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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Nov 22. 2016

여행을 닮고, 시를 담다

기도


기도 (난)



가리어진 어둠 속에서

알 수 없는 스산함이 스미어 들다

잠에서 깨어나

적막함 속에서 공포가 꽉 참을 느낄 때

숨 막히는 불안함이 빈틈으로 비집고 들어와

작은 몸이 움츠려질 때

나지막한 가는 숨을 내어쉬다

나의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간절할 때

오롯이 혼자임에 두 손을 모아 기도하길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틸 수 있길

도움의 손길 없다 해서 헛되다 말하지 않길


이것은 지나는 꿈이길 바라고

이것이 현실이라면 아무 일 아니듯 깨어나길




창문틈으로 아침이 들어왔다

밤사이 또 비가 내렸는지

창문 틈에

이불 같은 구름 사이로

새하얀 속살을 드러내듯

아침이 바람이 참시원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특별히 여겨지던

곳에서의 아침을 맞이하는 자세가 충실하다



기지개를 활짝펴고

모닝 담배도 태울 겸 올라온 옥상 테라스엔

난의 민낯이 깨끗하게 드러냈다.


어제 사 왔던 사과 한 알

먹음직하고 이쁘지만 맛은 별로인 이 사과가 뭐라고

사과맛도 아닌 게 향기만으로 고향을 자극한다


코끝에서 가슴으로, 집으로 향하는 사이


뒤에서 부스럭 부스럭 기척이 나 뒤를 돌아보니


한쪽 팔이 없는 할배가 앉아서 치킨을 먹고 있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언제 나타난 건지

심장 떨어지게, 놀란 가슴으로 놀라지 않은 척 인사를 했다


언제부터 먹었던 치킨인지

뼈가 가득히 쌓여있다.


순식간에 식사를 마친 건지

담배를 물고 커피를 마신다

이른 아침부터 치킨. 담배. 커피라

오묘한 조합이라 생각하는데


할배왈. 아침은 담배와 커피가 최고란다.

개인적으로 백 프로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테라스에 기대어 담배를 내뿜는 사이


담배연기처럼 소리 없이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잠시 일시정지 상태가 되었다


늙은 할배가 행동이 얼마나 빠른지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그런 상황


뭐 어떻든

오래되고 넓은 숙소에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또 한편으로 나쁘지만 않다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된 나는

먹다 만 사과 한 알과 독한 담배를 하나를 마저 태우고선


어쩜 그렇게도 강력하게 이곳까지 이끌려왔는지

며칠째 숙제를 풀듯 풀어가고 있다

공식도 없고 정답도 없지만

여전히 하릴없이 걷고 또 걸을 테다


아침 바람도 시원하고 부디 오늘도 무사히 즐길 수 있기를

 

take it easy myself.


사람보다 사원이 많을듯하다


숙소를 나와 천천히 거닐다


마주 하는 건 언제나 파란 하늘과 조용하리 우뚝 선 사원들뿐

흔한 현지인 조차 없는 한적한 거리들


외모지상주의의 우리나라엔 있을 수 없는 뚱뚱한 불상, 요상한 수염에 반해 기분 좋을 듯한 웃음

뭔지 모를 비주얼에 웃음이 나지만

불상에 불심에 대하는 태국인들의 태도는 언제나 진지하고 경건하게 신앙심을 표한다

그러다 나도 언젠가부터 당신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급할 것 없이 구름처럼 흘러지나도

보이는 건 온통 사원들뿐


언젠가 어머님과의 통화 중에

아들아 교회는 다니니?

어머니 태국에선 절에만 다닙니다.

웃으며 통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난 모태신앙이다..


 

난 어떻니?

난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벽화난


저 그림이 뭘까

태국 전역에 많이 분포되어있어 눈에 익다

 

몇백 년 전에 태국의 유명한 화가가 사 원 안에 벽화로 그렸다고 한다.


비단 의미가 있을지언데 알려줄 사람이 없으니.


나의 얄팍한 생각으론 사랑을 속 사귀는구나

정도로만 생각을 했다.

허나 나중에 알아냈을 땐 그림 속의 남녀는 그림밖에 앞사람에 대해 귓속말(뒷담화)하는 그림이란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생각의 지도였다.



아는 만큼 보고

아는 만큼 말하고

아는 만큼 생각한다던데


난 너를 보고 너 참 문신 많구나

어디서 놀았니라고.. 여자한테 집적대고..

겨우 이따위의 내 발상겨



리틀 치앙라이

치앙라이의 백색사원이 난에도 있었다

스케일이 너무나도 작지만스

어쩜 이리도 조각들이 섬세하며 부드러우면서 강해 보일까 외유내강, 유능제강

이런 말이 제일 어울리겠다

흰색 조형물에 파란 하늘. 구름.

