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밀 Sep 09. 2021

12시 37분 아들입니다!

12시 37분 아들입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외치자 선포하듯 아이의 우렁찬 울음이 터졌다. 방금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라고 믿을 수없이 맑고 힘차다. 드라마를 귀로 듣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이것은 실제 상황이었다. 



생리 문제는 몇 년 동안 지속되어 오고 있었다. 그 사이에도 산부인과 검진을 받았지만 내 자궁 속에 자라고 있는 용종이나 근종은 아직 제거해야 할 단계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올해는 문제가 됐다. 담당 선생님은 용종을 제거해야 한다고 하셨고, 결과를 듣고 아주 잠시 망설였지만 가장 가까운 날짜로 수술을 예약했다. 의사 선생님은 수술 자체는 몇 분이면 끝나는 간단한 수술이고, 다만 마취를 해야 하니 그 마취가 깨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하셨다. 내가 받은 수술의 정확한 명칭은 '자궁내막용종제거술' 또는 '자궁내막용종소파술'이다.

많이 찾아보지 않았지만 수술 후기를 검색해보니 걱정스러운 쪽(용종을 떼어 조직 검사를 해보니 암이었다!)과 매우 긍정적인 쪽(수술 직후부터 아무렇지 않았다!)이 있었다. 내가 어느 쪽에 해당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 12시부터 금식을 했다. 아침 10시 30분 수술이기에 10시까지 병원에 갔다. 아침에 일어나 물 한 잔을 못 마신다는 사실이 이렇게 곤혹스럽다니. 

병원에 도착해서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4층으로 올라가라는 말에 올라갔다.



계단으로 올라가서 문을 열었는데 3층 외래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이곳은 분만실과 수술실이 있는 곳이었다. 벨을 누르니 간호사 선생님이 나와서 내 이름과 코로나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나를 안 쪽으로 들여보내줬다. 이렇게 본격적인 수술실에서 수술하는 거였어? 왜 나는 주사실 정도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시술이라고 생각했을까?

수술복으로 환복하고 침대에 누워있으라는 얘기에 얼떨떨해졌다. 수술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있으니 곧 링거를 꽂아주러 오셨다. 링거까지 꽂고 있으려니 뭔가 자꾸만 심각해진다. 커튼이 쳐져 있었고 나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도 여자들이 누워 있었다. 곧 나의 이름이 들렸고 나는 일어나 수술실로 걸어갔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서나 보던 진짜 수술실이었다. 저 위에 누워야 하다니. 4-5명의 간호사분들이 침대 위의 내 위치를 봐주고 손과 발을 침대에 묶었다. 혈압을 재는 기계를 팔에 두르고, 산소호흡기를 머리에 씌웠다. 아니 이렇게 진짜 수술이면 좀 더 심각하게 말씀해 주셨어야죠???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산부인과 수술의 특성상 세상에서 가장 민망하고 부끄러운 자세로 누워 나를 수술해 줄 의사선생님이 오시길 기다렸다. 외래에서 늘 바쁘던 선생님은 콜을 하고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훤히 드러난 다리가 약간 춥게 느껴질때 쯤 선생님이 급하게 들어왔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건 "약 들어갑니다."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 의사선생님이 했던 "이제 주무세요."라는 말이 끝이다.

그 이후에는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고 비틀비틀 휠체어에 탔다. 그리고 처음 내가 누웠던 침대로 옮겨왔다. 중간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이 완전히 들었을 땐 정오쯤 됐다. 몽롱한 정신에 누워있어도 다급한 분만실과 수술실의 소리들이 고스란히 들렸다. 침대 바퀴 굴러가는 소리, 간호사 선생님들이 뛰어가는 소리. 그리고 그 소리가 들렸다.

12시 37분 아들입니다!

진짜 내 옆에서 아이가 태어나다니. 제왕절개인지 자연분만인지 알 수 없으나 아이를 낳은 산모도 바로 내 옆 침대로 옮겨졌다. 산모는 몸을 바로잡아줄 때마다 많이 아픈 것 같았다.

"엄마, 우리 엄마 언제 볼 수 있어요?"

산모는 엄마를 찾고 있었다. 너무 생생한 소리들 때문에 기분이 점점 이상했다.

그때 반대쪽 커튼 옆에서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흐느껴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함부로 짐작하면 안 될 것 같은 울음소리와 아이를 낳고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여자 사이에 그저 작은 혹을 제거한 내가 있었다. 



자궁내막의 용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진행하기 전 간호사는 몇 가지 선택사항이 있음을 말해줬다.

"용종을 제거하고 자궁 내막을 코팅하는 시술이 있어요. 임신하시려는 분은 아무래도 코팅 작업을 해서 수술 후에 튼튼하게 해주시는 게 좋아요. 비용은 00만 원이고요."

"이건 영양제인데 아무래도 수술 후에 몸 회복하는데 좋으시라고 영양제를 놔드리고 있어요. 가격은 이렇에 되어 있고 이 중에서 선택하시면 돼요."

나는 자궁 코팅은 하지 않기로 했고, 영양제는 중간 가격대를 선택했다 다시 가장 싼 것으로 바꿨다. 꼭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모든 처치는 임신을 하기 위해 필요한 처치가 아닐까? 싶었다.

예전에는 당분간은 계획이 없다고 말했었다. 언젠가는 이제는 너무 늦었다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의 나는 그것이 계획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내 자궁에는 힘차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생명 대신 용종이나 근종 같은 혹만 살다 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슬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았다. 이건 내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서 슬퍼할 자격이 없다. 이것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대신 아이를 유산한 적 있었던 내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 친구들이 이 침대에 누워 태어나는 생명의 소리를 들었다면 마음이 어땠을까? 유산이 흔한 일이라고 당사자에게도 흔한 일일 수는 없는 법인데, 그때 마음 깊이 위로해 주지 못한 점이 미안해졌다. 수술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오늘 그래서 네 생각이 났노라고 그리고 많이 힘들었겠다고 말해줬다.

잠을 자는 동안 열이 나고 땀이 좀 났지만 금방 괜찮아졌다. 그렇게 지나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카카오톡 없이 4개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