는 오늘도 그 자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겠지.



10번이 넘는 호객행위를 뚫고 10대 1의 경쟁률을 자랑하던 올리브 가든.

결과는 참 맛있었다. 괜찮게 음식을 하는 것 같다. 거부감이 별로 들지 않는다. 입에도 맞고. 큰일이다. 이렇게 잘 맞아서..

인터넷이 안되던 게 흠이었지만. 그 시간에 메모도 조금 하고. 내일 빠나지라는 곳에 정보도 책자로 찾아보고. 이런저런 잡다구리 하다가.

깜빡하고. 피 같은 담배와 라이터를 두고 와버렸네.. 맙소사. 이럴 순 없다.

아람볼에서.. 아람볼이.. 정신무장을 해제하고 있다. 훽 풀어놓는다. 안된다. 이제 시작인데. 긴장하자. 여기는 인도다.

아람볼과 작별을 할 때가 다가오나 보다..


빨래를 찾으러 간다. 주인아주머니. 잇몸이 다 드러나게 웃으시면서 반겨준다. 너무나 해맑다.

찾은 빨랫감에서 인도 특유의 향이 난다. 태국에선 태국의 향이, 라오스에선 라오스의 향이 났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인도향이 참 좋다.

빨래를 하고 볕에 보송보송 말렸을 때. 그 햇볕 냄새랄까. 보송보송 해진 빨래를 보니 내 기분도 드라이된 듯 보송보송하다.

빨래도 찾았으니. 다시 집으로 가야지. 아니다. 나온 김에 과일주스나 한잔 할까 해서. 조금 더 걸어본다.

늘 지나치던 길목에 오래되고 낡은 서점이 하나 있는데. 책 한 권 구입해서 읽을까 하다가. 제대로 된 번역도 못할 텐데라는.. 허무함에.. 아쉬움에. 좌절감에.. 한동안 서점 앞에 머뭇거리다. 다시 움직인다. 

외국인만 같으면 호객행위를 하는데 오늘도 곤니찌와 곰방와를 앵무새처럼 지저귄다. 아이고, 그래 내가 외국에 나와서 여행 중이니까 이런 소리도 듣지. 암 그렇고 말고. 전혀 기분 나쁠 건 아니다. 나는 지금 충분히 즐기고 있지 않은가. 


정심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저녁 생각이 별로 없어. 자의반 타의반 간헐적 단식에 돌입한다.

샤워를 끝냄과 동시에 엄청난 비트의 굉음이 방갈로 현관에 노크를 한다. 그에 질세라 옆집 처자도 굉음으로 창문에 노크를 한다.

고막 파괴자들. 시끄럽다. 귀를 틀어막고 누웠다. 그래도 시끄럽다. 급 허기가 진다. 눈도 무겁다. 

한참을 그렇게 귀를 틀어막고 누웠다가 

귀에서 손이 떨어졌고 

비로소 깊은 잠에 빠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여행이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해서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기에 오롯이 

아무것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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