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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May 23. 2016

인도를 노래하다.

#7 아주 오래라는 시간

오래됨이라는 시간 (빠나지)


당신의 주름엔

오래된 습관들과 기억들이 

스며 있겠지요


소박하며 절제할 줄 알며

그 소박함 안에서 지혜롭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당신처럼 아름답게 

멋있게 늙어 가고 싶습니다





밤사이 해변과 옆집 처자의 엄청난 소음 전쟁에 고막이 파괴된 듯했지만 결과적으로 꿀잠을 잤다.

아주 약간의 두통은 애교로 문제없다. 아침 모닝 짜이를 하면서 오늘 빠나지라는 옛 고아 지방의 중심부에 한번 가보려 정보를 얻는데

썰물과 함께 당신의 밤도 모두 쓸려 나갔다


인도. 고아. 아람볼. 정전을 시도 때도 없이 한다. 인터넷도 늦을 뿐 아니라, 된다고 한들 인내심 테스트를 받게 될 테니 정전을 다행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주인아주머니께 빠나지 가는 길을 물어보니. 정오에 다이렉트 버스가 있다고, 혹시나 그 버스가 안 오면 맙사로 가서 다시 빠나지로 환승을 하면 된다고 하시니 

가볍게 물한병과 카메라 정도만 챙겨서 길을 나선다.


소박함에 사람 냄새가 난다


아람볼의 읍내 정도라고 할까? 4.5km 정도 걸으면 버스 타는 구역이 나온다. 중간중간 택시 택시 외치며 호객행위를 하지만 다 아는 길 조금 더 걷는다고 달라질 건 없다. 

AM 11:45. 버스정류장으로 보이는 곳에 나지막이 한참을 앉아 있다.

인도인들의 운전습관은 참 개떡 같다. 오토바이로는 베트남을 따라 올 곳이 없을 거라 생각했건만, 인도. 상상을 초월하는 미친 운전질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노이로제로 금세 병 걸릴 것 같다.

심신이 미약하거나 노약자, 임산부는 인도 오는걸 다시 한번 더 생각해봐야 될 것 같다.


정오를 넘어 도착한 버스에는 현지인으로 만원이다. 깡마르고 인상이 날카로운 차장 총각. 50루피를 달란다. 그렇게나 비쌋나? 가격을 확실히 말하지 않고 횡설수설하는 게 의심스럽고 거스럼 돈을 줄듯한 제스처에 더 의심스럽다. 

현지 로컬버스를 탈 때면 늘 기사 아저씨 옆에 있는 보조석에 앉게 되었는데 외국인 전용칸인가 싶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눈이 운전석 계기판으로 간다. 잠시 멍하니 앉아서 보는데 

주행거리가 올라가지 않는다. 999999.. 후덜덜덜. 

기어봉은 넣다가 뽑힐 것 같고, 핸들은 돌리다 뽑힐 것 같고, 페달은 누르면 나오질 않을 것만 같다. 

이럴 땐 이어폰을 꽂고 볼륨을 높이고 눈을 감는 게 진리다.


올드고아


아람볼에서 맙사. 맙사에서 빠나지. 토탈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듯하다. 

그렇게 도착한 빠나지. 뭐라 설명할 수 없다. 

그냥 또 더럽고 복잡하고 시끄럽고 그런데 묘하게 싫지가 않다. 

뭔가 정돈된듯한 느낌. 하지만 인도는 인도다. 돌아오는 길을 알아놓고 구시가지 쪽으로 향해 조금씩 걸어본다. 우체국. 경찰서. 누군지 모를 동상. 동네 자체가 많이 늙어있다. 나쁜 의미는 아니고 

오래된듯한 건물들이 크게 훼손돼있지 않고 오랜 시간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빠나지를 이루고 있는 하나하나의 오래된 피부 같다고 할까.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시간여행을 한다. 이어폰을 꽂고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나는 미래에서 온 게 틀림없어 보인다.

사실 빠나지는 포르투갈의 오랜 식민지배를 받아 많은 포르투갈 양식들이 있는데 크게 침략받고 그런 게 아니라 오래되어 부식된 것이 아닌 이상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므로 작은 포르투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그 당시 강압적인 개종으로. 빠나지 인구의 반이 가톨릭 신자.

그래 서겠지? 성당이 많다. 빠나지에 특별할게 없다던 유적지는 다 성당이다. 모퉁이를 도는 순간 순백색의 커다란 큰 성당이 나온다.


