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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 Jun 09. 2020

프랑스여자 - 행복했던 과거라는 것이 있긴 했을까?

우선 이 작은 동네 영화관에서도 '프랑스여자'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랍고 감격스럽다. 이것도 코로나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엄청난 규모의 상업 영화들이 상영관을 몇 개씩 차지하느라 이 영화가 들어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일어날 수도 없는 아침과 새벽 시간이 아니라 하루에도 몇 회씩 이 영화를 상영해 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관객은 나 혼자였지만 말이다. 몇 번째 이 큰 영화관에서 나 홀로 영화를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평일이라고 감안해도 전세라도 낸 듯 혼자 영화를 보는 기분은 묘하다. 영화의 집중도는 말할 것도 없이 좋지만 약간 무섭기도 하다. 영화 속에 빠져 있다 보면 등 뒤라던가 옆을 자꾸 돌아보게 된다. 


스치듯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긴 했지만 줄거리나 사전 정보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이 갔다. 그런 영화들이 있다. 제목과 스틸컷 몇 장만으로도 이 영화 분명히 내가 좋아하겠구나. 싶은. 대개 그런 예상은 맞아떨어진다. '프랑스여자'도 그랬다. 



미라는 8년 만에 한국에 방문하고 영은, 성우와 재회한다. 그들은 20년 전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함께 공부를 하던 선후배 사이다. 영은은 배우를 꿈꾸며 파리 유학을 택했지만 배우가 되지는 못 했다. 영은은 영화감독이 되었고 성우는 연극을 연출하고 있다. 추억이 가득한 술집에서 재회해서 미라는 흐릿한 자신의 옛 기억을 맞춰보려고 노력한다. 


과연 과거의 왁자지껄한 기억은 행복하기만 했을까? 시간의 힘으로 덧칠한 탓에 모든 것이 실제보다 더 흐릿하고 그래서 더 아련하게 느끼는 것은 아닐까? 미라는 이어지듯 끊어지는 기억의 조각 탓에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 그 안에서 미라는 뻔한 질문을 하고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거냐는 원망하는 듯한 눈빛도 받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영은과 미라의 성격은 정반대처럼 보인다. 영은은 무엇이든지 함께 나누고 슬픔과 고통도 이야기하려고 하는 사람, 적극적으로 생의 의지를 드러내는 사람이다. 미라는 반대로 내 감정과 상처를 나누는 일에 회의적이다. 그런 것들이야말로 자신의 안으로 최대한 깊숙이 밀어 넣는다. 나중에는 기억이 희미해질 정도로 밀어 넣어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 미라가 자신을 치유하는 법이다. 이것은 미라와 영은의 갈등을 만들기도 한다. 


나는 영은도 미라도 이해할 수 있다. 두 사람의 모습으로 모두 살아봤기 때문이다. 어떤 시기에 나는 모든 사람들을 다 만나고 다녔다. 나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줬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뭐든 해주려고 했고 같이 울어주고 웃어줬다. 그 안에서 나는 묘한 희열도 느꼈다.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나에게 다른 사람에게는 털어놓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털어놓는다는 묘한 우월감도 있었다. 그래서 제법 친한 사이라고 생각하는데도 나에게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 이를 만나면 답답했다. 영은처럼 화를 내기도 했다. 

나는 너한테 이만큼 얘기했는데 왜 너는 속 얘기를 하지 않아? 왜 자꾸 선을 그어? 


그들을 답답해하면서도 영은처럼 나는 그 사람들을 쳐내지 못했다. 오히려 더 정성을 쏟았다. 이렇게 하면 결국 나에게 마음을 열겠지? 자신을 드러내겠지?


신기한 것은 어느 순간부터 나는 미라와 가까운 삶의 방식을 갖게 됐다. 누군가 나에게 예전에 내가 했던 말을 했다. 

언니는 결국에는 진심을 얘기하지 않는 사람 같아요. 얘기를 계속 하지만 결국 언니 얘긴 하지 않는다고나 할까? 우리를 진짜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나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놀랐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있다니. 그런 사람을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면서. 

미라가 했던 대사처럼 '사람들이 다 너처럼 모든 감정을 나누진 않아. 그런 걸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어.'라고 말하지는 못하고 대신 더 부자연스럽게 웃으며 '아니야. 숨기는 게 없으니까 그렇지. 친구라고 생각 안 하면 내가 왜 너희들 만나겠니!' 라며 부정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왜 영은 같은 사람에서 미라 같은 사람으로 변하게 됐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인생의 어떤 사건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것들은 과연 행복하고 좋은 기억들은 아니었다. 점점 감당하기 어려운 강도로 내 삶에 닥쳐오던 사건들은 어느 순간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영역으로 진입하고 결국에는 완전히 터져버렸다. 그런 일이 마음에 쌓이다 보면 감히 어디에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내가 느낌 감정을 이해시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진다. 입으로 어떤 일이 있었어.라고 꺼내고 보면 그 일이 너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다들 그렇게 살아. 누군 더 힘들게 살아.라는 말을 들을 것만 같다. 그래서 입을 다물어 버린다. 이해시킬 자신이 없어서. 


나도 영화를 보면서 미라의 어떤 태도에 대해서는 답답하기도 하고 화도 났다. 하지만 영화가 모두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후로 나는 미라에 대해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겠다 생각했다. 

나는 이 영화가 끝난 후 앞으로 미라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궁금했다. 과연 그녀는 어떤 선택들을 하고,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나아가서 나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노련하고 완숙하다. 영화의 몽환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김호정 배우는 관객들을 포기하지 않게 설득하며 데리고 간다. 그녀의 깡마른 몸과 눈빛이 그녀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수많은 말을 대신 전달해 준다. 김지영 배우와 김영민 배우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그 안에서 농담을 하고 화를 내는 장면들은 어쩌면 감정을 터트리는 씬보다 더 어려울 것 같다. 자칫하면 뻘쭘한 분위기가 되거나 관객으로 하여금 민망한 마음이 들게 하니까. 하지만 이들은 자주 등장하는 대화 장면들이 어색하지 않도록 관객들을 그 현장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줬다. 류아벨 배우의 얼굴은 여러 영화를 통해 만나와서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에서의 그녀의 모습은 처음 본 얼굴처럼 낯설기도 하고 신선했다. 


평일 오후 두 시, 초여름과 매우 잘 어울렸던 영화, 프랑스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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