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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 Sep 19. 2020

화장실도 못 가는 재택근무 라이프

어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브런치에 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은 아닌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썼던 다짐의 글 [익숙해진 계약 종료와 구직 사이] 이후에 뭐가 또 있을까 싶었는데 벌써 4번째 글이다. 몸과 마음이 편한 곳이라면 할 말이 별로 없겠지만 다행히(?) 이 곳은 녹록지 않은 곳이었고 덕분에 글감이 꾸준히 이어진다. 



재택근무만 시작하면, 아니 재택근무만 시작할 수 있으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 테스트를 통과하기도 너무 힘들었으니까. 마지막 날까지 안심할 수 없었고 결과는 당일에나 알 수 있었다. 그 날 오후가 되어 리뷰 파일이 도착하고 혹시나 싶어서 사수 직원분께 질문했다. 

"저 재택근무 시작인가요?"

그분은 맞다고, 당장 오늘 저녁에 책상 정리하고 내일부터 재택근무를 하면 된다고 했다. 내일부터라니! 우선은 기뻤다. 기쁘면 지는 것 같아서 기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안심이 됐고 드디어 긴긴 출퇴근 시간이 없어진다는 생각에 기뻤다. 오후 근무를 하는데도 마음은 둥둥 떠다녔다. 저녁 6시가 조금 넘자 직원들이 내 자리로 몰려와 후다닥 나의 듀얼 모니터와 본체를 분해해서 박스에 담았다. 재택근무는 회사에서 보내주는 PC로 해야 했다.

나와 같이 재택근무에 들어가는 사람은 총 4명. 우리는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만에 재택근무에 들어가게 될 줄도 모르고 회사에 부려놨던 짐들을 가방에 우겨담고, 얼떨떨한 모습으로 사무실을 쫓기듯 빠져나왔다.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드디어 나도 재택근무 대열에 합류하는구나. 출퇴근이 없는 회사 생활은 얼마나 좋을까? 


그동안 숱한 회사생활을 해봤지만 재택근무는 처음이었다. 그저 막연하게 재택근무에 대해서 가졌던 환상은 아침 시간에 쫓기듯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눈도 못 뜬 채로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는 것, 퇴근은 방문만 열면 가능하고, 저녁 시간의 여유가 늘어난다는 것 들이었다. 미리 재택근무에 들어간 사람도 '진짜 좋다'라고 했으니. 


당장 다음 날부터 업무를 시작해야 했기에 밤에 부랴부랴 컴퓨터를 설치하고 접속이 가능한지 프로그램을 점검했다. 익숙한 우리 집에서 회사 프로그램에 접속해 일을 한다는 것이 뭔가 낯설어서 집인데도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재택근무를 시작하는 첫날. 나는 평소와 똑같이 일어났다. 그러니 출근 시간까지는 3시간이나 남았다. 나는 평소처럼 씻고 옷을 갈아 입고 아침도 먹었다. 그러고도 당연히 시간이 남아 화분마다 물을 주고 청소기도 한번 돌리고 쓰레기도 갖다 버렸다. 그리고 일찍부터 본체를 켜고 일할 준비를 시작했다. 

드디어 업무 시작. 

그런데 그동안 배웠던 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를 배워야 했다. 줄기는 같으나 사용해야 하는 툴이 다른 일이었는데 교육을 원격으로 받고 있으니 미래 세계에 떨어진 옛날 사람 마냥 허둥지둥 정신이 없어졌다.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는 일인데도 뭐가 뭔지 모르는 대혼란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렇게 첫날은 정신없이 끝났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이 시작됐다. 월요일에는 거의 대부분의 아르바이트생들이 재택을 시작했다. 그런데 공지 마크가 붙은 채로 글이 하나 떠올랐다. 


우리는 하루에 해야 하는 일의 건수가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 교육 중이었고 실업무에 투입되어 재택근무를 이제 막 시작했으니 그 건수를 채우는 것 까진 신경 쓰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재택근무를 거의 다 시작했으니 이번 주까지 매일매일 최소 건수를 채워야 하고, 그 건수를 채우지 못하면 다시 사무실로 출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순간 분노가 치솟았다. 아니 고작 내가 며칠 근무를 하겠다고 책상을 사고 무선 랜카드를 샀단 말인가? 컴퓨터를 설치한다고 집 구조를 바꿨단 말인가?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이런 미션을 해내라고 한다면, 이다음은 없다는 보장이 있을까? 무리해서 이걸 또 해내면 이다음은 더 많은 건수가 목표로 정해지고,  그 건수를 해내면 다음에는 더 높은 건수가 있는 것은 아닐까? 부글부글 마음이 끓어올랐다. 


다른 아르바이트생에게 만약에 다시 사무실로 오라고 하면 난 박스에 컴퓨터만 보낼 거라고, 이젠 못하겠다고. 항복이다! 항복!이라고 분노의 메신을 보냈다. 하지만 어쩐지 그 친구는 회사의 그런 방침에 순응하는 태도였고 공익광고처럼 '우리 열심히 해봐요!'라고 격려의 응원을 보냈다. 

응?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나만' 이렇게 화가 나는가?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나는 늘 그러하듯 욕을 욕을 하면서도 목표한 그 건수를 채우기 위해 달렸다. 재택근무를 하는데 화장실도 못 갈 줄은 몰랐다. 점심도 컴퓨터 앞에 앉아 마시듯 해치우고 일에 매달려야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해도 '아다리'가 맞지 않으면 턱 없이 건수가 부족했다. 불도 켜지 못하고 일을 하다 거실이 어둠에 푹 잠긴 후에야 기진맥진한 채로 일이 끝났다. 그렇게 일이 끝나고 나면 누가 내 등에서 코드를 뺀 것 마냥 일시 정지가 된 채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원래 재택근무가 이렇게 힘든 건가요?


물론 이렇게 힘들게 일을 하고 출퇴근까지 해야 했다면 더 울고 싶은 심정이었겠지. 하지만 내가 상상했던 재택근무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아니 애초에 내가 재택근무에 대해 뭘 알았단 말인가? 그저 그런 건 어디서 내가 본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들이겠지. 역시 현실은 전쟁이었다. 


과연 그 공지가 사실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우리를 또 달리게 만들 묘수이자 으름장에 불과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 채찍은 효과가 있었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거의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하고 일에 매진했다. 과연 이것이 으름장에 불과했다고 한다면 기어이 그 협박에 맞춰 미친 듯이 질주한 내가 씁쓸하다. 

아닌가? 밥값을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 줘야 되는가? 아니면 그저 오라면 가면 되지 뭐. 원래 재택근무가 있는 줄 알고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하는 느긋한 마음을 먹어야 하는가?

하지만 마음에 꼰대가 들어앉았는지 영 나는 모든 것이 아니꼽고 불편하다. 이렇게 온갖 성질을 있는 대로 다 내면서도 매일 저녁 정리된 엑셀 파일을 올리며 나는 보이지 않는 랜선에서마저 비굴하다. 


"오늘도 많이 못 했어요. ㅠㅠ 건수를 못 채워서 어쩌죠? 내일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과연 나는 이 재택근무를 유지할 수 있을까? 




★ 아르바이트 근무 일지 (1)

https://brunch.co.kr/@kingscross613/52


★ 아르바이트 근무 일지 (2)

https://brunch.co.kr/@kingscross613/55


★ 아르바이트 근무 일지 (3)

https://brunch.co.kr/@kingscross6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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