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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욕의왕 Dec 11. 2015

나에게 물어보면

'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나에게 물어보면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의 일이다. 당시 팀장의 지시로 기획 방법론에 관한 책을 읽고 그 내용을 도식화해서 매주 한 챕터씩 프리젠테이션 한 적이 있다. 팀장이 정해준 그 책의 저자는 오랫동안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샐러리맨이었다. 전체를 통틀어 문학적인 구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건조하게 잘 읽히긴 했다. 책이 마치 간결하게 다듬어진 한편의 기획서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도식화하는 데도 크게 창의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었다.

당시 나는 의욕이 없었다. 회사를 계속 다닐지 말지 매일 밤마다 고민하다 퀭한 눈으로 출근하던 나날이 반복되던 때였다. 아마 기획 스터디는 낌새를 차린 팀장이 상사로서 내린 특단의 조치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스터디 이후로 내가 기안한 문서가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있는 일이 조금 줄었던 것 같기도 하고, 보고서를 쓰면서 막힐 때면 내가 도식화한 문서를 들춰보며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다. 아무튼, 꽤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업무 스킬이 조금 늘었다고 해서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난 두어 달 정도 후에 회사를 그만뒀다.

친한 형이 이사한다는 것을 핑계로 형 집에 모여 술을 마셨다. 두잔 째 마실 때 까지는 분명 페어웰 파티였는데 그 후로는 그냥 술자리가 되었다. 형 책장에는 탐나는 책이 좀 있었는데, ‘젊은 기획자에게 묻다’도 그중 하나였다. 술자리의 텐션이 조금 늘어질 때쯤 책의 아무 부분이나 펴서 좀 읽어봤는데 흥미로웠다. 언제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책을 빌려서 가져왔다.

계속 덮어두고 있다가 오늘 7호선 끝에서 2/3지점까지 올 일이 있어 전철 안에서 다 읽어버렸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샐러리맨이 쓴 기획 방법서와, 숫자와 줄표와 꺾은선 그래프로 점철된 장표에 둘러싸인 갑갑함이라고만 생각했던 작년의 내 무기력함이, ‘내가 도대체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에 대해 뚜렷한 답을 갖지 못해서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소개하는 젊은 기획자(물론 나보다는 연배가 좀 위인 사람들이지만 어쨌든 다들 내 나이 전부터 기민하게 움직여 남보다 좀 더 이른 시기에 그에 상응하는 성취를 거머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열등감을 자극하는 소재일 법한 데, 딱히 그런 기분이 들진 않았다. 아마 작년에 이런 책을 봤더라면 뭔가가 달라졌을까. 모르긴 해도 내가 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봤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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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어떤 일, 어떤 삶 시리즈


1. 젊은 기획자에게 묻다. '기획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 김영미 지음 / 남해의봄날 / 13,500원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barcode=9788996922292



2. 젊은 오너셰프에게 묻다. '사람들은 왜 당신의 작은 식당을 즐겨 찾는가?' - 심가영 지음 / 남해의봄날 / 13,500원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linkClass=&barcode=9791185823003&orderClick=J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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