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업무가 끝나려면 40분은 남았는데 뒤쪽에서 뭔가 부산스럽다. 박스테이프로 붙이고 뜯는 소리, PC 옮기는 소리가 난다. 잠시 후 한 사람이 팀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직원들과 짧은 인사를 주고받은 후 사무실을 황급히 빠져나간다. 퇴사하는 게 아니다. 재택근무에 들어가는 것이다.
누군가 하는 말이 들렸다.
그 순간 그 파트에 함께 있는 사람들 뿐이 아니라 멀리 앉아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온 신경은 그곳을 향해 있었을 것이다. 아! 직원들 말고 함께 입사한 아르바이트생들.
열몇 명의 아르바이트생이 입사했다. 그중 테스트를 통과했으나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1명의 아르바이트생을 제외하고 첫 번째 재택근무를 할 아르바이트생이 나왔다. 심사(?)에 통과된 순간 바로 자리가 치워진다.
그 순간 나는 무서웠다. 정말 무섭구나.
재택근무를 하려면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재택근무에 들어갈 수 없다. 앞의 두 문장은 같은 말이다. 나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 명, 한 명 모두 재택근무에 들어가고 이 파트에 홀로 앉아 여전히 테스트를 받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사무실의 반 쪽은 모두 불이 꺼져 있고 사람들도 듬성듬성 앉아 있다. 사무실은 원래도 그렇지만 더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나는 아무리 모니터를 봐도 이제는 뭐가 틀렸는지, 맞았는지 알 수가 없다. 심장은 두근두근 빠르게 뛰고 울고만 싶어 진다. 나 홀로 그곳에 앉아 테스트 리뷰 파일이 도착하길 기다린다. 엑셀 파일을 열고 필터를 걸어 O만 있는지 X가 하나라도 있는지 확인한다.
X가 필터에 하나라도 걸리는 순간 테스트는 다시 시작이다. 나는 또 재택근무에 들어갈 수 없다.
홀로 그런 상상을 하고 있노라니 그만 다 포기하고 싶어 졌다.
재택근무라는 것이 물론 출퇴근에서 벗어난다는 자유로움이 있지만,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보상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택근무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사람들, 집이 회사에서 가까워 걸어올 수도 있는 사람에게까지도 어쩐지 이 재택근무에 들어가지 못하면 '낙! 오!'라는 두 글씨가 이마에 새겨지는 것 같은 불안감을 회사는 조성한다. 그러니 남은 아르바이트생들은 죽기 살기로 그 테스트에 통과해서 재택근무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이제는 누구도 설렁설렁, 나는 아르바이트생이니까 라는 마음으로 일할 수 없다.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일해도 실수가 나오고, 다음날 엑셀 파일에 X가 하나라도 있으면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7시. 모니터 오른쪽 구석에 경기가 끝나는 시간이 표시되면 링 위에서 한껏 두드려 맞은 아르바이트생들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하나 둘 모인다. 얼굴들은 하나같이 혼이 빠져있다.
운동회에서 과자 따먹기, 낮은 포복으로 그물 건너기, 박 터트리기를 하면 레이스가 끝나는데 시간 내에 과자를 따먹지 못하면 다시 출발선으로 가서 경기를 재시작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박 터트리기 직전까지 갔어도 시간 내에 박을 터트리지 못하면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가 과자 따먹기부터 해야 한다.
지금 첫 번째 재택근무자가 나왔고 이 사람과 남은 사람들의 시간 차는 일주일이나 혹은 그 이상이다. 이것도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가정 안에서다. 통과하지 못하면 10월에도, 11월에도 아니, 그 정도로 오래 기다려주진 않겠구나. 9월이 끝나도록 사무실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심리적 압박감이 너무 심해서 나는 몇 년 전 도로주행 시험을 앞두고 느꼈던 미친듯한 심장의 두근거림을 경험하고 있다. 어깨와 팔다리가 경직돼서 잠시 사무실에서 나와서 맨손 체조를 하고 온 몸을 주무르고 두들기고 다시 들어갔다. 왜 이렇게 떨리는 걸까?
나는 박 터트리기까지 갔다가 실패하고 다시 출발선에 서기를 2번 반복했다. 박 터트리기까지 가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제 다 와서 고꾸라지니 미칠 노릇이었다. 강박증 환자처럼 내가 한 파일을 열어보고 또 열어보고 검토에 검토를 거쳐도 그 순간 내 눈에 안 보이는 건 영영 보이지 않는다. 아! 리뷰를 받은 순간은 잘 보인다. 그전까지 귀신같이 보이지 않던 것이 X가 표시된 순간 확실히 보인다. 그리고 망연자실하게 된다. 어떻게 이게 안보였지?
그렇다고 회사가 인정머리가 없다고 욕할 수도 없다. 회사는 목표가 있어서 사람을 뽑았고 빠르게 훈련시켜 그 목표치에 도달하기 위해 세팅을 마쳐야 한다. 무한정 어르고 달랠 시간이 없다. 그러니 가장 확실한 방법을 쓰는 것이고 그것은 생각보다 잘 먹히고 있다.
"이제부터 틀리는 분들은 한 분씩 면담 진행하겠습니다."
라는 말이 떨어진 날 가장 틀린 사람이 적었다. 그런 말을 들어도 여전히 평균적인 숫자가 나왔다면 아! 이것 보세요! 목표 자체가 무리한 거잖아요!라고 항변했을 텐데 수치가 확연히 눈에 보이도록 줄어드니 이것은 그저 업무자의 부주의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어진다. 나 또한 그놈의 면담을 피하기 위해 그 날은 어떤 날보다 더 죽기 살기로 눈에 불을 켜고 매달렸으니.
심지어 어제는 눈 앞에서 같이 들어온 사람이 짐을 싸서 먼저 들어가는 '퍼포먼스'까지 보여줬다. 웃음기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꽤 오래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사고발 같은 기사였던 것 같은데 어느 텔레마케팅 사무실을 찍은 영상이었다. 사무실에 총 3명의 직원과 한 명의 팀장이 있었다. 팀장은 실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3명의 직원에게 욕을 하고 심지어 손찌검을 했다. 그리고 구호를 복창시켰다. 3명의 직원 중 누구도 대들거나 항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전화기를 붙잡고 일을 시작했다. 거의 필사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누군가의 신고로 결국 그들의 지옥 같은 레이스는 끝났다. 그 영상은 충격적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도대체 왜 맞으면서 일을 다니죠? 그만두면 되잖아요?"
"다 큰 성인이 왜 저걸 참고 있어요?"
나도 그때는 의아한 마음도 있었다. 그 팀장은 그저 밖에서 만난다면 보통의 체격의 흔하게 볼 수 있는 인상의 중년 여성일 뿐이었다. 왜 그동안 맞고 있었을까? 왜 협박 문자를 받고도 다음 날 일을 나갔을까?
이 곳에 다니면서 (물론 이 곳이 그 사무실만큼 가혹하다는 것은 아니다.) 아주 어렴풋하게 그들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안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들의 방식에 동화되고 세뇌된다. 이 레이스에 난 참여하지 않겠어!라는 생각을 품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은연중에 알 수 없는 공포심, 무력감, 좌절감 등이 학습되고 이 안에서 내가 잘해서 이걸 꼭 통과해야지!라는 생각만 앞선다. 이런 일반적인 회사에서 사람을 쓰는 방식 앞에서도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그 직원분들은 오죽했을까? 아마 내가 도망친다면 그 팀장이 어떻게든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 생각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래서 과연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할까? 어떤 마음으로 회사에 출근하고 내 자리에 앉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