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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 Apr 22. 2020

[영화] 벌새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은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학원을 그만둬서 미안해.
방학 끝나면 연락할게. 
그때 만나면 모두 다 이야기해줄게.


1994년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나는 그때 세상이 나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내성적이고 말이 없던 나는 깊숙하게 자리 잡은 공포와 불안을 안고 중학생이 되었다. 그때 내가 배정받은 중학교는 시사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었는데 비행청소년의 실태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그 학교에 배정받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는 아이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우중충한 회색천으로 만든 교복을 입고 나는 또 다른 세계로 입장했다. 학교는 여름이나 겨울 할 것 없이 늘 한기가 돌았다. 가슴속에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기에 차가운 교실에서 참 많은 사람들이 싸웠다. 누군가 욕을 내뱉고 포효하면 의자가 날아오거나 대걸레가 부러졌다. 여자아이들은 뺨을 때리고 머리끄덩이를 잡았다. 무섭게도 아이들은 검투사를 보듯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싸움을 구경했다. 그때 나는 오줌을 지릴 만큼 공포에 떨고 있었다. 나는 큰 소리가 나는 모든 상황에 자동으로 신체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은희가 아파트 문 앞에서 벨을 누르며 엄마를 찾는 것이다. 은희는 무슨 일인지 절박하게 엄마를 찾는다. 그래도 굳게 닫힌 철문 뒤에서 은희의 엄마는 나타나지 않고 은희는 한참을 씨름한 후에야 자신이 집을 잘못 찾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의 중반쯤 은희가 엄마를 목놓아 부르는 장면이 한번 더 나온다. 계단 위에 올라서서 무엇인가 응시하고 있는 엄마는 은희가 아무리 불러도 절대 은희를 돌아보지 않는다. 엄마가 아닌가?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의심이 될 정도로 엄마는 은희의 외침을 외면한다. 그럴수록 은희는 절박하게 엄마를 찾는다. 엄마뿐만이 아니다. 남자 친구도, 자신을 좋아했던 후배도, 절친한 친구도 은희 곁을 떠난다. 그들은 사랑이 고픈 은희의 마음을 별안간 헤집으며 들어와 볼 일은 끝났다는 듯이 등을 돌려버린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부여잡고 왜 그래? 왜 이제 날 좋아하지 않아?라고 의문을 품어봐도 그들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더 이해 못할 답일 뿐이다. 


처음 영지 선생님은 그저 새로 온 한문 선생님일 뿐이었다. 하지만 영지 선생님은 강압적인 담임과 폭력적인 아버지나 오빠, 무관심한 엄마나 언니와도 다른 새로운 어른이었다. 영지 선생님은 은희에게 존댓말을 썼고 은희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은희의 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봐 주었다. 그런 것을 물어봐 주는 어른에게 우리는 어떻게 빠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속수무책으로 마음을 내어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나는 결국 은희의 삶에서 영지 선생님마저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엄마는 늘 '누가 조금만 잘해주고 지 좋다고 하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려고 한다'라고 나를 나무랐다. 나는 노골적으로 사랑을 구걸하는 눈빛을 하고 다녔던 것 같다. 의미 없이 불러주는 이름 한 토막, 안부 인사 하나도 나는 허겁지겁 주워서 버리지 못했다. 내 존재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을 때 누군가 불러주는 내 이름 덕분에 나는 내가 투명인간이 아님을 깨달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가 중학생인 나를 만난다면 나는 과연 그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우울하고 음울해 보이는 낯빛을 가진 아이가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속을 알 수 없게 앉아있다면 과연 나는 그 아이를 한번 따뜻하게 안아주고 이 모든 게 지나가기도 한다고, 또 어려워지기도 하지만 그때쯤엔 네가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나는 과연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했을까? 


영지 선생님의 마지막 편지에서 나는 과연 엉엉 목놓아 울어 버렸다. 그 터져 나온 울음은 복합적인 것이었는데 그중에 하나는 그 시간을 견디고 잘 자란 나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도 있었다. 은희도 아마 더 이상 불안하게 눈치 보며 눈동자를 굴리지 않고 단단한 시선으로 주변을 볼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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