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밀 Sep 05. 2020

재택근무 레이스! 다음은 누구?

금요일 업무가 끝나려면 40분은 남았는데 뒤쪽에서 뭔가 부산스럽다. 박스테이프로 붙이고 뜯는 소리, PC 옮기는 소리가 난다. 잠시 후 한 사람이 팀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직원들과 짧은 인사를 주고받은 후 사무실을 황급히 빠져나간다. 퇴사하는 게 아니다. 재택근무에 들어가는 것이다. 


"드디어 첫 번째 재택근무자가 나왔어요!"


누군가 하는 말이 들렸다. 

그 순간 그 파트에 함께 있는 사람들 뿐이 아니라 멀리 앉아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온 신경은 그곳을 향해 있었을 것이다. 아! 직원들 말고 함께 입사한 아르바이트생들. 

열몇 명의 아르바이트생이 입사했다. 그중 테스트를 통과했으나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1명의 아르바이트생을 제외하고 첫 번째 재택근무를 할 아르바이트생이 나왔다. 심사(?)에 통과된 순간 바로 자리가 치워진다. 


그 순간 나는 무서웠다. 정말 무섭구나. 



재택근무를 하려면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재택근무에 들어갈 수 없다. 앞의 두 문장은 같은 말이다. 나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 명, 한 명 모두 재택근무에 들어가고 이 파트에 홀로 앉아 여전히 테스트를 받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사무실의 반 쪽은 모두 불이 꺼져 있고 사람들도 듬성듬성 앉아 있다. 사무실은 원래도 그렇지만 더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나는 아무리 모니터를 봐도 이제는 뭐가 틀렸는지, 맞았는지 알 수가 없다. 심장은 두근두근 빠르게 뛰고 울고만 싶어 진다. 나 홀로 그곳에 앉아 테스트 리뷰 파일이 도착하길 기다린다. 엑셀 파일을 열고 필터를 걸어 O만 있는지 X가 하나라도 있는지 확인한다. 

X            

X가 필터에 하나라도 걸리는 순간 테스트는 다시 시작이다. 나는 또 재택근무에 들어갈 수 없다. 

홀로 그런 상상을 하고 있노라니 그만 다 포기하고 싶어 졌다. 


재택근무라는 것이 물론 출퇴근에서 벗어난다는 자유로움이 있지만,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보상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택근무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사람들, 집이 회사에서 가까워 걸어올 수도 있는 사람에게까지도 어쩐지 이 재택근무에 들어가지 못하면 '낙! 오!'라는 두 글씨가 이마에 새겨지는 것 같은 불안감을 회사는 조성한다. 그러니 남은 아르바이트생들은 죽기 살기로 그 테스트에 통과해서 재택근무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이제는 누구도 설렁설렁, 나는 아르바이트생이니까 라는 마음으로 일할 수 없다.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일해도 실수가 나오고, 다음날 엑셀 파일에 X가 하나라도 있으면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7시. 모니터 오른쪽 구석에 경기가 끝나는 시간이 표시되면 링 위에서 한껏 두드려 맞은 아르바이트생들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하나 둘 모인다. 얼굴들은 하나같이 혼이 빠져있다. 


운동회에서 과자 따먹기, 낮은 포복으로 그물 건너기, 박 터트리기를 하면 레이스가 끝나는데 시간 내에 과자를 따먹지 못하면 다시 출발선으로 가서 경기를 재시작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박 터트리기 직전까지 갔어도 시간 내에 박을 터트리지 못하면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가 과자 따먹기부터 해야 한다. 

지금 첫 번째 재택근무자가 나왔고 이 사람과 남은 사람들의 시간 차는 일주일이나 혹은 그 이상이다. 이것도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가정 안에서다. 통과하지 못하면 10월에도, 11월에도 아니, 그 정도로 오래 기다려주진 않겠구나. 9월이 끝나도록 사무실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심리적 압박감이 너무 심해서 나는 몇 년 전 도로주행 시험을 앞두고 느꼈던 미친듯한 심장의 두근거림을 경험하고 있다. 어깨와 팔다리가 경직돼서 잠시 사무실에서 나와서 맨손 체조를 하고 온 몸을 주무르고 두들기고 다시 들어갔다. 왜 이렇게 떨리는 걸까?


