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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 Mar 17. 2024

아직도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2012년에 국민임대 아파트에 입주해서 2024년이 됐다. 2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서류를 총 6번 썼고 어제부로 다시 2년이 연장됐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나는 2026년까지 아마 이 집에서 살게 될 것이다. 12년이란 꽤 긴 시간이지만 체감이 잘 되지 않는다. 

12년간 좀 더 지독하게 살았다면 임대 아파트를 벗어나서 자가를, 아니 전세라도 살고 있었을까? 


2년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이곳에 살 자격이 되는가 심사를 받는다.  그것이 매번 통과되어 왔다는 것은 형편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12년간 나와는 다른 통장 잔고를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소비하고, 생활하느냐에 따라 같은 월급을 받아도 상황은 달라질 수 있으니까. 


그래서 때로는 '아직도' 이곳에 사는 것이 나태하고, 부끄러운 일인가 스스로에게 반문해보기도 했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이곳을 '탈출'하는 것이 맞지 않나? 

그런데 탈출해야 하는 곳이라면 과연 그게 집이 맞을까? 지옥이나 감옥쯤이 아닐까? 


나는 이 집에서 많이 웃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는 일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다. 큰 행복을 바라기보다는 소소하게 자주 행복하고자 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보다는 지금 나의 상황과 마음에 집중했다. 

크게 무리하거나 욕심을 낸다면 이 집을 나가는 일이 어려울 것은 없다. 그저 퇴거하겠다는 통보를 하고 대출을 있는 대로 받아서 이사를 가면 되니까. 하지만 과연 그렇게 이사 간 넓은 집에서 지금처럼 많이 웃을 수 있을까? 불안하고, 빡빡해진 상황 때문에 서로를 비난하거나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 날들이 많지 않을까? 모르겠다. 그렇게 견뎌낸 후에 내 집이라는 것이 오롯이 내 손안에 들어오면 기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정한 쪽이다. 무리한 모험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 집에서 아직 더 살 수 있다는 허락이 떨어진다면 감사하게 2년을 더 살아보기로 했다. 


어떤 신념이나 꼿꼿한 가치관이 있어서 이 집에서 계속 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쩔 수 없음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다만 그 어쩔 수 없음을 비관하지는 않았다. 임대 아파트에 사는 것이 부끄럽고 실패한 것처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이렇게 긴 시간 살 수 있었고, 다시 또 2년을 살기로 결정할 수 있었다. 언젠가 이 집을 떠나는 날도 오긴 올 것이다. 이곳이 내 집은 아니니까. 그때 드디어 탈출이라는 시원한 마음보다는 고맙고 애틋한 마음으로 떠나고 싶다. 이 집이 나에게 안겨준 좋은 추억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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