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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욕의왕 Dec 18. 2015

처음이 어렵지

록시땅의 거대한 튜브를 쭉쭉 짜는 것은 너무 속보이니까요

'손이 참 예쁘시네요.'

말을 하고서야 아차 싶었어요.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니까요. 그러니까 아주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꼭 말을 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정말 잡고 싶었거든요. 이 남자 손 말이에요.

아까부터 신경이 쓰였어요. 만나서 커피를 마시고 걷고 밥을 먹고 다시 커피를 마시고 버스에 같이 오르는 그동안 내내 말이에요. 덜컹거리는 버스 뒷자리에 앉아서도 그 손은 뚜렷하게 잘 보였어요.

이 남자 손가락이 길어요. 그리고 깨끗해요. 큐티클이 없는 손톱에는 손톱 반달이 손톱의 딱 1/4만큼 있어요. 오른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기고 차창 밖의 사람들도 가리켜요. 왼손은 무릎 위에 놓여 있어요. 오른쪽, 왼쪽, 위 그리고 아래 그 손을 따라 자꾸자꾸 제 시선도 같이 움직여요. 그때마다 마음이 울렁울렁 이는 건 아마 덜컹거리는 버스 때문일 거예요.

핸드크림을 괜히 꺼냈어요. 남자 손을 잡기 위한 제일 좋은 방법은 핸드크림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언젠가 레이디제인 언니가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얘기했는데. 듬뿍 짜려다가 괜히 홍진호가 레이디제인 언니 허벅지 만진 얘기만 하고 내 손에만 쓱쓱 발랐어요. 아, 곽정은 언니는 뭐라고 했더라......

엄마는 항상 말했어요. 손이 예쁜 남자를 조심하라고. 두꺼운 아빠의 손을 보며 엄마가 혹시 손이 예쁜 남자에게 상처를 받은 적이 있는 것은 아닐까 가끔 생각하기도 했어요. 사실 큼지막하고 뭉툭한 아빠의 손이 참 믿음직스럽기는 하거든요.

생활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저렇게 예쁜 손으로 저 남자가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무슨 상관있겠어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러니까 또 잡고 싶어지고 또 마음이 울렁울렁. 아, 괜히 버스 뒷자리에 탔나 봐요.

핸드크림을 바른 손을 괜히 자꾸자꾸 문질러요. 남자애한테 손이 참 예쁘다고 말했으니까요. 다음 차례는 음 아마 서로 손 크기도 재어보고 해야 되는데 자꾸 버스가 덜컹덜컹. 이제는 내려서 좀 걸어야겠어요. 이 정도면 남자애가 알아서 하겠죠? 아주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일이니까. 음, 알잖아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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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땅의 거대한 튜브를 쭉쭉 짜는 것은 너무 속보이니까요.

가격 -
BYREDO BLANCHE/ BAL D'AFRIQUE/ LA TULIPE 30ml 45,000원.
GLYSOMED HANDCREAM 50ml / 150ml – 7,900원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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