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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 May 08. 2020

[영화] 귀를 기울이면



도서관 DVD 목록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도무지 들어올 생각을 안 했다. 연체 기간이 3주를 넘어가고 있었다.  반납되지 않는 DVD를 기다리다 지쳐서 다른 지브리 영화를 찾아보다 '귀를 기울이면'을 만났다. 그리고 이제는 넷플릭스에 지브리의 많은 영화들이 들어왔다. 그렇게 기다리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도. 결과적으로 나는 '귀를 기울이면'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이 영화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모두 등장했다. 도서관, 도서카드,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고 싶은 소녀, 다정하고 따뜻하게 조언을 해주는 어른, 투닥거리다 서로를 알아가게 되는 이성 친구, 한여름의 쨍한 풍경, 컨트리 로드, 새벽의 풍경 등 채 나열하지 못한 것도 많다. 

이 애니메이션 속에 나오는 거리의 풍경이라던가, 일본 집의 모습, 사람들이 건널목을 건너고, 고양이가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산책하는 모습은 꽤나 사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이다. 그런 풍경이 나올 때마다 컨트리 로드가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내 방에서 그들이 사는 동네로 여행이라도 간 듯 기분이 좋아진다. 




시즈쿠와 세이지는 중학교 3학년이다. 중학교 3학년이 이렇게 자기 미래에 대해 생각이 확고하단 말이야? 싶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때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오히려 커갈수록 확신이 점점 떨어지고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리게 됐지, 그땐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보였다. 그것 말고 내가 해야 될 일은 없다고 굳게 믿었고 그 믿음으로 버텼다. 

시즈쿠는 글을 쓰고 싶어 하고 세이지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나자 그 기간 동안 소설을 써보기로 마음먹는다. 이 영화가 좋은 점은 그저 단순하게 시즈쿠가 쓴 소설이 좋았다던가, 천재적이었다던가, 그래서 문학 신동으로 불렸다던가 하는 전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시즈쿠는 소설을 쓰면 쓸수록 자신이 많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첫 번째 독자에게 그 소설을 보여주면서 불안감에 떨었다.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여준다는 불안감과 긴장감을 시즈쿠를 통해 여실히 보여줬고 그 감정이야말로 사실적인 감정이라고 느껴졌다. 어릴 때는 글을 쓰는 일이 재밌었다. 그 글은 나를 위해 쓴 글이었다. 내가 쓰면서 신나고, 슬펐고, 기뻤다. 커가면서 학교에, 백일장에 내는 글을 쓸 때가 많았다. 점점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글을 썼다. 그렇게 기호에 맞춰 글을 써서 상을 받으면 모든 게 우스워보였고, 상을 받지 못하면 시무룩해졌다. 

나중에는 정말 내가 좋아서, 신나서 썼던 글이 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일기를 쓸 때도 다른 사람이 볼 것처럼 솔직해지지 못했다. 자물쇠로 꽁꽁 잠가놓으면서도 그 일기장에 위선과 거짓말이 가득했다. 그러니 글 쓰는 게 재미없어졌다. 지금 나는 글을 쓰는 일이 다시 재밌어졌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여전히 글을 쓰면서 누군가를 의식하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 움츠러들었다가도 결국 하고 싶은 얘길 한다. 현실에서는 할 말을 다 하고 살 순 없지만 글 속에서만은. 그래서 내놓을 때마다 두렵다. 두렵지만 재밌다. 

 




나는 자꾸 시즈쿠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영화를 보다 시즈쿠가 엉엉 울어버리는 대목에서 함께 엉엉 울고 세이지가 돌아와 새벽에 해 뜨는 광경을 함께 바라볼 때면 같이 한 뼘쯤 성장한 기분을  느꼈다. 이제는 시즈쿠나 세이지 나이의 두배를 뛰어넘었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보고 이렇게 가슴이 뛰는 건 아직도 그때의 나로 남아있다는 걸까? 아니면 덜 성장했다는 걸까? 어느 쪽이어도 상관없다. 

그냥 '귀를 기울이면'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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