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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Sep 16. 2016

인도를 노래하다

#20 착각

착각 (코친)


당신은 언제나 별처럼

늘 같은 자리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익숙했던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밝은 곳에선 당신이 없다라고


허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엉망진창일 때에도


당신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별처럼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밤사이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의 생신을 축하하는 꿈을 꿨다.

나의 작은 그릇으로는 담을 수 없는

이 미친 인도라는 나라에서

한국이 가족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도 그리웠나 보다.


언제나 그렇듯

아침은 시끄러운 경적소리가 모닝콜이 되어

행복한 꿈을 깨트리곤 한다.

 

미명이 채 트기도 전

열린 창틈으로 비릿하고 지린 냄새가 코 끝으로 들어온다.

어제의 분이 아직도 풀리지가 않았는지 (오렌지 사기로 인도인과 주먹다툼이 있었,,,)

기분이 썩 좋지 못한 새벽 아침


초인종이 울린다.

기습이라도 당 듯 놀라 시계를 바라보니


AM 5 : 56


....


아주 아주 아주 친절하게도 체크아웃을 알려주시는 호스트.

(이곳 킨 야쿠 마리는 체크인/아웃이 24시간제이다.)


인색하다 정말.

꼭두새벽에..


내쫒기듯이 짐을 싸야 한다.

아직 정신도 채 돌아오기 전인데 말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배낭과 와이어 체인은 아직도 서로를 꽁꽁 얼싸안고 있다.

분명 사랑하고 있다.



에효..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야

너는 할 수 있을 거다

그럼 나는 할 수 있지


....


허나

아무리 생각을 해도

생각의 꼬리를 꼬리를 물어도


답이 안 난다.

 


아주 잠시라는 시간이 흘렀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들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조용하고 길게 들어마셨다


걱정말아요 그대


테라스에서 바라본 인도의 땅끝

바다 수평선 끝에 붉게 태양이 떠 올라온다.


문득 언젠가 본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에서 무슨 일이던 참고 참던 김복남의 대사가 떠 올랐다.

미친 듯이 밭일을 하던 김복남이가 허리를 펴고 눈부신 하늘을 태양을 바라보다 말한다.

태양을 한참 쳐다보니 태양이 말을 하데 참으면 병난다고..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참 내가 너무 소극적으로 여행을 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모두가 위험하다고 하던 그 인도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을 너무 주고, 마음은 너무 움츠리고 있었던 건 아닌지..


감정 소비가 큰 여행을 하고 있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짜증 나면 짜증 난다.

그게 나인데.


나스러운 여행.

나다운 여행..


서로가 좋아 절대로 떨어지기 싫어하는

가방과 와이어 열쇠.


한참을 바라보다

가위를 들었다.


그리곤

가방 끈들을 잘라냈다.


그게 최선이다.

그러고 나니 뭔지 모를 홀가분함이 조금의 마음의 무게를 가볍게 해주었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

릭샤. 식당 호객. 거지들이 끊임없이 달라붙는다.

강력하게 싫음과 접근하지 말라는 강한 어필을 했다.


감정적으로 힘들게 찾아온 기차역

뭄바이행은 사정상 오늘 기차가 없다.

첸나이는 폭우로 이틀째 운행이 정지된 상태라 했고,

케랄라주. 코친행 하나만 있는 상황이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한참을 앉아 있었다.


길은 하나뿐인데 왜 이렇게 고민을 하는지


그렇게 하나뿐인 길을 두고서 고민을 하다

코친행 기차를 탔다.


지극히 불편함을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8시간의 장거리

창밖에 선선한 바람도 불고 조용히 나다운 여행이 무언가, 왜 이렇게 예민한가,

조금이라도 나를 돌아보려 눈을 감아본다.


그것도 잠시

채 몇 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무언가 꾸물 거렸다.


살짝 뜬 실눈 사이로 몇몇의 엉덩이들이 보인다.

분명 내 자리인데..

한 명이 비집고 들어오니 몇몇의 엉덩이들이 더 들어온다.

창문 넘어 기차 화장실의 지린내와 등이 흥건히 젖은 상태그들은 나에게 다가왔다.

주위의 공기가 데워짐이 느껴진다.

호흡이 가파온다. 덥다.

점점 혼미해진다.


땀에 취해 잠에 취해 나를 취했다.


불편하기 그지 없는 시간들

그럼에도 시간은 조금씩 조금씩 흘러갔다.



어두컴컴해서야 도착한 코친.


주적주적 비가 내린다.

주머니엔 담배도 없다.

불행중 불행을 더해 역 부근 모든 숙소가 전부 풀이다.


한숨이 태풍이 된다.


비 맞으며 무작정 걸었다.

직진본능을 앞세워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런 여행을 하는에 대해..

밀입국자처럼 숨 막히게 열차 타러 온 건지 릭샤와 숙소, 거지와 과일상들에게 사기당하러 온 건지 없는 숙소를 보물찾기 하듯이 내 몸무게의 반 이상인 큰 배낭들을 메고 수행을 하러 온 건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그 흔한 택시 한번 타질 않는지.


내 여행은 그냥 구질구질 그자체인것만 같다.


여행이라 분명 좋아 보이지만

지금은 전부 개똥 같은게 훨씬 우월한 인도


비 맞으며 한참을 걷다 생각에 또 생각을 한다.


의미를 찾으려

의미에 의미를 더해도 결국 의미를 찾지 못했고

눈에 보이는 모든 숙소를 들러 숙소도 잡았다. 잡았다라기 보다 지푸라라도 잡는 심정으로 잡혔다.


늦은 시간.

쏟아지는 비.

담배 없는 담배각.

비싼 숙소.


가격이 가격이다 보니

화장실도 깨끗했고, 처음으로 따뜻한 물에 샤워도 할 수 있으니

좋다라고 생각하니 좋다.


모든 건 생각의 차이다.


그래. 고민은 오늘까지만 해야겠다.

어차피 이렇든 저렇든 지금 돌아갈 생각은 없고 더 나아질 것도 없으니

지금에 만족하고 성질을 죽이는 수밖에.


너무 많은 생각과

하지 않아도 될 감정소비에 두통이 심하다.

타이레놀을 처방할 때다.



잠들기 전에 걸 수도 없는 전화기를 꺼내 보니


메세지엔 어제 아버지 생신이었다고.. 몸조심히 여행하고 식사 거르지 말라는 안부의 말씀..


오늘의 모든건 헤프닝만 못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당신의 포용에 너무 작은 나를 발견한다.


당장 연락할 수도 없고..

지금은 그저 조용히 생각하고 기도할 뿐.



아버지

지금처럼만 건강하시길

그리고

부끄러워서 많이 망설였던 말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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