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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욕의왕 Dec 17. 2015

감기가 문제야

권태로운 표정 그리고 유난히 반짝이는 입술

가슴이 두근거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밤새 뒤척여서 피곤이 얼굴에 먼지처럼 내려앉았다. 열이 확 올랐다가 가라앉은 뒤에는 어김없이 코 밑에 뾰루지가 올라왔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다. 가슴이 자꾸 두근거린다.

건조한 버스 안에서 연신 입술에 침을 발랐다. 아까부터 신경 쓰였다. 옆에 앉은 여자애가 나를 신경 쓰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만나서 커피를 마시고 걷고 밥을 먹고 다시 커피를 마시고 버스에 같이 오르는 그동안 내내. 권태로운 여자의 얼굴이 세상에서 제일 매력적이라고 친구들에게 그렇게 얘기하고 다녔었다. 우스갯소리도 꽤 잘하다가 갑자기 무표정한 얼굴로 립밤을 바르는 그녀의 옆모습을 보며 쓸데없이 감탄하는 내가 자꾸 신경이 쓰였다. 괜히 메마른 입술을 손으로 매만졌다.

'사랑은 감기처럼 찾아와 열병처럼 앓는다.'는 얘기를 도대체 누가 처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사랑의 감정을 고작 감기, 열병에 비유하는 작가들을 이주 경멸했다. 그런 비유는 '사랑은 뜨거운 것'이라는 아주 추상적이며 일차원적인 생각의 발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사랑에 대한 편견이라고 해야 옳다. '뜨거운 사랑? 아득한 미열처럼 느껴지는 사람?' 진부하다 못해 지루하다 지루해. 호날두가 프리킥 차는 소리하고 있다 정말.

내 마음이 아주 시끄러워졌다. 재개발은 원래 한순간이니까 쾅쾅 소리가 요란하다. 여자애는 시큰둥한 표정과 맨들맨들한 입술로 내 마음에 자리 잡았다. 그러니까 재개발 종료.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미묘한 그녀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러면서 하나 마나 한 소리나 연신 해댔다. 감기 조심해야 한다고 그랬나? 마른 내 입술이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내내 그 여자애는 맨들맨들한 입술을 앙다물고 있었다. 나는 건조한 버스 안에서 연신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리고 정작 감기에 걸린 것은 바로 나였다.

그러니까 역시 세상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 호날두가 프리킥을 잘 차긴 잘 차니까 다들 그렇게 얘기하는 거지. 사랑은 열병과 같다는 말은 스탕달이 했다. 스탕달은 호날두만큼 연애를 많이 했다. 이제서야 나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독한 감기약을 먹어 몽롱한 이 순간에도 여자애 얼굴이 떠올랐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권태로운 표정 그리고 유난히 반짝이는 입술이.

가슴이 두근거려 잠이 오지 않는다고 괜히 핸드폰을 만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빠는 좋은 사람이네요.'

감기를 조심하라고 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없이 자판을 두드렸을 그녀가 떠올랐다. 어차피 카톡 창에는 하나 마나 한 소리만 가득하니까.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고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야.'

나는 이렇게 카톡 창에 메시지를 쳐놓고 괜히 메마른 입술만 매만졌다. 커서가 문장의 끝에서 깜빡깜빡 인다. 입술에 침이나 발라야지 싶다.

-

립밤을 바른다고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보습으로 따지자면 침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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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xter of california HYDRO SALVE LIP BALM 15ml 45,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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