오래됨이 아니라 성숙함으로 


여기가 성모 마리아 성당인가 보다. 높은 지대라 성모 마리아가 빠니지를 아울러 보겠다. 엄마처럼.


아람볼보다 큰 동네라 ATM기가 많을 거란 생각을 했고. 가뭄이든 지갑에 메마른 단비를 내려야 했다.

생각의 틀을 깨는 순간인가. ATM기는 찾기도 힘들었고 찾은 몇몇의 ATM기들은 여행자인 나를 불가촉천민처럼 거부를 했다.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악몽이 마구 마구 떠 오른다.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저기 멀리 순백의 성모 마리아가 파아란 물길을 내어 주듯이 흰 바탕에 깔끔하게 파란색 땡땡 은행. 느낌이 좋다. 출금을 누르고 멈춘 듯 정지된다. 돈 세는 소리가 난다. 아주 약간의 시간이 멈춘듯한 침묵이 흘렀지만 결과적으로 어메이징이다.


몹시 긴장했었는데 시원하게 볼일을 본 기분. 밥을 먹지 않아도 충분히 배가 부르다는 기분을 알 듯도 했다.


그 순간도 잠시. 이기적인 몸뚱이는 긴장이 풀리고 나니 허기짐이 밀려왔고 그와 동시에 눈에 들어온 로컬 탈리 식당.


이 느낌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참 좋다


피쉬탈리. 빠나지에서 유명한 음식이라고 주인장이 추천해준 음식. 주문과 동시에 음식이 나왔는데 튀긴 생선 몇몇 카레 밑반. 커드가 나왔다.

내가 태어나고 사는 곳은 바다다. 생선이 흔하디 흔해서 그런가 별로 선호도가 높지는 않았는데 빠나지 피쉬탈리 나쁘지만은 않다. 로컬 치고 깔끔한듯했고 맛도 나쁘지 않았고 로컬의 가장 큰 매력 착한 가격까지.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늙은 건물들을 몽땅 부셔버릴 태세로 과격한 비가 내렸다. 인도에서 처음 맞는 비라 감이 없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오래 내릴 듯 하진 않을 것 같았다.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아저씨가 괜찮냐는 표정을 짓는다. 별거 아니라는 액션을 보냈다. 사실 별일이다.

 

커다란 나무 밑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가방에 커버를 씌우고 무작정 걷는다.


무작정 걸으면 안 되겠구나. 철수한다. 빠나지 시내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버스터미널에서 맙사로. 맙사에서 아람볼로.

앞전 버스랑 같은 기사 아저씨와 차장이다. 기사 아저씨도 나를 기억하는지 살짝 웃어주신다. 차장 총각 50루피라고, 50루피가 맞는구나 했다. 의심해서 미안하다. 물증도 없는데 심정만으로 겉만 보고 판단했다. 미안.


해가 지고서야 도착한 아람볼. 아람볼에 도착하자 멈춘 비. 고맙다. 덕분에 숙소까지는 비 안 맞겠네.. 고마워. 집 같네. 아람볼. 읍내에서 숙소까지 2.30분은 족히 걸어야 한다. 택시 타면 금세 갈 테지만 아는 길을 굳이 낭비다. 그 돈으로 시원한 맥주를 한병 먹지. 말없이 걷고 걸어 도착한 숙소 밑 작은 레스토랑. 킹피셔를 외친다. 

내 몸의 모든 세포들이 알코올에 반응하는 듯. 금세 취기가 올라. 한병 더 마시면  내일까지 안녕할까 어서 자리에서 일어서 집으로 향했다. 샤워가 제일 먼저였다. 

수압이 약하다. 불은 들어오질 않는다. 그래 정전이구나. 뭐 이상하지도 않은 상황이다. 비가 왔으니..


익숙해진다. 그리고. 당연해진다.


비를 많이 맞아 습하고 덥고 무겁고 짜증 나던 것들이. 맥주 한 병과 샤워 한 번으로 행복함을 느끼니. 

행복이라는 건 크고 작음의 차이가 아니라, 늘 내 주위에 있고도 너무나 가까이 있다는 것. 

소소한 것에도 얼마나 감사함을 느끼느냐 그거지.


준 것도 없는데 너무나 많이 받는다.

받기만 하면 나쁜 습관이 베일 지도 모르는데

자꾸 주기만 하는 인도

미워도 자꾸만 생각이 나는 인도

날 어디로 인도할 것이냐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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