전설이 아니라 현실 같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너




난은 오늘도 쉬어가라하네

오늘도 부지런히 걸었다

난에서의 모든 것은 매일이 똑같은 산책뿐

그러하므로 난 난에서 모든 것을 다했다 라고 할 수 있지


언젠가 외국인 친구들이 너희 한국 친구들은 여행 와서 왜 그렇게 바쁘니?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아주 조금은 문화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 외국 친구들의 말에 의하자면

나는 어쩌면 진짜 여행을 하고 있진 않을까

이곳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는

하릴없이 바람 부는 해먹에 누워

호사스러운 마음의 사치를 누리는 것


강한 이끌림으로 난이 나에게 준 메세지는


인생에 대해서 나는 이제 걸음마 수준의 코흘리개 아이지만

너무 많은 생각에, 너무 많은 고민에, 너무 많은 경쟁에

얼마나 많은 짐을 짊어지고 살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조금은 내려놓고 쉬어가라 라고 말하는 게 분명했을 거다



혼란속에 나만 멈추어 있고, 모든것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누워있는 동안 총 3번의 비행기가

내 머리 위로 지나갔다.

난 움직이지 않았지만

모든 건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부지런히들 움직이고 있었다부



구름도

비행기도

새도

생각도

추억도

향수도향






하루가 물 흐르듯이 아주 조용하고 고요하게 끝을 향해 흘렀다



주인아주머니 잘 자라며 인사를 했고

나도 담배나 한대 태우고 자야겠다며 나

옥상으로 올라가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다

별빛 같은 미소가 반짝임을 느꼈다



스르릉 철컥.

정말 다시는 열리지 않을 정도로 굳게 문이 닫히곤

다신 열리지 않을 것만 같은 자물쇠가 철컥 잠기는 소리가

고요함 속 블랙홀로 빨려 들었다


아침에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듯이 시끄럽던 선풍기를 틀고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했을까 라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철컥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스산함에 뒤척이다


언제부터 뒷가에 맴돌았을지 모를 곡소리가 흘렀다

여기저기 조금씩 커지는 소리에 큰사람이 돌아가셨구나라고

잠이 깬 것도 깨지 않은 것도 아닌 잠결에 생각했다.

너무나 서럽고 격한 게

이 정도의 곡소리면 최소한 연로한 태국 국왕이 죽은 건 아닐까 하고


게슴츠레 뜬 눈으로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5분


아무 생각 없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창으로 향해 커튼을 걷치자

곡소리가 일시정지 버튼이라도 눌린 듯 딱 멈췄다

(아무 생각이 없었으므로 이 순간까지 두려움도 없었다)


그 많던 별들은 어디로 갔는지 어스름한 어둠뿐


불빛 하나 없는 창밖

그리고

나 혼자


찰나 같은 순간이었지만 이건 좀 이상하다 생각이 들다

발바닥 밑, 방안 가득 스산함이 가득 깔려있음을 느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구레나룻이 삐쭉삐쭉

뒷골이 서늘한 것이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두려움이 나를 꽉 부여잡고

뒤돌아 보기도 힘에 겨워 떨고 있을


그때쯤이었다


오래된 낡은 골마루를 누군가가 거닐고 있다

아주 아주 천천히


멀지 않은 먼 곳에서

끼익. 끼익. 끼익. 끼익.

문고리를 돌린다.

얼마간 후

조금은 가까워진 듯한 곳에서

다시 끼익. 끼익. 끼익. 끼익. 문고리를 돌린다.


혼란을 넘어선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확실한 건 며칠째 나 혼자였다는 사실이 생각에 멈춰있다


점점 복잡해지고 혼란에 혼란을 더하며 숨은 가파와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다


꼭꼭 숨겨두었던 공황의 장애가 발생하고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1초가 1시간처럼 느껴지고

동공이 수축하고 온몸의 세포들은 오직 한 곳에만 집중됐다


올 것이 왔다


끼익. 끼익. 끼익. 끼익.

철컥. 철컥.


입을 틀어막고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무언가 말이라도 하려는 듯 천정의 선풍기는 탱크보다 큰 소리를 낸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보다 못했다


반응이 없자. 뭔지 모를 그 정체는 잠시 서 있는 듯하더니

다시 옆방으로 걸어간다.


끼익. 끼익. 철컥. 철컥.


얼마나 그랬을까 백 년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시계는 겨우 20분도 채 지나지도 않았다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원망을 하다 잘못을 빌고 다시 원망을 하다 또 빌고


그렇게.. 1초를 1광년처럼.. 보냈다.

잠들다. 말다. 잠들었다. 말다. 그렇게.. 그렇게..



철컥 스르릉 소리에 놀라 무겁던 눈이 번쩍 뜨졌다


창밖으로

문을 여는 주인은

신이 보내신 천사 같았고

아침의 여명은 천사 머리 위로 아우라처럼 느껴졌으니



얄밉고 무심한 선풍기는 여전히 탱크 소리를 내며 돌고 있다


니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뭐니?



다행히 좀비는 하나뿐이라


내가 어떤 상태인가를 셀카를 찍었다. 내

사실 그때도 겁이 났다..


또 다른 무엇이 있을까 봐..


다행히..

