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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욕의왕 Dec 07. 2015

비웃을 수도 있는 이야기

내 인생의 해답이 뭘까 궁금해요 그래서 타로 점도 보고 책도 읽지요

"너 저런 데 가 본 적 있어?" 학원이 끝나고, 홍대를 걸어오고 있었다. Y가 타로카드점 가게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보다마다, 내가 저기에 탕진한 가산이 얼만데…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응, 사실 나 저런 것 좋아해." 여기까지 말하고 덧붙였다. "조금. 재미로." Y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낄낄거렸다. 전 남자친구에게 사주팔자를 본 이야기를 했다가 면박을 당했다. "그런 이상한 것 좀 믿지 마." 걔는 아빠처럼 미간을 찌푸렸다. Y는 미간을 찌푸리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왜? 넌 저런 데 가본 적 있어?" 물었다. 이번에는 Y가 뜸을 들였다. "이건 좀 비웃을 수도 있는데…." Y는 그 말로 시작했다. Y는 <시크릿>이나, <연금술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심으로 바라면 온 우주가 그것을 도와준다.’는 몇 년 전에 유행했던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Y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나는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나도, 나도! 그래서 나는 지하철이나 택시 탈 때 <시크릿> 기술을 써!" 예전에 <시크릿>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진짜라고, 상상하고 바라면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쓴 사람은 학교 가는 버스가 바로 오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버스가 곧바로 왔다는 것이었다. 와, 놀라워! 그 뒤에 오던 본론을 까먹었기 때문에, 나는 <시크릿>의 기술을 오직 대중교통의 효율적 활용에만 할애하고 있었다. 집에서 나갈 때 버스나 지하철이 바로 도착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택시를 타면 눈을 꼭 감고 가는 길목마다 초록 불이 켜져 있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면 정말로 멍하니 전 남자친구 개새끼… 하는 때보다 버스는 빨리 오고, 지하철은 전 역을 출발하고, 택시는 빨간 불에 걸리지 않는다. 내 바람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 이야기를 하니까 Y가 또 낄낄 웃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좀 더 큰 그림으로 상상한다고 했다. Y는 편입을 해서 서강대에 들어갔다. Y는 일 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고 집에 오면 다들 자고 있었다. Y는 <시크릿> 법칙을 믿었다. 게다가 별이나 우주 말고는 이야기 할 사람도 없었다. Y는 베란다로 나가서 별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별들아, 우주야. 내가 최선을 다하지는 않았을지도 몰라. 그래도 난 열심히 했어. 합격을 바라는 것은 아니야. 그렇지만 내 노력에 대한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해줘.' 나는 Y 이야기를 듣고 비웃지 않았다. Y는 열심히 공부했고, 간절히 바랐다. 우주랑 별들은 과학자들에겐 먼지나 돌멩이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바로 그 우주랑 별들이 Y의 말을 들어주고 소원을 들어 준 것이다. 아니라고? 걔들에게 빌었는데 이루어졌잖아! 나는 조금 감동했다.

이건 어쩌면 다 개소리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벤트에 당첨되었다고 시작하는 보험 영업에도 까무룩 넘어가는 사람이니까. 이건 분명히 상품권 십만 원어치를 준다는 것보다 더 달콤한 이야기다. 밤이면 어김없이 하늘에 뜨는 별님이랑 달님한테 소원만 빌면 뭐든지 이루어진다는 말 아닌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분명히 전 남자친구는 ‘썩소’를 지으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테지. 걔가 썩소를 짓거나 말거나. 이제 나는 걔랑 끝난 사이니까 별님이든 해님이든 마음껏 빌어도 돼! 이렇게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세상에서 제일 불안한 나이인 스물여섯 살이니까, 우주나 별한테라도 의지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세상은 험하고, 혹독하다. 엄마나 아빠한테 의지하기엔 나이가 좀 많은 것 같았다. 냉소적인 남자친구보다, 하나도 안 냉소적이고 말하는 건 뭐든지 다 들어주는 우주가 더 낫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밤에, 베란다에 나가서 별을 보고 소원을 빌어보려고 했다. 베란다 문을 여니까 찬바람이 거실로 들어왔다. 거실에서 자던 엄마가 한 시인데 안자고 뭐하냐고 역정을 냈다. 대답은 안 하고 문을 닫았다. 베란다는 원래 강아지 화장실이라서 발을 조심조심 디뎠다. 창 밖을 보니까 앞에 있는 106동에 가려서 하늘이 잘 안보였다. 104동과 106동 사이의 틈으로 하늘이 아주 조금 보였다. ‘너무 환하게 빛나는 별은 인공위성이라던데…’ 너무 환하게 빛나는 별 말고 조금 환하게 빛나는 별은 보이지가 않았다. 인공위성인지도 모를, 너무 환하게 빛나는 별한테 손을 모으고 이야기를 했다. 속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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