나는 박 터트리기까지 갔다가 실패하고 다시 출발선에 서기를 2번 반복했다. 박 터트리기까지 가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제 다 와서 고꾸라지니 미칠 노릇이었다. 강박증 환자처럼 내가 한 파일을 열어보고 또 열어보고 검토에 검토를 거쳐도 그 순간  내 눈에 안 보이는 건 영영 보이지 않는다. 아! 리뷰를 받은 순간은 잘 보인다. 그전까지 귀신같이 보이지 않던 것이 X가 표시된 순간 확실히 보인다. 그리고 망연자실하게 된다. 어떻게 이게 안보였지?




그렇다고 회사가 인정머리가 없다고 욕할 수도 없다. 회사는 목표가 있어서 사람을 뽑았고 빠르게 훈련시켜 그 목표치에 도달하기 위해 세팅을 마쳐야 한다. 무한정 어르고 달랠 시간이 없다. 그러니 가장 확실한 방법을 쓰는 것이고 그것은 생각보다 잘 먹히고 있다. 

"이제부터 틀리는 분들은 한 분씩 면담 진행하겠습니다."

라는 말이 떨어진 날 가장 틀린 사람이 적었다. 그런 말을 들어도 여전히 평균적인 숫자가 나왔다면 아! 이것 보세요! 목표 자체가 무리한 거잖아요!라고 항변했을 텐데 수치가 확연히 눈에 보이도록 줄어드니 이것은 그저 업무자의 부주의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어진다. 나 또한 그놈의 면담을 피하기 위해 그 날은 어떤 날보다 더 죽기 살기로 눈에 불을 켜고 매달렸으니. 

심지어 어제는 눈 앞에서 같이 들어온 사람이 짐을 싸서 먼저 들어가는 '퍼포먼스'까지 보여줬다. 웃음기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꽤 오래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사고발 같은 기사였던 것 같은데 어느 텔레마케팅 사무실을 찍은 영상이었다. 사무실에 총 3명의 직원과 한 명의 팀장이 있었다. 팀장은 실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3명의 직원에게 욕을 하고 심지어 손찌검을 했다. 그리고 구호를 복창시켰다. 3명의 직원 중 누구도 대들거나 항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전화기를 붙잡고 일을 시작했다. 거의 필사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누군가의 신고로 결국 그들의 지옥 같은 레이스는 끝났다. 그 영상은 충격적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도대체 왜 맞으면서 일을 다니죠? 그만두면 되잖아요?"

"다 큰 성인이 왜 저걸 참고 있어요?"

나도 그때는 의아한 마음도 있었다. 그 팀장은 그저 밖에서 만난다면 보통의 체격의 흔하게 볼 수 있는 인상의 중년 여성일 뿐이었다. 왜 그동안 맞고 있었을까? 왜 협박 문자를 받고도 다음 날 일을 나갔을까?


이 곳에 다니면서 (물론 이 곳이 그 사무실만큼 가혹하다는 것은 아니다.) 아주 어렴풋하게 그들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안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들의 방식에 동화되고 세뇌된다. 이 레이스에 난 참여하지 않겠어!라는 생각을 품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은연중에 알 수 없는 공포심, 무력감, 좌절감 등이 학습되고 이 안에서 내가 잘해서 이걸 꼭 통과해야지!라는 생각만 앞선다. 이런 일반적인 회사에서 사람을 쓰는 방식 앞에서도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그 직원분들은 오죽했을까? 아마 내가 도망친다면 그 팀장이 어떻게든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 생각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래서 과연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할까? 어떤 마음으로 회사에 출근하고 내 자리에 앉아야 할까?


다음주면 다시 치열해질 재택 근무 레이스, 그래서 다음은 누구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일 못한다는 소리는 듣기 싫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