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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 Oct 17. 2020

[영화] 팬텀 스레드 - 사랑은 구원이 될 수 있을까?


2018년에 개봉했고 현재 네이버 영화 검색 순위가 7600위인 영화 [팬텀 스레드]. (1969년 개봉작 사운드 오브 뮤직의 네이버 영화 검색 순위는 1692위다.)

이 영화가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 제목은 들어봤지만 볼 마음이 없는 사람들, 호기심이 생기는 영화긴 하지만 굳이 시간을 투자하기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모여 이 영화는 1969년 개봉작보다 검색 순위가 낮은 영화가 되었다. 단순 비교를 할 순 없는 문제지만. 

나 또한 그 낮은 검색 순위에 일조했다. 나는 이 영화를 알고 있었고, 이 영화에 대해 열광하는 영화 소개 글을 읽었고, 이 영화를 열렬히 소개하는 팟캐스트도 들었다. 그렇게 궁금한 마음에 예고편도 몇 차례 돌려봤지만 역시 상영관이 멀다는 핑계로 시간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영화는 당연히 내려갔고, 그런 영화가 한 둘이 아니다. 

그리고 팬텀 스레드는 내 기억에서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2020년 10월의 금요일 밤 나는 이 영화를 IPTV에서 결제했다. 2500원, 세금이 붙으면 2750원이었다. 왜 모두가 이 영화에 찬사를 늘어놓을 때는 보지 않다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영화를 거실에서 감상하게 됐을까?


그건 어떤 배우의 인터뷰 영상 때문이었다. 인생영화가 뭐죠?라는 질문에 배우는 고민하는 듯했다. 

"... 오늘마다 다른데, 오늘은 팬텀 스레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질문을 던진 기자는 반색하며 자신이 팬텀 스레드의 팬이라고 고백했다. 그러자 배우가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으신 적이 있으신가 봐요? 아니면 나르시시스트 애인을 만나신 적이 있던가."

농담처럼 주고받은 말속에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 의미를 알아듣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이 웃으니 나도 따라 웃긴 했지만 궁금해졌다. 팬텀 스레드는 어떤 영화일까? 그러니까 나는 깐깐한 영화 전문가들이 유례없이 별 5개의 평점 만점을 주고, 어려운 말들로 1시간 동안 이 영화를 찬양할 때는 보지 않다가 고작 어떤 호감이 가는 배우의 인생 영화라는 얘기에, 또 그들이 나눈 농담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생각에 이 영화를 결제했다. 

장장 130분이라는 영화 러닝타임 동안 나는 의자에서 몇 번 자세를 고친 것 말고는 한 번도 시선을 뗀 적이 없었다. 집에서 영화를 보다 보면 그러기가 쉽지 않다. 조금만 집중력이 떨어져도 냉장고를 열어보러 일어난다거나, 핸드폰을 집어 들기 일쑤다. 그런데 1950년대 런던 의상실에서 휘몰아치는 이야기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스포일러가 약간 있습니다.)


레이널즈 우드콕은 왕실에서 사랑한 디자이너다. 런던의 여성들은 그의 드레스를 죽어서라도 입고 싶어 했다. 그는 강박적이고 예민하고 완벽주의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의상실은 좁고 긴 계단으로 둘러 싸여 있고 그 안에는 누나 시릴과 레이널즈, 그 외에 드레스를 만드는 일을 돕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움직여도 전혀 부산하거나 시끄럽지 않다. 그곳은 그가 많든 규칙으로 돌아가는 곳이다. 그의 영감과 일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모든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그의 규칙대로 움직이고 시릴 (그의 누나)은 그곳을 관리, 감독, 통제한다. 

그는 뮤즈를 선택하고, 뮤즈가 싫증 나면 드레스 하나를 줘서 보내버리는 일은 시릴이 담당한다. 그런 그가 시골에 있는 작업실에 가기 전에 들른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 알마를 만난다. 어찌 보면 큰 키 때문에 휘청휘청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는 금빛 머리칼이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있고 얼굴은 창백하다. 레이널즈는 그녀를 보자마자 미소를 짓는다. 그녀 또한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렇게 알마는 그의 다음 뮤즈가 된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짓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어볼 수 있게 됐고 그의 집(의상실)에 살면서 그의 고객들 앞에 모델로 서기도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신데렐라 스토리와 다를 것이 없다. 