좀비 하나뿐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찌뿌듯하기 그지없다

나의 기분을 대변이라도 하듯

완전히 다른 난의 얼굴


무겁다

비가 오려나 보다




씻지도 않은 상태로

부랴부랴 짐을 싸고 옷을 챙겨 입었다


여기에 서 있는것부터가 공포


지난밤의 사건 발생지역으로

저 문이 닫히면 어떠한 빛도 통과할 수가 없다

오래됨을 자랑이라도 하듯 한걸음 걸음마다 낡음이 새어 나왔다


장례식장을 불허하는 포스


지금이 순간에도 바닥 틈 사이로 스산함이 피어나는 듯하다


퇴실을 하며

덕분에 너무 잘 잤다며 고마웠다고 인사를 했다(전혀 진심이 아니었지만)


참 어제 할아버지 한분 치킨을 맛있게 드시던데

그분도 이곳에 머무냐고 물어보니


no, just only you라는 말만 돌아왔다...


또다시 굳어지는 표정과 소름은 어떻게 털어내야 하는지..



다음 행선지는 정하지도 못하고 다급히 나왔는데

불과 2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스콜이 지나쳤고

되돌아 가지도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한 채

알 길이 없는 처마 밑에 서있다

언제 지나갈지도 모르는 비를 바라보며

어두워진 내 마음과 무거워진 하늘만 원망할 뿐



덩그러니

급하게도

가장 가까운 곳으로 이동했다


여느 작은 시골마을과

전혀 다를 게 없는 딱 그만큼의

작은 버스터미널


덩그러니 외롭게





어제의 악몽을 재연하고 싶지 않아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최소한의 거리로

외관이 쌈빡해 보이는 호텔로 들어갔다

게스트하우스만큼의 착한 가격

가격만으로 룸의 컨디션도 보질 않고 덜컥 고개를 끄덕였다


실수였다!!


알면서도 언제나 한번은 있겠지라는 미련하게도 미련한 생각을 했다

세상에 싸고 좋은 건 없다는 진리..


화장실 천장도 없고

문도 안 잠기고

선풍기는 도는지 마는지

티비 채널은 하나뿐인데 리모컨은 왜 필요한지


하나의 좋은 점은 너무 조용하다는 것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어제의 악몽

쪼오금 겁난다..


숨을 조금만 돌렸다가 아무런 생각없이 걸을테다

인터스텔라의 옥수수밭이 생각난다


모르는 길에선 언제나 본능에 충실한다

직진.


현지 처녀들로 보이는 애들이 오토바이 타다 되돌아와 말을 건다.

뭐야 내가 괜찮은 것이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영어를 할 줄 아냐 물어보다 아주 조금은 할 줄 안다고 했더니

그대들은 태국말만 한다..

....

결국엔 만국 공통어 바디랭귀지로 대화를 나누다

많은 말과 행동을 했지만 힘겹게 알아낸 말은 겨우 한마디


"길이 없다고"


로타리 조차 불심가득


길을 새로이 잡아

반대 방향으로 본능에 충실한다

다시 직진


한참 후에 시내로 추정되는 곳이 나타났다.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이들이 학생이다

저곳을 봐도 그 반대 방향을 봐도

나는 더욱 더 이방인이 되어간다


지도상 이곳은 교통의 요지로 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 전혀 없다

최근 어딜가건 외국인이 없었지만, 나처럼 올 사람은 올 텐데

몇 시간을 걸어도 구경거리가 전혀 없다

학교와 학생뿐


유치원부터 고등학생들까지 모두가 교복을 착용했고

오토바이도 탄다

문신도 한다

담배도 피운다

요지경이다


새벽부터 시달려서 그런지 오늘 컨디션이 너무 좋지 못하다.

땀도 많이 흘렸을 뿐만 아니라. 비도 왔다가 안 왔다가 피할 틈도 없었다

난에서의 점심도 나약했고 프래의 저녁 조차도 허접했다

 

안 되는 날은 안 되는 거다..안


검은점 뒤에서 공간을 초월해 퉁퉁퉁 튀어 나올것만 같다


무거워진 몸을 끌고 호텔로 돌아오니

인셉션에 사람도 하나 없고

또다시 늙은 계단을 무겁게 거닐어 올라오니


장례식장으로 인도한 것만 같다

영안실 같은 분위기로 맞아준다

상조 호텔인가


저기 끝에 검은 점에서 누군가가 퉁퉁퉁 튀어나올 것만 같다

여고괴담에 나올만한 충분한 스테이지


어제 숙소랑 오버랩이 된다


터미널 앞에 큰 호텔이지만

조용해도 너무 조용해 적막함이 흐른다


안녕 "난" "프래" 야.. "난 호러 코스프래야."

이런 곳에 오래 있게 된다면 난 정신병 가득한 아재가 될게 분명하다


그래. 더운데 이렇게라도 간담을 시원하게 해줘서 눈물겹게 고맙다.


여전히 밤새 시끄럽게 선풍기는 돌아가겠지.


컨디션 회복하자.

기분 좋게 떨지 말고.. 자자기


오늘 통째로 정말 고생했다..

안 좋은 건 떨치고 일어나는 걸로..

겁내지 마.




세상사 마음먹기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

본래의 모습을 찾길바래

무엇을 얻든 무엇을 내려놓든

흐르는 구름처럼 강물처럼

가벼워지길

그리고

부드러워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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