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나는 내가 쉽지 않다. 내가 나를 데리고 사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무슨 일이든 몇 십 년 반복하면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반복하면 아무리 어려웠던 일도 쉬워지니까. 하지만 나를 데리고 사는 일은 몇십 년을 반복해도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내가 나를 견딜 수 없는 순간들이 잦아진다. 나도 이런데 타인은 어떨까 싶어서 최대한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줄인다. 일주일에 6개의 약속을 잡던 내가 이제는 1년에 한두 번 겨우 사람을 만난다. 극단적인 인간관계다.
그러니 명절즈음이 되면 죽을 맛이다. 이때는 좋으나 싫으나 사람을 만나야 한다. 몇 주 전부터 계속 신경이 쓰이고 잠도 잘 오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수십 개의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고, 그 시뮬레이션에는 늘 다르게 반응하는 내가 있다. 어느 때처럼 그저 수긍하기도 하지만, 벌컥 화를 내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참지 못하고 벌컥 화를 내게 될까 봐 두렵다.
감정 기복이 심한 것은 덤이다. 불안과 긴장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으니 뭘 해도 쉽게 집중할 수 없다. 우울과 발작적인 웃음 사이를 넘나드니 신경이 가닥가닥 끊어져버린 느낌마저 든다.
결국 이번 명절에는 양쪽 집을 가기 전에 신경안정제를 먹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내가 겪은 일들과 상처는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 가볍고, 어떤 이들에게는 무겁다. 내 반응은 그러니 이해받을 수도 있고, 이해받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이 일을 겪은 당사자면서 그런 나를 바라보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역할까지 동반하고 있다.
"언제까지 과거 타령을 할 거야? 마음먹기 나름인데 다 털고 일어서야지!"
"내가 뭘 잘못했어? 잊어버릴 수 없는 것도 내 탓이야?"
"네 성격을 누가 맞출 수 있어? 너 스스로도 힘들어하잖아. 주변 사람들이 못 맞추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나는 잘하려고 했어. 받아주지 못한 사람들 잘못이 더 큰 것 아냐?"
나를 중간에 세워두고 끊임없이 싸운다. 나를 바라보는 내가.
결국 친정에 가서는 조증이, 시댁에 가서는 울증이 왔다.
친정에 가서는 답지 않게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여기저기 앞서 다니면서 여기 서봐라, 저기 서봐라 적극적으로 굴었다. 내 사진은 단 한 장도 찍지 않았다. 엄마는 말했다.
"쟤는 사진 찍는 거 싫어해."
시댁에 가기 전날부터 잠이 오지 않아서 거의 날을 새고 약을 먹었더니 한없이 기분이 가라앉았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말이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겨우겨우 시댁에 들어서서 인사를 전하고 국을 뜨고, 음식을 날랐으나 앞에서 하시는 말씀의 반 이상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지?'
라는 생각만 반복해서 들었다. 몇 마디 맞장구를 치기도 했지만 적극적으로 주도해서 대화를 이끌어나가지는 못했다. 겨우겨우 시간을 버티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3시간이 넘게 내리 잤다. 일어나 보니 캄캄해져 있었다.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 나를 견뎌야 했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수록 일어나기가 싫었다. 아마 내색은 안 해도 다 기분 나빴겠지? 그럴 거면 오지 말아라 라는 말을 억지로 삼켰을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툭 터놓고 이야기를 해볼걸 그랬나? 이야기를 한다면 어디에서부터,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까? 내년에도 명절이 있을 텐데 살아있는 동안 이걸 계속 챙겨야 되는 거겠지? 어디 알래스카 같은 데서 살고 싶다. 나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서 혼자 살아야 되는데. 그래야 아무한테도 피해를 주지 않는데.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쯤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났다. 저녁 먹으라고.
하루 종일 내 눈치를 보느라 덩달아 고된 시간을 보냈을 친구의 얼굴을 조용히 쳐다봤다. 친구는 아마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해하려고 하는 대신 그냥 있어주는 걸 택한 것 같다. 나도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니 타인에게 나를 좀 이해해 달라고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이해를 강요할 마음은 없다. 다만 이 피해를 살면서 내내 끼쳐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그래서 얼른 털고 일어서고 싶다. 아니면 혼자가 되던가.
밥을 다 먹고 친구를 가만히 안아봤다. 오랜 시간 내 옆에 있었기에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이 포옹의 의미가 무엇인지 친구는 알고 있다. 다 괜찮다는 입에 발린 말도 안 하고, 너 때문에 나까지 피곤했다고 밀어내지도 않고,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참겠다는 말도 안 하고 친구는 그냥 마주 안아줬다. 비로소 내가 원하는 건 이것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가 원했던 것은 이것 하나. 가만히 나를 안아주는 손길 같은 것.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따뜻한 체온을 나누어주는 순간들. 이제야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갖게 됐는데 왜 완전히 나아질 수 없을까?
이번 연휴를 앞두고 나 스스로 계속해서 되뇐 문장이 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어.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어.'
그래. 믿어보자. 미래는 바꿀 수 있다고. 지금 내가 넘어진 그 자리에서 일어서기만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