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한 아이가 있다. 고작 18살이다. 우리가 몰랐던, 살아남은 아이다. 이 아이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에 스쿠터를 타고 배달을 하는 아이, 스쿠터를 타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보는 아이. 이 영화는 그 아이를 들여다본다.
이제는 안다. 세상에는 완벽한 선인도 악인도 없다는 것을. 하지만 살다 보면 사람은 그런 사람이 있다고 믿고 싶어 진다. 그렇게 정확히 자로 잰 듯 나눌 기준이 뚜렷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악인을 마음껏 욕할 수 있으니. 원 없이 미워하고 탓할 수 있으니 속이 시원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것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인간의 마음의 깊이와 갈래는 도무지 헤아릴 수 없어서 우리는 완전히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사랑하기도 힘들다.
성철과 미숙은 다 큰 아들을 익사사고로 잃었다. 은찬은 기현이라는 친구를 구하려다 죽었고 아버지 성철은 아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엄마 미숙은 아직 은찬을 잃은 상실감 속에 있고 이것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부부여도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들의 죽음을 애도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구한 기현이라는 친구를 찾아가 그를 돕기 시작한다. 기현은 부모가 모두 떠나서 혼자 살아가고 있는 아이였다. 기현은 처음에는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지만 점점 자신에게 호의를 보여주는 성철에게 마음을 연다. 그리고 성철을 따라 도배를 배우고, 도배기능사 시험을 준비한다. 그런 성철을 미숙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다. 기현이 물에 빠지지 않았다면 은찬이는 죽지 않았을 텐데. 기현을 보는 것만으로도 미숙은 괴롭다. 그런 미숙의 마음을 안다는 듯이 자신을 피해 다니는 기현이 못내 눈에 밟히고 미숙은 차츰차츰 기현을 받아들인다. 세 사람은 여느 가족들처럼 소풍을 가고 잠시 웃고 보통의 시간들을 보낸다. 기현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난다. 하지만 그들과 친밀해질수록 기현의 얼굴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서린다. 결국 기현은 미숙에게 결코 하지 않으려 했던 말을 꺼낸다.
(아래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기현의 고백은 자신은 은찬이가 구해 준 친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현과 다른 친구들은 은찬을 타깃으로 정하고 물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괴롭혔다. 나오려고 하면 파이프로 밀고, 돌을 던졌다. 어느 순간 은찬이 움직이지 않았지만 이들은 나오려고 쇼하는 것이라고 은찬을 구해주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은찬은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동안 자신의 아들이 구해 준 아이라고 믿고 선의를 베풀었던 미숙에게 기현이 사실은 자신이 은찬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고백은 모든 것을 흔들어 놓는다.
기현에게 먼저 다가간 성철의 분노와 혼란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기현을 비롯해 사건에 연루된 모든 학생들을 고소하지만 기현을 제외한 다른 학생과 부모는 기현의 말이 거짓이라며 사실을 고하지 않는다. 고소 자체도 성철과 미숙이 기현과 친하게 지냈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고 만다. 자신들의 행동 때문에 처벌도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부모는 다시 한번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성철은 마음을 정한 듯 기현에게 소풍을 제안한다. 기현은 자신을 용서했다고 생각하고 기쁘게 그들을 따라나선다. 이사 가셔도 가끔 연락드려도 되는지, 생신을 챙겨드리고 싶었는데 한 번도 챙겨드리지 못했다는 말을 하면서.
성철은 기현을 데리고 자신의 아들이 죽은 강이 내려다보이는 산 길로 데려간다. 성철은 기현의 목을 조른다. 처음에는 저항하던 기현이 가만히 성철의 처단을 받아들인다. 놀란 성철이 오히려 손의 힘을 풀려하자 기현은 성철의 손을 잡고 자신의 목을 더 힘껏 조르게 한다. 성철은 놀라서 몸을 떼어버린다. 기현은 강으로 달려간다. 은찬이 죽었던 그 강이다. 기현은 자신의 옷 속에 돌을 집어넣는다. 절대 떠오르지 못하도록. 기현은 천천히 강 속으로 들어간다. 머리까지 잠겨버린 기현을 발견하고 미숙이 강으로 뛰어든다. 미숙과 기현이 강속에서 발버둥 치는 것을 보고 성철이 강으로 뛰어들어와 두 사람을 뭍으로 끌어낸다.
기현을 연기한 성유빈 배우의 얼굴을 보면 이 배우에게 마음을 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도 이 배우가 번지듯 웃는 순간 마음 한편이 찌르르 아파온다. 기현에게 이런 무해한 웃음의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어른에게 대가 없이 호의를 받는 일, 보살핌을 받고 보호를 받는 일이 다 큰 것 같지만 아직은 혼자인 것이 불안한 18살의 이 소년의 마음을 자꾸만 흔든다. 그래서 도배기능사를 따야 다른 곳으로도 일하러 갈 수 있다는 성철의 말에 불안한 듯 묻는다.
자격증 따면 저 내보내실 거예요?
기현은 알고 있다. 자신이 여기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들의 호의를 이렇게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처음에는 그들이 먼저 다가왔으니 죄책감 없이 호의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미숙까지 자신에게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자 기현은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그리고 기꺼이 성철의 처단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기현은 죄가 있다.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한 아이의 목숨을 잃게 했다. 은찬과 가장 친한 친구였던 준영마저 자신의 죄를 덮기에 급급했고, 이 무리 중에 누구라도 사실을 발설하면 린치를 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기현은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그랬다고 그의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여기에서 가장 큰 죄를 지은 사람은 누구란 말일까? 부모는 기현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으로 복수를 단행하려고 하지만 미숙의 마음은 이내 흔들리고 만다. 기현의 죽음이 결코 은찬의 죽음에 대한 후련한 복수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미숙은 자신도 모르게 기현에게 마음을 많이 쓰고 있었고, 설명할 수 없지만 그가 가해자임을 알았어도 자꾸만 기현이 눈에 밟힌다.
누구나 죄를 짓는다. 작은 죄부터 씻을 수 없는 큰 죄까지. 하지만 살면서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반성하는 사람을 우리는 잘 보지 못했다. 끝끝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를 욕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이 봐 왔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어서 빨리 애도를 끝낼 것을 종용한다. 분위기 흐리지 않게.
부모의 울타리 속에 있는 아이가 아닌 부모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기현만이 홀로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는 사실도 마음을 많이 흔들었다. 울타리가 없는 아이, 세상에 너무 빨리 노출돼버린 아이, 그러니 자신이 이렇게 살아온 탓이라고 변명하기 쉬운 아이가 누구도 탓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누구에게 마음을 기대야 할지, 어떤 결론을 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 결론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최무성 배우, 김여진 배우의 연기력이야 익히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많이 봐왔으니 놀랄 것 없지만 성유빈 배우의 연기는 놀라웠다. 그저 대충 이런 감정이겠지 어림잡아하는 연기가 아닌 기현의 마음을 오래 곱씹어 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과 걸음걸이, 뒷모습 같은 것들이 마음을 완전히 흔들어버렸다. 앞으로도 이 배우의 다음 영화를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