영화의 첫 부분에 등장했던 아침식사 장면 (그의 전 뮤즈가 아침식사 자리에서 그의 신경을 건드리고 시릴이 그녀를 정리하는 장면)은 알마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알마는 부산스럽게 빵에 버터를 바르고 레이널즈는 신경질을 낸다. 알마는 지지 않고 너무 유난스러운 것 같다고 대꾸한다. 레이널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시릴은 차가운 얼굴로 주의를 준다. 하지만 알마는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바꾸지 않는다. 

"그래도 너무 유난스러운 것 같아요."

그래서 관객들은 아, 이제 알마가 정리되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알마는 그렇게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다. 그녀는 그가 만든 드레스를 입고 추태를 부리를 사람에게 당신은 그 옷을 입을 자격이 없다며 직접 드레스를 벗겨 오고 그런 그녀를 보고 레이널즈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 순간 알마가 이야기한다. 

"사랑해요."

레이널즈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결혼하지 않는 사람이고, 홀로 강한 사람이니까. 그 이후로 알마는 그녀만의 방식대로 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그는 결국 폭발한다. 그는 알마에게 이 집에서 나가서 원래 당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친다. 알마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후 다음 장면은 그녀가 산에서 캔 독버섯을 칼로 다지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가 매일 마시는 차에 조금 섞는다.

그는 며칠 뒤 그가 애써서 만들어 놓은 공주의 웨딩드레스 위로 쓰러진다. 그리고 알마는 준비한 듯 간호를 시작한다. 시릴이 이제 그만 너도 나와.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아픈 레이널즈는 알마 만 의지한다. 그렇게 며칠을 앓고 레이널즈는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것, 자신에게 알마가 필요하다는 것을 각성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처음으로 말한다. 

"사랑해. 나와 결혼해 주겠어?"

알마는 대답하지 않고 망설이다 다시 그에게 묻는다. 

"저와 결혼해 주겠어요?"

그리고 그 둘은 그렇게 결혼한다. 그래서 이 둘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했다면 아마 평론가들이 별 다섯 개씩을 주진 않았을 것이다. 결혼까지 가는 과정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시간이 나왔는데 결혼 이후가 이들의 전쟁 같은 사랑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이후에 정말 압독적인 장면들이 나온다. 그 장면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 곳에서 차마 할 수 없다. )

 


레이널즈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자신은 강한 사람이고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마음은 늘 누군가에게 이 '위대한 디자이너'라는 자리를 뺏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자신이 도태되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소외되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레이널즈는 처음에는 알마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도통 말을 듣지 않았고 자기주장을 하고야 마는 사람이었다. 완벽주의적인 그가 그런 그녀를 그저 내치면 그만이지만 이제 알마는 그를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는지 안다. 그에게는 쉼이 필요하다. 스스로 일을 놓을 수 없으니, 누군가 강제로 그를 쉬게 해야 하고, 그래서 온전히 약한 상태가 되어 누군가에게 매달려야 한다. 그 누군가는 늘 알마 자신이 된다. 그 집에서 그를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시릴이었는데 그래서 시릴은 알마를 알아봤다. 그리고 고백한다. 

"나는 쟤 좋아."

아이러니하게도 레이널즈와 알마는 위험한 이 게임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생명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를 이 사랑은 그들을 구원하는 걸까?


팬텀 스레드는 사람의 마음을 무섭게 파고드는 영화다. 소위 '정상적'이라고 불리는 것과 '비정상적'이라고 불리는 것은 바늘 하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공주의 완벽한 웨딩드레스를 만들면서 그가 그 웨딩드레스 솔기에 숨긴 글는 '나는 저주받지 않았다'였다. 공주가 선택한 유일한 디자이너인 사람의 마음에는 고작 미신 같은 '저주'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공존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복잡한 사람의 마음 한 구석에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면서라도 자신을 기꺼이 쓰러뜨려줄 이가 나타나길, 또 그가 자신을 구원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왜 없을까?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다면 아마 쉽게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극장 의자에서 한참을 일어서지 못했을지도. 하지만 알 수 없는 마음의 노예가 되어 팬텀 스레드를 금요일 밤 집에서 만난 것도 좋았다. 결국 놓치지는 않았고, 눈으로 보고야 말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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